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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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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0 조회수11,788 추천수0

장례미사(葬禮美辭 [라] Missa Exequiarum [영] Funeral Mass)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종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경험하게되는 생로병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죽음은 그가 갖는 체험불가능성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는 이러한 죽음을 넘어서 펼쳐져 있는 피안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인간 앞에 어둠의 베일을 드리운 채 놓여있는 죽음을 뛰어넘는 신비적인 비젼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 역시 구세사를 완결하는 결정적 계시로서 예수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삶을 선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의 폐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옮아감이며, 운명이 끝나는 날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날(dies natalis)이라는 것이다. 초기 교부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죽음의 파스카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140년경의 교부 아리스티데스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장례식에서 슬픔과 비애감을 표시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난 그 형제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복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장례예식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적 성격을 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최고의 제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의 잔치인 미사성제이다. 사도시대 이래 예수의 파스카 사건의 재현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거행되던 이 미사는 교회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하면서 서서히 그 범위를 확장시켜나갔다. 그리하여 성사미사와 기원미사 신심미사 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기원미사 중에서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형식의 미사를 총칭하여 위령미사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례예식은 죽은 이의 이승에서 저승에로의 여정을 기원하는 파스카적 성격을 띄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여정으로 파스카의 잔치라고 규정할 수 있는 미사성제와는 매우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교회가 집전하고 있는 위령미사는 3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 가장 급이 높은 위령미사는 장례미사인데, 죽은 이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미사이며 교회 공동체가 죽은 이와 송별하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등급은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처음 드리는 미사, 또는 장례가 있는 날 다른 곳에서 드리는 미사, 제1주년 기일미사이다. 세 번째 등급의 위령미사는 그 외의 모든 위령미사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거니와 미사와 장례예식은 모두 파스카를 직접적으로 지향한다. 전자가 예수의 파스카라면 후자는 망자의 파스카를 위한 기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장례미사를 보다 명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례예식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야할 것이다.

 

 

1. 초대교회 - 그리스도교 장례예식의 성립 

 

초대교회 때에는 아직 그리스도교 고유의 장례예절이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장례예절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전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관습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례의 첫 번째 뿌리는 유다이즘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대다수가 히브리인들이었으므로 신자들의 장례예절은 히브리적 관습을 그대로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러나 점차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고, 유대인 거주지역(diaspora)을 중심으로 발전한 그리스도교회가 이방인의 지역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이는 결국 다양한 지역문화와의 조우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장례 예절은 유다이즘 이외에도 이방인들의 다양한 문화와 관습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히브리적 전통의 승계 

 

히브리적 관습은 초대교회 장례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신을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다른 문화에서와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죽은 이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은 의무적인 것이었으며,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은 죽은 이를 위해 장사를 치르고 매장까지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은 그들의 죽은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남겼다면 그것까지 해결해야 했다(1열왕 2,5-9; 집회 30,4-6). 성서는 히브리인들이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을 전해주는데, 그들은 먼저 망자의 눈을 감기고, 몸을 가지런히 하고 수의를 입혔다(창세 46,4; 50,1; 1사무 28,14).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와 같은 유대인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육신의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신앙을 덧붙였으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시신을 더욱 정성껏 처리하였다. 

 

죽은 이의 가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히브리인들은 망자를 잃은 아픔을 외적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방법은 공적인 재앙이 닥쳤을 때, 혹은 참회의 시기에 행하던 관습과 같았다. 또한 죽은 이의 가족들은 슬픔 때문에 단식을 행하기도 하였다(2사무 1,12; 3,35; 창세50,10, 유딧16,24, 1사무31,13). 망자와 친했던 이들이나 친척들은 위로의 빵과 위로의 잔을 가져다가 상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하였다(2사무 1,12; 3,35). 죽은 이의 가족들은 커다란 고통을 표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곡을 하였다(창세23,2; 50,10; 1열왕13,30; 1사무25,1; 2사무19,1;11,26; 아모5,16;8,10; 예레22,18; 즈가12,10 사도8,2).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의 장례 관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슬픔의 표명과 위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구약과 유다이즘의 전통이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다. 이 유다이즘은 내적으로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외적으로는 예절적인 측면에서 강하게 그리스도교 원시 전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러한 증거를 우리는 성서에서 강하게 영감을 받아 쓰여진 초대 교회의 전례 기도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처음부터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대이즘을 뛰어넘으면서 장례식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란 파스카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세상에로의 부활을 향한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로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장례식에서 기쁨을 드러내려고 하였고 파스카에 관련된 시편과 감사의 찬가를 노래불렀다.

