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성탄] 대림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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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6-11-01 | 조회수8,269 | 추천수0 | |
대림시기
해마다 대림시기가 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상념에 휩싸인다. 전례적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기쁨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기이어야 하는데 기쁨보다는 한해가 다 같다는 허전함에 휩싸이거나 또는 성탄과 함께 다가오는 세모와 신년의 술렁임에 정신을 빼앗기다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대림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리고 그 기다림의 대상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기쁨의 떨림인가? 대림시기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보고 이 대림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보자.
대림시기의 어원
대림이라는 말은 로마 이교도들의 신이 축제 기간 중에 사람들과 함께 머무른다는 뜻을 지닌 Adventus (Παρουσια)라는 말에서 어원을 갖는다. 또한 황제가 즉위 후에 하는 첫 공식방문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던 날을 adventus divi(신의 왕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의미의 Adventus가 성서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중에(Bulgata 성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묘사하는 말 중에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전례력이 형성되어가면서 부활시기, 사순시기가 그리고 성탄시기가 확정되었고 마지막으로 대림시기가 전례력에 도입되면서 대림시기가 하느님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에서 Adventus를 대림시기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대림시기의 발전
대림절은 4세기 말에서 5세기경 스페인 지방에서 그리스도의 성탄을 준비하기 위한 고행의 기간을 통해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 기간은 처음에는 약 3주 정도(12.17-1.6)로 지내왔음을 사라고사 공의회(380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후 갈리아(오늘의 프랑스지방)에서 11월11일부터 1월6일까지 대림시기를 길게 자내게 되었고 Tour의 뻬르뻬뚜오 주교는 이 기간 동안 일주일에 3회 단식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6세기경 로마에 들어와 처음에는 6주로, 후에 4주로 된 성탄 준비기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8- 9세기에 이르러 이 대림시기는 전례 주년의 첫 시작 시기가 된다.
대림시기의 의미
6-7세기 미사 기도문들을 살펴보면 대림시기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첫째, 이 시기는 주님의 오심(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내적, 외적으로 환영할 준비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둘째, 중세시대에 이르러 대림시기의 의미는 기다림, 곧 영광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의 의미로 확대되게 된다. 교회 안에서 현실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마지막 날 왕으로, 심판관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기가 대림인 것이다. 로마와 라벤나에는 “우주의 지배자(Pantocrator)”라는 그림은 빈 옥좌를 그려놓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 오시지 않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 상징하고 있다.
이상 두 가지 의미가 대림시기에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첫 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쁨의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초대교회가 살았던 파스카의 기다림이며 구원을 확신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제화시킴으로서 구원된 자로서 누리는 기쁨의 기다림을 형상화한 시기가 대림시기인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나와 세상의 구원이 이미 이룩되었으므로 그것을 기뻐하며 기쁨을 준비하는 축제의 기다림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대림시기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의미라고 하겠다.
두 번째 의미, 재림하시어 심판자로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중세적인 영향이 강하게 담겨져 있다. 중세시대에 교회가 안정되고 급격히 귀족화되면서 보수적인 경향을 띄게 되었다. 모든 보수주의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변화이기에 죽음이 더 이상 빠스카의 기쁨이 아니었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죽는 날은 초대교회에서 누렸던 저 하늘나라의 탄생의 날(Dies natalis)이 아니라 분노의 날(Dies irae)로 변질되고 말았고 죄에 대한 두려움, 심판등에 대한 신학이 발전하였으며 이는 연옥(Purgatorium)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이와같은 중세 사조의 영향으로 대림시기는 축제의 시기가 아니라 죄를 씻고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벌을 면하기 위한 보속과 희생, 극기와 단식이 강조되었다. 영성적으로 이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례주년에 가득차있던 파스카의 기쁨보다 죄와 심판에 대한 우려와 근심이 대림시기를 지배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
대림시기의 전례
대림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대림 첫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이고 둘째 부분은 17일부터 24일까지 이다. 첫 시기는 그리스도의 두 번에 걸친 강림을 이야기하고 둘째시기에는 성탄의 축제를 준비한다.
이 시기의 독서들은 메시아를 예언한 구약의 예언서들이 봉독되며 그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서의 “다윗의 후손이신 엠마누엘의 탄생 예고”가 있다. 복음은 깨어 준비하라는 말씀과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등 예수님의 탄생 직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림시기의 상징 : 대림환
대림환은 4개의 촛불로 꾸며진 대림시기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이는 18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는데 무의탁자와 불우한 이들의 숙소에 희망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J.H.Wichern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는 거리의 부랑아 등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성탄을 알리기 위해서 무의탁자 숙소에 촛불을 이어 세워놓고 하루에 한 개씩 불을 밝혀 나갔다고 한다. 이것이 독일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북미주로 그리고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것을 공식적인 전례의 표징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50여년 전부터 받아들여 대림시기의 주요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대림환은 가톨릭교회로 받아들여지면서 전례력에 맞게 4주를 상징하는 4개의 촛불과 상록수로 꾸며진 둥근 환의 형태로 일반화되었다. 이 4개의 촛불은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으로 의미화 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 바로 빛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4개의 촛불이 모두 켜지면 그리스도께서 오실날이 머지 않음을 가르키는 것이다. 대림환의 상록수의 푸르름은 겨울에도 퇴색하지 않는 희망을 상징하며 둥근 모양의 환은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 희망속에서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비추러 오시는 것이 바로 대림환이 상징하고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 대림환은 초기에는 월계수, 금박, 호두 등으로 치장 되었으나 오늘날은 각 지역이나 문화에 맞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희망, 빛, 사랑, 그리스도 등을 상징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는 길이와 색상을 각각 달리하여 기다림을 형상화 시키는 것도 좋겠다.
대림시기 -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대림시기가 되면 어른들은 계절적으로 뒤숭숭하게되고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들뜨기가 쉽다. 세월은 자기 나이의 두배의 속도로 달린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어른들과 아이들은 해마다 대림시기와 세모가 오면 서로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유에서 대림시기의 느낌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만일 누구에겐가 대림시기가 설레임이라면 그것은 성탄의 기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탄은 바로 우리를 빠스카의 언덕 너머 하느님의 나라로 초대해주는 분의 실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림절은 기쁨의 대림절인 것이다.
만일 누구에겐가 대림시기가 자기성찰의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두 번째 대림, 곧 예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께 더 경건하고 더 잘 준비된 나를 보여드리기 위한 겸허함으로 인해 고개를 숙이는 마음으로 대림시기를 지내게 될 것이다.
어떤 대림절이든지 상관없겠지만 우리가 한가지 꼭 이 대림시기에 누려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꼭 오신다는 것. 그리고 나는 기다리는 자라는 것, 그리고 이 기다림은 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기다림이라는 것, 그래서 나와 내 이웃이 모두 함께 기쁨과 잔잔함을 모두 간직하고 그리스도를 향해 머리를 드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 함께 기다리는 시기가 대림시기이기에 만일 우리 주위에 어느 하나라도 외로움과 헐벗음과 병듬과 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기쁨도 잔잔한 경건함도 아니라는 것, 이것이 대림시기의 참 뜻일 것이다.
[이완희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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