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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되씹는 노래 영성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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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3,596 추천수0

되씹는 노래 영성체송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guitur esse). 라틴어 격언이다. 자신의 신분, 직업, 의식 등에 따라 거기에 걸맞은 행동이나 실천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마음을 두는 곳에 생각이 끌리고, 생각이 가는 곳에 몸이 끌린다.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거나 마음만 품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이 있으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사람은 정원의 화초나 나무처럼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다. 움직이고 걷는다. 길을 간다. 길을 걸을 때는 어떤 목적지를 생각하고 걷는다. 시내를 나가보면,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길을 간다. 길은 여러 갈래이고 나름대로 걷는 길의 목적지가 다르기에 저마다 서로 다른 길이다. 그런데 일련의 무리를 지어 길을 걸을 때가 있다. 같은 지향을 갖고 목적지가 같으며, 같은 시간에 무리를 지어 걷게 되면, 자신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집단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이 된다. 원래 ’데모’가 그런 것이다.

 

데모는 ’데몬스트레이션’을 가리키는 말로 ’군중(데모)’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몬스트레이션)’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못된 관행이 인식되어서 데모의 원래 의미인 이른바 ’평화적 시위’가 왜곡되어 있다. 데모는 전투가 아니다. 일련의 같은 주장이나 의견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무리를 지어 길을 걸음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홍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행렬’한다고 한다.

 

같은 지향, 같은 목적을 두고 함께 걷는 것이 행렬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련의 행렬을 다양한 행사에서 볼 수 있다. 국군의 날 기념 퍼레이드 같은 것이 행렬이다. 엑스포 개막식 퍼레이드도 같은 것이다. 무언가 자신들(행사)의 주요 부분들(주장)을 보여주는 것이 이런 행렬이다. 행렬은 이렇게 여럿이 함께 같은 생각이나 마음을 집단적으로 보여주고 나타내는 것이다.

 

일상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뜻하는 바를 강하게 나타내려고 행렬하듯이,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에서도 행렬을 한다. 미사에서 행렬은 세 번 한다. 입당 행렬, 봉헌 행렬, 영성체 행렬이 그것이다. 미사에서 하는 세 번의 행렬은 그 구성도 똑같다. 행렬을 마치면 꼭 주례자의 맺음 기도가 따른다. 입당 행렬을 한 다음에는 본기도, 봉헌 행렬에는 예물 기도, 영성체 행렬 다음에는 영성체 후 기도를 드린다.

 

입당도 행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주례자와 봉사자만 입당하고 또 제대 뒤편의 제의방에서 잠깐 등장하는데 행렬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원래 입당은 회중(백성)도 함께 하였다. 회중이 모두 성당 입구에 모이고, 준비를 마치면, 전체가 노래하면서 회중이 입당하고 주례자는 맨 나중에 입당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회중은 성당 안에 자리를 잡고 준비하고 주례자와 봉사자만 성당 입구에서 입당 행렬을 가졌다가, 지금처럼 편의에 따라 제대 뒤편에 제의방을 마련하여 입당하게 된 것이다. 하여간 입당도 행렬을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렇게 미사 때 갖는 세 번의 행렬은, 행렬의 원래 의미대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모아 공동으로 몸소 표현하는 데에 있다. 입당 행렬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행렬이다. 하느님의 집에 함께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새롭게 자각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던 세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성당 입구에 성수대를 마련하여 들어가면서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긋는 것이다.

 

봉헌 행렬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사에 참여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다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인 제대를 향해 행렬하여 나아간다. 그래서 예배당에서 잠자리채 돌리듯이 헌금을 하는 것은 봉헌과 예물 준비에 적합치 않는 것은 당연하다.

 

또 영성체 행렬을 통해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행위로 나아간다. 마음과 생각뿐 아니라 온몸을 움직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행렬은 이렇게 주님을 향한 마음과 생각을 내 몸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것이며, 또한 몸을 움직여 나의 마음과 생각을 거기에 합치시키는 것이 행렬이다.

 

그래서 행렬하는 동안에 노래를 한다. 그것은 하나같이 행렬에 참가하는 이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입당 행렬을 하는 동안 입당 성가(입당송)를 하는 것은, 집회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고 했다(미사 전례 총지침, 25항). 봉헌의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예물 준비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제사에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참여를 갖도록 마음을 끌어준다. 영성체 행렬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리스도와 완전한 영적 일치와 그 일치로 마음의 기쁨을 소리 맞춰 표현하고 행렬하는 형제들을 더욱 하나가 되게 만든다(총지침, 56항).

 

입당송과 영성체송은 그날 복음에서 따온 주제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래서 입당송이 미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준비시킨다면, 영성체송은 복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하느님 말씀 전례를 되씹는 자리이다.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영성체를 하는 동안 그날 미사의 말씀 전례에서 부각된 주제를 재음미하는 것이 영성체송이다. 그래서 영성체송은 사제가 영성체를 시작할 때부터 외거나 노래한다. 보통 영성체 시간이 긴 편이므로 영성체 노래를 한다. 영성체 성가를 하더라도 영성체송을 생략하지는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선 두 번의 행렬과 더불어 영성체 행렬을 앞두고 외는 ’영성체송’은 이제 온전히 주님과 일치를 이루면서 주님의 말씀을 또다시 상기하고 마음에 되새기게 만든다. 마음의 표현은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행동에 앞서 다시 되새기고 행동을 통해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 된다.

 

[경향잡지, 1998년 11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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