 

이교 장례 관습의 영향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적어도 중세 초기까지는 일정한 장례예식서를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있고 자라온 문화적 관습을 그리스도교적 부활 신앙과 결합하여 지역별로 다양하게 장례예식을 거행하였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됨에 따라서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이방인들의 문화와 관습이 그리스도교 전례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특히 장례 문화는 각 지역별로 독특한 것이었기에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이교적 관습이 전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토인비에 의하면 고대 로마에서는 임종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들을 불러모아 죽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초대 교회에 행해졌던 임종자를 위한 밤샘기도를 연상하게 한다. 아리스티데스는 그의 호교론에서 초대 교회 신자들이 임종자에게 줄 노자성체(Viaticum)를 위한 성찬례를 집전하면서 임종자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임종자가 죽으면 로마인들은 시신을 정리하였는데 우선 눈을 감기고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고, 수의를 입히며 입안에 동전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죽은 이의 집에서 묘지까지의 장례 행렬은 로마인들의 관습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장례식을 일컫는 라틴어 Exsequiae, Prosequi는 이와 같은 행렬을 “뒤따른다”는 말에서 유래했을 정도였다. 시신을 매장한 후에 실리체르니움(Silicernium)이라고 불리는 장례 후 음식 나눔이 거행되는 것이 또한 로마의 관습이었다. 이 이교 관습은 사적으로 거행되었으며 기일에 거행되곤 하였다. 이 이교 관습이 곧바로 그리스도교로 전승되게 되는데 이 장례 음복이 레프리제리움(Refrigerium)이라고 불리게 되는 초대교회의 음복 관습이다. 이 관습은 망자를 기념하는 날에 행해졌는데 특히 순교자의 경우에는 장엄한 성찬례의 집전으로 발전되었으며 후에 모든 이에게 확산되었다. 이 레프리제리움 관습이 위령미사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미 2세기부터 봉헌되었다는 흔적을 아리스티데스의 호교론과 외경인 요한행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3세기경에, 떼르뚤리아노는 죽은 이를 위한 기일 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2. 중세의 장례예식 

 

중세의 교부들은 전승된 장례예식 안에 자리한 이교적인 관습을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였고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담겨진 파스카적 기쁨을 강조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장례식에서 슬픔을 감춘 채 찬미가와 시편을 노래하며 행렬하였다고 성 예로니모는 증언하고 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장례 예절 중에 큰 소리로 우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천사들에 의해서 호위 받으며 영원한 왕국에 입성하는 망자에 대한 환호의 상징으로 찬가와 시편을 노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로마 근교 오스티아에서 있었던 그의 모친 모니카의 장례를 묘사하면서 어머니를 묻은 후에 바로 구원의 제사를 봉헌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4세기 중반까지 소급할 수 있는 문헌인 <사도들의 가르침>에서도 묘지에서 행해지는 위령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중세시대에 이르러 처음에는 음복의 관습과 무덤에서의 미사가 함께 행해지다가 서서히 음복이 사라지고 위령미사만 남게되는 것이다. 위령미사를 위한 기도문은 6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이미 베로나 성사집(Sacramentarium Veronense)에 6개,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에 13개가 수록되어 있다. 

