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농민주일: 타는 목마름, 농민의 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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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0-29 | 조회수2,902 | 추천수0 | |
농민주일 - 타는 목마름, 농민의 마음
무더운 여름이다. 날씨가 더우면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것을 찾는 심리가 있다. 뙤약볕 아래보다는 그늘을, 실외보다는 실내를,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을, 더운 것보다는 시원한 음료를 찾는다.
무더운 날씨는 의욕을 떨어뜨리고 활동을 더디게 만들며, 또 짜증까지 나게 만들기도 한다. 심한 경우 더위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이른바 ‘더위를 먹기’도 한다. 더운 온도에 체력이 소진하여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마치 엔진이 과열하여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만큼 푹푹 찌는 날씨는 얼마나 건강한 체력으로 버티는가에 달려있다. 또 반대로 더운 날씨에 지나치게 찬바람만 쐰다면 냉방병에 걸리기도 한다. 일정하게 더운 기운도 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름철 더위는 무조건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래서 더위를 피하는 피서를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는 ‘여름 휴가’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름은 그 더위가 말해주듯이, 정열의 계절이며 젊음의 계절이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노래하기도 하였다.
그렇다. 더운 날씨와 내리쬐는 태양의 작열하는 열기는 성장과 성숙을 향한 밑거름임을 말해준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더 나아가 모든 식물과 농작물은 이 시기에 크게 성장한다. 초목이 우거지고 농작물들은 일조량에 따라 가을의 결실이 좌우된다. 가을걷이의 풍성함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의 정열과 젊음의 성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여름은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절기이다. 하지만 이 절기에도 변함없이 농작물을 가꾸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 가꾸고 갈무리하는 농부들이 그들이다.
우리가 시원한 바람을 쐬는 중에도 그들은 뜨거운 여름 날씨에 밭이나 논에서 김을 매고 농약을 치고 물꼬를 틔우고 힘겨운 노동을 한다. 물론 더운 여름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뙤약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농민들이 기울이는 수고는 무엇보다 우리의 먹거리와 관련되기에 그만큼 더 소중한 노동에 속한다고 하겠다.
현대사회가 발달하고 산업화되면서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농업이 붕괴되고 있다. 특히 외국의 값싼 농산물 때문에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교회는 이렇게 무더운 한여름, 특히 휴가철의 절정에 이르는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정하였다.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며, 그래서 먹거리에 대한 숭고함과 소중함을 기억하려고 1996년부터 농민주일을 지내고 있다. 전례적으로는 연중 주일(보통 연중 10-13주일에 해당)로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신앙의 열정만큼이나 무더운 여름철 농민의 수고를 기억하고자 마련한 주일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요인으로 농업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농민들이 생산활동에 맞갖은 삶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농민주일을 제정하면서 주교회의 산하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매번 담화를 발표한다. 농민들의 수고에 비해 삶의 질이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해마다 우리 나라 먹거리 소비량의 1/3이 음식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그 분량은 북한 주민이 한 해 동안 먹을 식량에 해당한다. 인구 대비로 볼 때 맞는 이야기이다. 농민들의 수고로 이룬 음식을 마구 버리는 현상은 농민들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의 먹거리, 곧 인간 삶의 기본이 되는 식생활의 자원을 생산하는 일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농민들의 노고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작은 음식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수고하는 농민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우리의 먹거리를 매우 귀하게 여길 것이다.
교회가 해마다 농민주일을 지내는 정신을 헤아려, 농민주일에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자. 그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일상에서 먹거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음식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농민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인간 삶의 본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수고에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해 드리자.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우리 생활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자.
[경향잡지, 2002년 7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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