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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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10 | 조회수2,155 | 추천수0 | |
[이 달의 전례] 십자가 현양 축일 (9월 14일)
전례적 개관
예수님께서 달려 죽으셨던 십자가는 처음에는 단순한 사형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도시대에 이미 십자가는 예수님의 희생 죽음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한 총체적 개념이 되었다. 이에 바울로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말하면서(1고린 1,17),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요, 또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필립 3,18)고 하였다.
십자가 현양축일의 그 첫 번째 흔적은 4세기 초엽에 발견된다. 소위 말하는 ‘알렉산드리아 연대기’에 따르면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인 헬레나 왕후가 320년 9월 14일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성녀 헬레나의 십자가 발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황제의 모친인 성녀 헬레나는 평소 주님의 수난에 대한 열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들이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소망하였던 성지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께서 가신 수난의 길을 직접 뒤따라 순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한 마음에서 예수께서 수난 받으시기 시작하였던 총독관저에서 재판을 받으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예수께서 오르내리셨다고 하는 관저의 계단을 모두 걷어내 로마로 옮기게 하였다.(지금의 로마 라테란 대성전 가까이에 세워진 성 계단 경당의 계단은 모두 예루살렘 총독관저의 계단 돌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녀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찾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수소문하여 알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밤 물속에서 빛이 비추는 꿈을 꾸고는 이튿날 예루살렘 근교의 모든 우물을 조사하게 하였다. 마침내 골고타 언덕 아래에 자리한 깊은 우물에서 나무 십자가 세 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예수님께서 어느 십자가에 달리셨던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잘못했다가는 회개하지 않은 좌도(左盜)가 달린 십자가를 공경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성녀는 그 세 개의 십자가를 바닥에 놓고 기도를 하면서 병자들을 각각의 십자가에 누워보게 하였다. 마침내 어느 한 십자가에 누웠던 병자가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십자가는 교회 안에서 가장 소중한 유해이자 성물로 여겨, 그 당시 예루살렘, 로마,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에 부목 일부를 나누어 주어 공경하게 하였다.
325년 9월 13일 예수 부활 성당과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타 언덕 위에 세워진 기념 순교 성당(동시에 십자가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의 봉헌식이 거행되었고, 그 이튿날인 14일에는 수년 전 이곳에서 발견한 주님의 십자가를 신자들이 경배하도록 높이 들어 올려 장엄하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5세기 콘스탄티노플과 7세기 말경의 로마 전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연중 기념의 기초가 되었다. 9월 14일에 발견된 십자가의 큰 부분을 소유했던 교회(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로마)에서는 장엄하고 화려한 예식을 통하여 십자가 유해를 들어 올림에서 ‘십자가 현양’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Exaltatio : 높임)
갈리아 전례에서는 7세기에 헤라클리우스(Heraklius) 황제가 628년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탈취되었던 십자가 유해를 재탈환하여 예루살렘으로 개선 행렬을 가졌던 5월 3일에 이 축제를 거행했다. 이 갈리아 전례축제도 후에 9월 14일 주님의 십자가를 찾아 들어 올렸던 역사적 사건과 연관지어 로마 교회력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중반에 바티칸 대성전에서 9월 14일 십자가 나무 조각을 내어놓고 신자들에게 경배하도록 하였다. 이후에 십자가 나무 한 조각을 라테란 대성전으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십자가 현양 축일을 크게 경축하였으며 많은 신자들도 십자가 경배를 하게 되었다.
1741년 베네딕도 14세까지 9월 14일과 5월 3일의 같은 축일의 이중 날짜를 제거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요한 23세 교황 때에 이르러 5월 3일의 축일은 로마 교회력에서 삭제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개정된 전례력에서는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9월 14일의 십자가 축일은 다시금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된 것이다.
이날 축일 미사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그로 인해 우리에게 선사된 구원으로, 입당송에서부터 그 주제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삼아야 하리니, 그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부활이 있으며, 그로써 우리는 구원과 자유를 얻었도다.”(갈라 6, 14 참조)
고유 감사송에서 십자가는 낙원의 나무에 대한 반명제로 등장한다. “주님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 나무에서 인류구원을 이루셨으니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승리한 자를 나무에서 죽임이 시작된 거기서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구원하는 십자가의 예시는 모세가 광야에서 야훼의 명에 따라 만든 구리 뱀으로써 그것을 들어 올리게 하여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생명을 되찾았던 것이다. 이날 미사의 제1독서(민수21,4-9)는 바로 이 내용을 알려준다. 복음(요한 3,13-17)에서는 제1독서의 내용과 관련시켜 높이 들어 올려진 사람의 아들로부터 영원한 생명이 선사됨을 밝힌다. 이날 미사의 제2독서(필립2,6-11)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와 그 영광에 대한 전통적인 그리스도 찬가를 들려준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멸시에 대한 영광의 승리,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밝힌다.
묵상
1856년 고고학자들은 로마에 있는 고관의 영지 고고학 발굴 작업에서 이상한 벽화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군인들의 숙영지 벽에 못으로 십자가를 그린 그림으로, 그 십자가에는 한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머리는 당나귀 머리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아래는 서투른 필체로 ‘알렉사메노스가 자기 신을 경배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고, 십자가 앞에는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듯이 손을 들고 서 있는 한 젊은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그림이 123년에서 126년 사이에 그려졌다고 연대를 추정해냈습니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십자가 모습 중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멸과 조소의 십자가 그림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 이 하느님은 한 마리 당나귀의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누가 그를 경배한다면 그 또한 같은 당나귀가 되는 셈입니다. 1870년 고고학자들은 또 다른 장소에서 젊은 그리스도인인 알렉사메노스의 대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곳 역시 ‘알렉사메노스는 충성을 다한다.’는 글이 못으로 새겨져 있는 위와 같은 그림입니다.
이 이상한 십자가의 벽화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분께 기도하듯이 두 손을 펴들고 서 있는 젊은이 알렉사메노스는 조롱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조롱은 십자가에 달린 분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이를 경배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초세기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나무를 거룩한 성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님이요 스승이신 분이 그곳에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 공경이 다른 유해 공경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은 사도 바울로가 필립비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의 그리스도 찬가가 증명합니다. 십자가 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생겨났습니다. 알렉사메노스는 이것을 알았기에 십자가에 달린 분께 기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는 조롱당하는 당나귀가 아니라 모든 죄와 허물을 이겨낸 승리의 표지인 것입니다.
로마의 카타콤바 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초기 그리스도교의 다른 여러 그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극복하여 새로운 그리고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하셨음을 상징하는, 즉 머리에 후광을 두르신 분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모습은 필립비서의 그리스도 찬미가를 미리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이름 앞에 천상, 지상, 지하계 모두가 무릎을 꿇고”(필립 2,10 참조),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 금요일에 벗겨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합니다. 알렉사메노스와 함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앞에 두 손을 모아 기도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이나 여성들이 목이나 귀에 멋으로 걸고 다니는 장식품이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는 곧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요 길입니다. 이날 축일에 십자가의 신비를 보다 깊이 묵상하고 우리 삶 안에서 십자가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주님은 우리 또한 들어 높여 주실 것입니다.
[월간 빛, 2004년 9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성바울로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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