 

중세초기 장례예식 

 

시리아 전승 중에서 가-디오니시오(Pseudo-Dionysius Areopagita)의 작품으로 알려진 교계제도론(De Ecclesiastica Hierarchia)은 장례식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의 제7장은 여러 종류의 장례 예절에 관해 쓰여졌는데 망자가 성인들의 품에 안기는 기쁨에 대한 긴 묘사로서 시작된다. 임종의 순간이 오면, 임종자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의 이 세상에서의 승리를 경축하기 위해서 모여온다. 그들은 찬미가와 감사기도를 노래부르며 임종자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임종을 한 후에 주교는 망자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품안으로, 고통도 슬픔도 다시는 없는 영원한 빛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망자의 죄의 용서를 청하며 장례예절을 주도한다. 이 때 주교는 감사기도를 드렸고 참석자들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였으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성서의 말씀을 읽었다. 이러한 예절을 마친 다음에 주교와 모든 장례식 참석자들은 망자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이 끝나면 주교는 망자에게 도유를 하며 이 도유는 병자의 도유의 성격을 띈 것이 아니라 세례로 다시 태어남의 의미를 띈 것이라고 하겠다. 가-디오니시오에 의하면 세례 때의 도유가 이 세상에서의 거룩한 전투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마지막 도유는 망자가 그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세례는 파스카로 새로 태어나는 시작에 불과한 것이며 이에 비해 죽음은 세례의 완성이 된다. 이러한 도유는 동방전례 뿐만 아니라 서방 전례에서도 발견되는데 7세기의 캔터베리의 테오도로의 참회예식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유는 현재까지 희랍 전례에 그 형태가 남아있다. 

 

중세초기의 장례예식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도문은 초기 성사집(Sacramentarium)들 안에서 발견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성사집으로 여겨지는 베로나 성사집에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인 “Super Defunctos"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성사집에는 6개의 위령미사 기도문이 들어있는데 속죄와 참회의 기도와 함께 파스카의 내용을 상기시키는 기도문, 예를 들어 영원한 생명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든지, 빛에 관한 언급들이 들어 있다.

 

젤라시오 성사집은 중세초기교회의 위령미사 기도문을 매우 풍부하게 전달해준다. 젤라시오 성사집의 3권 91부는 망자를 위한 기도(Orationes post obitum hominis)로 꾸며져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미사 기도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중세시대의 예식들을 집대성해 놓은 예식서인 로마예식서집(Ordines Romani)가 수록하고 있는 로마예식(Ordo) 49번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장례예식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예식서 원본이 비록 11세기의 필사본이라고 할지라도 이 예식의 사용시기는 7세기 이전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식서는 예절지시문(Rubrica)을 중심으로 쓰여진 책으로서 이를 통해서 장례예식의 구조와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예식의 중심부에 두 개의 행렬이 있는데 이 행렬이 이 예식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 행렬은 망자의 집에서부터 성당까지 그리고 성당에서 미사를 거행한 후 묘지까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행렬 중에 참석자들은 시편과 후렴을 노래하는데 이 행렬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무리를 지어 나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연상시킨다. 파스카의 시편(113, 117편)이 노래되기 때문인데 이것이 이 장례예절이 간직한 파스카적 요소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파스카 시편이 불려지는 로마예식 49번은 죽음이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자리 옮김임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망자는 신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서 파견된 천사들의 환호 속에(Chorus angelorum te suscipiat) 영원한 왕국의 문으로(Aperite mihi portas iustitiae et ingressus in eos confiteor domino) 들어가는 것이다. 이 장례 예식서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근심에 대한 문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7세기 이전의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죽음이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해서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영원한 왕국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 중기와 후기의 장례예식 

 

