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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음력 새해, 설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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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3,081 추천수0

음력 새해, 설 명절 - 천상과 지상의 만남

 

 

세상이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우리에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이름하여 해마다 명절 때만 되면 벌어지는 ’민족 대이동’. 말 그대로 우리 민족의 대이동이다. 천만 이상의 인구가 움직이는 배달 민족의 대이동은 변함없는 연중 행사에 속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뿌리 찾기’이자 만남을 위한 몸부림이랄 수 있다. 설 명절이 되면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멀리서 지내던 사람들도 부모와 형제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차례를 지낸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 어른들에게 제사를 드린다. 뿌리 찾기로서 먼저 자신이 이 세상에 살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을 기억한다. 그래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 명절은 죽은 이들과의 ’만남’이 있다.

 

또 집안 어른들과 친지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린다. 새해에도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모인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나눈다.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묻는다. 지난 일들, 이룬 일들과 이루지 못한 것들, 기쁨과 슬픔, 보람과 아쉬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명절은 산 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이렇게 추석 명절과 함께 설 명절은 민속 전통의 축제일로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회에서도 이날을 맞아 전통의 세시풍속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 의미를 신앙으로 승화시킨다.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인 제사를 설날 아침에 드렸던 것처럼,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기억하는 위령기도와 위령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고 간구한다. 교회 생활의 관습대로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속 전통인 설 명절의 의미와 위령기도와 위령미사를 통한 전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날 미사를 통해서도 설날 전례의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하는 것이다.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제1독서를 통해 모세가 하느님의 명으로 이스라엘에게 복을 빌어주는 이야기를 듣는다(민수 6장). 그래서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르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느끼는 한 해가 되게"(예물 기도)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둘째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하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성인들과 함께 영복을 누리도록"(본기도) 기원한다. 이 세상이 결국 모두 사라질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해야 하며(제2독서, 야고 4장), 늘 준비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해야 하는 것(복음, 루가 12장)이다.

 

곧 "감사하는 마음으로 설날을 맞이하여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어 이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본기도)이다. 새해 첫날을 봉헌함으로써 한 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한 해를 시작하는 자리와 시간에, 우리는 위령기도(또는 제사)와 미사 봉헌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고 흩어졌던 가족과 친지들을 만난다. 죽은 이들과 만나고 지상과 천상이 만난다.

 

이 시간은 또한 한 해의 끝과 시작이 만나는 때이다. 시간적 만남, 공간적 만남, 인간적 만남, 그래서 지상과 천상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설 명절의 자리이다.

 

그렇다면 설 명절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아야 할 것인가?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쁘게 지낸다.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이루려고 애쓰며 더 능률을 올리려고 한다. 스피드 시대이다. 더욱 편리한 생활을 지향하며 즉석에서 해치우는 인스턴트 시대이다. 그래서 늘 할 일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며, 인내심과 정성이 부족하다. 인심이 메말라가고 자기 주장을 앞세우며, 자기 중심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경향이 많다.

 

우리 삶의 모습과 사회 현상이 이러할지라도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서 겸손하고 정성을 기울이고 인내하고 효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의 모습,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도리를 따르는 자세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설 명절이다.

 

이번 설 명절에도 우리의 뿌리 찾기를 하자. 내 생명의 뿌리이신 하느님을 찾아 한 해를 봉헌하고, 내 삶의 뿌리이신 조상님들을 찾아 기억하고 기도하며, 내 생활의 뿌리인 가족들을 찾아 지난해와 새해와의 만남, 천상과 지상과의 만남을 이루도록 해보자.

 

* 나기정 다니엘 - 신부,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0년 2월호, 나기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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