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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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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3,811 추천수0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 불신앙은 기적을 요구한다

 

 

우리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가,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장난으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알리자, 마을 사람들이 몇 번씩 속으면서 소년을 구하러 달려갔다. 그러다가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 양치기 소년의 ’신뢰’를 문제삼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신뢰는 신의이며 약속 실천에 따라 달라진다. 약속을 잘 지키면 자신의 신의가 드러나고, 타인이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신의를 보여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나 기적 같은 이야기처럼 신뢰할 이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은 전해들은 그 이야기가 이야기이기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목격할 수 있을 때 신뢰한다. 또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특히 기적 같은 이야기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았을 때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인들의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믿음은 단순한 인간관계에서 갖는 신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전해들었으며 교회가 믿었던 내용의 가르침에 따라 믿는 것이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늘날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니다. 2천년 역사를 보면 주님의 부활 사건을 믿지 않았으며, 그래서 하느님을 배척하였던 사람이 많이 있다. 아니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목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토마스 사도가 그랬다. 그러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는 신앙을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교회가 말하는 부활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교회는 열두 사도들의 축일을 지낸다. 예수께서 교회의 주춧돌이시라면, 사도들은 교회의 기둥들이다. 교회라는 건물의 주춧돌을 바탕으로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기둥의 구실을 한 이들이 사도들이다. 사도들의 축일은 모두 축일급으로 지낸다. 사도들의 축일은 성인 공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념 축제들이다. 26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도들의 기념(Memoria Apostolorum)’이라는 자료에서 이미 간단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7월 3일에 교회는 토마스 사도 축일을 지낸다. 토마스 사도는 그의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날 토마스 사도의 축일을 지내게 된 것은, 그의 유물을 에데사로 옮긴 것이 이날이라 이를 기념하여 6세기부터 기념하게 된 것이다.

 

복음서가 전하는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는 신앙에 관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아마 잠시 외출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돌아왔을 때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보고서야 믿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토마스 사도가 함께 있을 때에 다시 나타나셔서 그의 불신앙을 고쳐주셨다. 주님의 상처를 만짐으로써 그 상처의 흔적이 불신앙의 상처를 낫게 해준 것이다.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자세를 일깨워준다. 신앙은 우리가 바라는 것의 보증이며, 또 보이지 않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눈으로 본 것과 신앙으로 믿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신앙은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불신앙이 팽배하다.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믿는 이들도 반성할 점이 있다. 어디 기적 났네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어디 성모님 눈물 흘리네 하면 또 우르르 쫓아다닌다. 그것도 단체로 몰려다닌다.

 

신앙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꼭 보겠다는 의지이다. 마치 믿지 않았던 토마스 사도의 불신앙 같다. 물론 호기심도 일부 작용하고, 보고서라도 믿겠다는 자신의 나약한 신앙을 자책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깨우친 것이 과연 제대로 뿌리내린 신앙이랄 수 있을까? 다른 사도들의 축일과 달리 토마스 사도 축일은 보지 않고는 믿지 않으려는 우리의 미약한 불신앙을 일깨워준다.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신앙의 본모습을 깨닫도록 하자. 신앙은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이다. 선물인 것이다. 오히려 나의 부족한 신앙을 반성하고, 부르심에 충실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오히려 주님께 굳은 신앙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나의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청하도록 하자.

 

[경향잡지, 1999년 7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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