중세 중기에 이르러 죽음에 있어서의 속죄와 참회의 측면을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교회에 속죄와 참회의 신학의 발달을 불러일으켰고 장례예식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동기가 된다.  이제 하느님의 심판 때에 징벌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쪽으로 장례예식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장례미사는 망자의 영혼을 위한 속죄의 수단으로 집전되기 시작하였고 장례예식 안에서도 파스카의 기쁨은 망자의 영혼의 죄를 씻는 속죄적인 성격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러한 속죄의 정신은 죄로 인한 심판의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죽음 앞에서 파스카적인 기쁨보다는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하는 종교심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속죄와 참회의 강조로 인하여 장례예식 안에서 기쁨을 표명하던 파스카적인 요소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특히 8세기 이후 갈리아 지방의 전례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파스카적 요소의 감퇴는 중세의 모든 지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교회가 세속적이고 외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득권을 갖게될 때 교회는 보수화 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이 안정과 기득권을 한꺼번에 상실하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결국 죽음은 파스카적인 기쁨이나 즐거움의 표상이라기보다는 심판과 재앙의 표상으로 이해되기가 더 쉬었을 것이다. 결국 이는 장례 전례에도 영향을 강하게 미침으로써 초대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례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카적 요소의 감소에 따라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그 동시대의 장례 기도문에 새로이 등장하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우선 살아있을 때 범한 죄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기인하는 사죄경의 성격을 띈 기도문이 나타난다(Ut absoluta omnium vinculo peccatorum Gre.1400). 또한 죽음은 더 이상 저 세상을 향하는 통과의 기쁨이 아니라 두려운 심판(Non intres in iudicio... non ergo eum tua quaesumus iudicialis sententia praemat... Gre 1401)이며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지옥의 불길(ignis flammaque tartaris RH 1332)로 빠지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여행처럼 묘사된다. 따라서 죽은 후에 다가올 저승에 대한 개념도 부정적인 언어로 묘사된다. 이 예식에서는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직 심판 중에 있는 망자의 영혼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는 이 예식서의 중심을 차지한다. 미사성제는 이러한 기도 중에서 가장 효력 있는 기도로 여겨져 봉헌되었으며, 모든 장례식의 기도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지엄하신 하느님(Deus)을 향해 바쳐졌다. 성자와 성령이라는 명칭은 이 시대의 장례 예식서에서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으며 파스카 사건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경륜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장례 예식서들의 기도문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진술이나 파스카적인 진술은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멘데의 주교였던 G, Durandus(1230-1296)는 클뤼니 수도회의 장례예식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임종 직전에서부터 매장 때까지의 장례예절을 살펴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먼저 임종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 수도자는 아빠스나 원장신부를 불러 임종에 대해서 알린다. 이어서 공적인 죄의 고백과 병자의 도유, 노자성체가 시편이 불려지는 가운데 집전된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그에게 재를 뿌린다. 그리고 성인호칭기도가 뒤따르는데 후렴은 <그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e eo)>라고 변형되어 노래된다. 임종 후에 바로 위령 성무일도가 성당에서 거행된다. 성무일도는 저녁기도에서 아침기도까지 계속 되는데 이 성무일도가 끝나면 미사가 이어지고 미사 후에 곧 바로 묘지까지 행렬하여 시신을 매장한다.

 

이 예식에서 볼 수 있듯이, 죄를 고백하고 재를 뿌리며 망자를 위한 호칭기도를 하는 것은 망자의 속죄와 죽은 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강조되었기에 생겨난 전례 형태로 보인다. 여기서 재를 뿌리는 부분은 구약성서의 재앙에 대한 기사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죽음이 파스카의 여행이라기 보다는 재앙의 성격에 가깝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때 바쳐지는 위령 성무일도가 성삼일의 성무일도와 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 성무일도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의 위로를 중심테마로 삼고 있으며 파스카적인 기쁨의 테마는 거기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이 수도원 전승의 장례예절은 그 골격이 1614년 로마 예식서의 장례예절에 수용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장례예절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기억은 인간의 속죄에 대한 염려로 뒤바뀌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3. 트렌토 공의회의 장례예식 

 

17세기초까지 각 지역별로 여러 수도원의 전승에서 기인한 각기 다른 장례와 매장 예절이 로마 교회 안에 존속했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전 교회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된 장례예절은 없었다. 교황 바오로 5세는 1614년에 전 교회를 향하여 통일된 예식서의 사용을 선포하는데 이를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라고 부른다. 

 

1614년 예식서는 죽음과 관련된 여러 예식들을 포함하고 있다. 노자성체(Viaticum) 예식은 성체성사 예식의 끝 부분에 수록되어 있으며 또 임종자를 위한 예식은 따로 Ordo commendationis animae라는 부분에 수록되어  병자의 집에서 거행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병자 방문과 병자성사 예식은 따로 구별되어 De visitatione et cura infirmorum(혹은 In Expiratione)라는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1614년 로마예식서에서 본연의 장례예식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예식들의 뒷부분에  De Exsequiis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서 위령성무일도(Officium defunctorum)가 뒤따른다.

