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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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0-29 | 조회수4,397 | 추천수0 | |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 주님과 만나는 봉헌
우리는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만남을 갖는다. 일을 하면서 만나고 놀기 위해서도 만난다. 또 보금자리에서도 만남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만남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손쉽게 그 사람을 만난다. 또 편지를 통해 그의 마음을 읽으며, 전화로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그의 생각과 만나고, 선물을 받음으로써 그의 정성스런 마음과 만난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함께 있기 위한 욕구’ 때문이다. 사람은 함께 살도록 하느님께서 만드셨다. 그러기에 수없이 많은 만남을 가지며 사는 것이다. 비록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하지만, 만남은 ’함께하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길을 떠나고, 전화를 걸고 편지나 카드를 보내고, 또 마음을 담은 정성의 선물이나 꽃을 전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만나야 할 그를 무한정 기다리기도 한다.
해마다 2월 2일에 교회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주님의 성탄과 공현을 마무리 짓는 축일이기도 하다. 전례주년에서 성탄시기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인 주님 세례 축일로 공식적으로 마감하지만, 주님 봉헌 축일은 성탄 축일과 연결된 축일이다. 이날은 예수 성탄 대축일에서 꼭 40일째가 되는 날이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지내면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다. 인간으로 오신 겸손한 모습의 주님을 만나뵈었다. 그리고 그분이 탄생하신 지 40일째 되는 날 유다 전통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성전에서 주님의 봉헌에 앞서 예언자 시므온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나뵙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 ’주님 봉헌 축일’은 두 가지 내용을 기념한다. 평생을 기다려온 시므온 예언자처럼 주님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되었고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듯이 우리 자신도 만나서 함께 계시는 주님과 하나되어 봉헌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축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 교회는 일찍부터 이 축일을 지내왔다. 4세기말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고, 5세기 중엽에 초 봉헌 행렬을 시작하였다. 6세기에 이미 이웃 동방 교회들에 이 축일이 전파되어 기념하였다. 이때에는 시므온 예언자가 주님을 만났던 것에 초점을 맞추어 ’만남’의 축제를 지냈다. 7세기 후반 이후로 로마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고 다른 서방 교회에도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동방 교회들처럼 ’만남의 축제일’, 또는 ’성 시므온의 날’로 지냈다가 성모 신심과 성모 축일이 발달하여, ’성모 취결례(정화예식)’로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축일이 성모의 축일로 바뀌어 오랫동안 지내게 된 것이다.
또 중세 후반기에는 촛불을 들고 행렬하는 것 때문에 한때 ’성촉절(聖燭節)’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례는 이 축일의 본디 모습을 되찾아 시므온 예언자의 ’만남’의 의미, 축복받은 초를 들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행렬 등의 의미를 강조하고 원래대로 주님의 축일로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날 우리는 기도할 때 쓸 초를 축복하고 또 봉헌한다. 초는 자신을 태워서 미약하지만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례에서 일찍부터 제대와 함께 빛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전례표지로 초를 써왔다. 이날 교회에서 초를 봉헌하고 촛불 행렬을 하는 것은 주님 봉헌 축일의 의미에 가장 알맞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본당에서 이날 기도할 때 켤 초를 갖고 와서 축복을 받고 또 본당에서 쓸 초들을 봉헌한다. 완전한 봉헌은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그 결과물이나 몫을 드린다. 초를 드리는 것은 주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일치하여 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시므온이 주님을 만나 함께했듯이, 봉헌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는 주님과 만나야 한다. 그것이 시므온이 주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초를 들고 행렬하는 것을 잘 볼 수 없다. 주님 봉헌 축일이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는 춥고 이른 평일 아침에 미사가 거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를 들고 행렬하는 것은, 우리를 만나러 오신 주님을 찾아 불을 밝혀 들고 하느님의 집(또는 제대)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더 잘 드러내준다.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의 성탄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자. 더 나아가 우리도 주님을 찾아 만나고 함께하는 기쁨으로 주님의 봉헌에 동참하여 나 자신을 봉헌하도록 하자. 성전에 봉헌되신 주님의 봉헌 축일에 성탄을 기억하고 나의 새 삶을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2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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