 

장례예절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망자의 집에서 성당으로의 행렬을 중심으로 하는 예절과, 성당 안에서 하는 예절(위령 성무일도, 미사, 사죄예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지로 향하는 행렬을 포함한 묘지에서 하는 예절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 예식서는 망인의 집에서 행해지는 수시, 염습과 입관 등의 예절은 생략하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망인의 임종의 순간에서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 공적으로 예절을 함께 하였음과 대조된다. 1614년 예식서는 또한 많은 기도문들과 시편, 후렴구절을 생략하고 있는데 미사와 매장 중에 바치던 후렴과 기도들이 생략되었기에 1614년 예식서는 매우 단순한 장례예식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614년 로마 장례예식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예식이 매우 간소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예식은 이전예식들이 지니고 있던 많은 시편들을 생략했으며(시편 113, 24, 114, 131, 41 등), 중세까지 남아 있었던 많은 파스카 성격을 띄는 기도문들의 숫자를 줄여놓았다. 반면에 1614년 예식서는 나 처럼 속죄의 성격을 띈 기도문, 시편, 후렴 등은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다. 또 초대교회의 장례의 색깔이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이었음에도 1614년 예식서는 검정색을 장례예식을 상징하는 색으로 규정하여 검정색 제의와 제구의 사용을 결정하였다. 또 이 예식서는 망자의 죄의 용서를 청하는 사죄예식(Absolutio)을 예식의 중심에 놓았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1614년 예식서가 파스카적인 성격을 결정적으로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죄경은 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고려로 생겨난 예식이므로 구원을 확신하는 파스카적 표현이 이 예식의 출현으로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이다.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정 장례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 81항에서 장례예식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파스카적인 성격을 더욱 명백히 표시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고 장례예식의 개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지침에 입각하여 1969년 8월 15일 개정 출간된 새 장례 예식서는 공의회 이후 출간된 다른 예식서들처럼 지침과 해설(Praenotanda)을 예식서의 서두에 수록하고 있다. 이 지침과 해설은 장례예식을 공의회가 강조한 파스카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연결시키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지침과 해설은 또한 지역 풍습을 매우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예식을 집전할 수 있도록 지역교회 주교회의에게 사목적인 필요성에 따라 예식을 적응(adaptatio)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 

 

새 예식서는 초상 직후부터 하관예식까지 장례 절차를  3가지 유형의 예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지역교회가 각국의 관행에 맞는 예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제1양식(이탈리아, 프랑스 유형)은 세 장소에서 거행되는 장례예식으로서 망자의 집, 성당, 묘지에서 각각 예절을 집전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제2양식(독일어권)은 두 장소, 즉 무덤 경당과 묘지에서, 제3양식(아프리카, 유럽지역)은 망자의 집 한 곳에서 모든 예식을 집전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새 예식서는 1614년 예식서의 죽은이를 위한 사죄예절(Ritus Absolutionis)을 고별식(Ultima Commendatio et Valedictio)으로 대체하였다. 이 고별식은 더 이상 영혼의 정화를 위한 예식이 아니라 죽은 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하느님께 죽은 이의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기도로 꾸며진 예식이다. 새 예식서는 장례예식 안에서 성서 말씀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이는 성서의 파스카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새 예식서는 지역적 풍습에 따라서 신자들도 화장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모든 예절의 집전에 있어서 사목자의 사목적 배려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5. 현행 로마 장례예식 및 장례미사 해설 

 

1969년 출간된 장례예식서는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밤샘기도와 입관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2-4장은 어른 장례예식을 위한 3가지 양식을 담고 있으며 5장에 어린이 장례식이 뒤따른다. 6장은 어른 장례식의 여러 가지 독서와 기도문, 7장은 영세한 어린이 장례식의 여러 가지 독서와 기도문, 그리고 마지막 8장은 영세 못한 어린이 장례식의 여러 독서와 기도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 예식서에 수록된 제1양식에 입각하여 각 단계별로 이뤄지는 장례예식과 미사는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를 갖는다. 

 

망인의 집에서 행하는 예절 

 

1969년 예식서에서는 무엇보다도 1614년 트렌토 공의회 장례예식서에서 생략되었던 밤샘기도의 부활이 두드러진다. 새 예식서의 지침과 해설은 각 지역교회의 관습에 따라서 망인을 위하여 위령성무일도(Ufficium defunctorum)을 거행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위령성무일도 대신에 이 예식서에 수록된 밤샘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1614년 로마예식서 안에 수록되어 있던 위령성무일도는 예식서에서 삭제되었다. 밤샘기도는 말씀의 전례의 형식으로 거행되는데 이를 위한 다양한 독서, 복음, 기도문, 시편 등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가장 적합한 텍스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밤샘기도는 보편지향기도와 주님의 기도 또는 적합한 기도로 끝맺으며 평신도가 주도할 수 있다. 

 

이어서 입관기도가 뒤따른다. 이 기도는 시편으로 시작되는데 시편129, 시편22편, 시편 113편 등이 옛 장례 예식서들로부터 유래된 교회 전통의 후렴구들과 함께 바쳐질 수 있다. 시편이 불려지는 가운데 입관이 끝나면 주례자의 기도로 입관예식을 끝맺는다. 새 표준판 예식서에서는 옛 장례예식서에 포함되어 있었던 收屍(수시) 예식과 殮襲(염습)예식이 삭제되었는데, 이러한 예식들을 새 예식서는 각국의 지역 풍습에 따라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망인의 유해를 정성껏 다뤘는데 이는 죽는 순간부터 매장하는 순간까지 망인의 마지막 여행에 교회 공동체가 함께 동행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지역의 관습에 입각하여 공동체적 파스카 여행을 상징할 수 있도록 수시 및 염습 등의 예절이 행해질 수 있어야하며 이를 위한 지역교회 주교회의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발인예절과 성당으로의 행렬 

 

망인의 집에서 행하는 발인 예절은 밤샘기도가 행해졌다면 생략될 수 있다. 사제가 망인의 집에 도착하면 사제는 성서구절을 인용하며 인사를 하고 시신에 성수를 뿌린다. 성수를 뿌린 다음, 시편과 후렴들이 노래되는데 이 시편은 입관기도 때 사용되었던 시편과 같다. 이어서 두 개의 기도가 바쳐지는데 하나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이며 다른 하나는 죽은 이의 가족들을 위한 기도이다. 이 기도가 끝나면 성당으로의 행렬이 시작된다. 행렬 중에는 시편들(50, 114-115, 120-122, 125, 131, 133)이나 다른 적절한 노래가 불려질 수 있다. 이 시편 중에서 50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스카적인 성격을 띄는 시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편들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1969년 예식서가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갖는 파스카적인 성격을 강조하려고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례미사 

 

유해가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미사가 집전된다. 만약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말씀의 전례와 고별식을 거행할 것을 예식서는 권하고 있다. 유해를 모신 관대 위에 십자가와 성서를 올려놓을 수 있다. 또한 관대 주위에 몇 개의 촛불을 켜놓을 수 있고, 파스카 초를 죽은 이의 머리 곁에 세워둘 수 있다. 여기서 망자의 머리 옆에 세워놓는 파스카 촛불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망인이 세례를 받았을 때도 이 촛불은 켜졌었다는 사실은 세례와 죽음의 연결점을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즉, 죽음은 빛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세례이며 망인의 파스카를 향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장례미사 중에 노래되던 두려움을 표현하는 노래인 <분노의 날 ; Dies irae>이라는 부속가는 새 장례미사에서 사라졌다. 반면에 그 자체로 부활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복음전 알렐루야(alleluia)가 복구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파스카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심판과 징벌이라는 죽음에 대한 공포스러운 이해가 해방과 영원한 삶이라는 파스카적인 이해로 전환되었음이 이제 새 예식서 안에서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강론 후에 보편지향기도가 뒤따른다. 이 기도는 망인이 받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상기시킴으로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망인의 가족을 위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장례미사는 영성체를 통해 마무리되는데 이 성체성사는 망인과의 완전한 일치를 보증해주는 희망의 징표가 된다. 트렌토 공의회 이후에는 미사가 지닌 공동체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성찬례적인 제사와 개인구원을 위한 성사로서의 영성체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었기에 장례미사에 참석한 이들이 그 은공을 망인에게 주기 위하여 영성체를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새 예식서는 영성체를 통한 모든 신자들의 친교에 강조점을 둠으로써 망인과 교회공동체의 친교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면 고별식이 뒤따른다. 미사 없이 말씀의 전례만을 거행한 후에 고별식을 하는 경우에는 보편지향기도를 바친 다음에 주례자의 마침기도 또는 모든 참례자가 함께 하는 주님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고별식으로 넘어간다.

 

고별식 

 

1614년 예식서의 사죄예식(Ritus Absolutionis)은 후렴구 와 함께 1969년 예식서 안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고별식(Ultima commendatio et valedictio)이라는 이름의 새 예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고별식은 장례예식 집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고별식 안에서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일원이었던 망인이 땅에 묻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 고별식은 이교인의 관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테살로니카의 시메온은 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비록 망자가 우리와 헤어져 이 세상을 떠났어도 죽음이 우리를 서로 갈라놓을 수 없으므로, 그와 우리는 하나의 친교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망자처럼 이 세상에서 순례를 하다가 죽고 마침내 부활할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 안에서 모든 신자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고별식은 후에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의 잠정적인 인사를 나누는 예식이 되는 것이다. 

 

사제는 간단한 훈시로서 고별식을 시작한다. 잠깐의 침묵기도를 한 후에 망자에게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드린다. 이어서 오랜 전통의 찬미가들이 뒤따르며 가족들이 망자와 인사를 나눈다. 이어서 망자와 성인들의 친교를 확신하는 기도가 뒤따른다. 기도가 끝나면 시신을 성당 밖으로 모시고 나가며 천사들에게 드리는 두 개의 찬가를 노래한다. 고별식에서 부르는 찬가들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매우 오래된 교회의 찬가들로서 1969년 장례예식서가 옛 장례예식서들에서 받아들였다. 고별식은 영원한 헤어짐을 의미하는 이별의 고별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때까지의 헤어짐에 대한 잠정적인 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고별식은 사제가 묘지까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집전할 수 있다.

 

묘지까지의 행렬과 매장 예식 

 

묘지까지의 행렬 중에는 다양한 시편(24, 41, 92, 117-118)들을 노래할 수 있다. 무덤에 도착한 후에 곧바로 무덤을 축복하는데, 무덤 축복 기도문은 그리스도의 무덤에 묻히심과 부활의 여정을 기억하며 그로써 망자의 영원한 광명을 청하는 내용으로 매우 파스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무덤 축복에 이어서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한다. 하관을 할 때 사제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하며 망자의 부활을 간청한다. 장례예식은 하관을 한 후에 보편지향기도로써 끝을 맺는다. 무덤에서 드리는 기도문에서는 세례와 견진, 성체성사를 통해 이미 시작된 부활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부활이야말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을 통해 완성된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1969년 새 장례예식서는 마침 예식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파스카적 여정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맺는 말 

 

지금까지 장례예식의 역사를 개관해 보았고 1969년 개정된 예식서를 살펴보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의 올바른 쇄신을 위한 원칙을 선포하였고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장례예식의 본질은 명백하게 파스카적인 성격으로 정향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신앙생활의 중심이 전례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전례는 다름 아닌 파스카의 신비에의 참여임을 선포하고 있다. 파스카가 인류의 구세사의 생생한 과정이며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의 손을 건네심이라면 여기에 참여하는 것은 곧 구원의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파스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피안에서 차안으로 “건너감”을 뜻하며 파스카적인 전례란 파스카를 담아내는 전례를 의미한다. 피안에서 차안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결정적인 순간이 죽음이라면 가장 확실한 파스카의 전례적 표징은 장례 예절 안에 들어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고유의 상장례 예식서는 개정작업을 마치고 2003년 3월에 출간되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준비와 주교회의의 인준를 거쳐 새로 간행된 예식서는 현재 한국 상황에 맞는 예식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 상장례 예식서는 임종예식, 운명예식, 위령기도(연도), 염습과 입관예식, 장례식, 화장예식, 우제예식, 이장예식 등으로 편성될 예정이다. 한국상장례 예식서는 특히 임종기도와 운명기도, 염습 등을 예식 안에 도입하였고 현재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연도를 포함한 기존 예식서의 예식들뿐만 아니라 기제, 화장예식, 이장예식 등의 새로운 한국적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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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희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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