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서방전례의 분류: 로마 전례 | |||
---|---|---|---|---|
이전글 | [전례] 4세기의 전례 | |||
다음글 | [전례] 서방전례의 분류: 갈리아 전례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11 | 조회수2,775 | 추천수0 | |
[전례 배움터] 서방전례의 분류 (1) 로마 전례
지난 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종교 자유’를 획득한 4세기의 전례를 공부하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서방전례의 분류’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로마 전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가. 전례의 분류
여러 서방전례의 형성은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속국들이 로마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치아누스(284-305)가 유연한 통치를 위해 지방분화를 시도하고,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이전하여(330), 로마제국을 네 개의 영토로 분할하는 등 많이 노력했지만, 로마제국의 점진적인 몰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서로마제국은 결국 476년에 멸망합니다. 그 후 서방에는 제국과 황제가 사라지고, 이론적으로 동로마제국(비잔틴)의 통치권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독립을 누리던 지방 군주들의 국가들이 생겨납니다.
로마제국이 사라지자 각 지역교회는 모든 실천규범을 재정비하기 위해 곧 여러 지방공의회를 개회합니다. 이미 5세기 초에 총대주교좌는 소속 교회의 전례 및 생활의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법제화하였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해당 지역교회의 특징을 나타내는 고유한 전례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방전례는 크게 로마 전례, 갈리아 전례(프랑스 지역), 암브로시우스 전례(이탈리아 밀라노 지역), 스페인 전례(모자라빅·비시고틱 전례)로 구별할 수 있고, 그 밖에 아프리카 전례, 켈트 전례(아일랜드)도 있었습니다.
나. 로마 전례
로마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당시에는 공용어인 희랍어로 전례를 거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황 다마수스 1세때 전례언어를 희랍어에서 라틴어로 바꾸었기 때문에 희랍어 전례 자료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당시 전례 거행에 있어서 전례문 특히 감사기도문을 읽지 않고 주교들이 즉석에서 만들어 바치는 ‘자발성’은 자료부족의 다른 이유가 됩니다. 종교자유 이후 로마제국 국민의 영세로 많은 본당이 신설되었습니다.
본당들에 배치된 사제들 가운데 신학 및 라틴어 실력이 모자라 즉석에서 감사기도문을 만들어 바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전례문은 서서히 ‘정경화, 경전화(正經化, 經傳化)’, 즉 기록되었고 고정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리 작성한 기도문을 읽으면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특정한 축일을 위한 미사 기도문을 낱장에 기록한 ‘미사 기도문(libelli missarum)’이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축일에 대한 ‘미사 기도문’을 꼭 새로 만들기 보다는 옛날 것을 참고하기도 하였습니다.
① 베로나 성사집 : 라틴어 로마 전례의 직접적인 증거로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의 ‘베로나 성사집’입니다. 성사집(sacramentarium)이라는 이름은 주교·사제가 미사 및 성사를 거행하는데 필요한 기도문을 담고 있기에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성사집인 이 베로나 성사집은 본격적인 의미에서 처음부터 계획된 성사집이 아니라, ‘미사 기도문’을 사회달력의 순서에 따라 엮어놓은 것입니다. 훼손이 심해 1월에서 3월의 본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교황 레오 1세(440-461) 이후 5-6세기의 상황을 반영하는 기도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② 젤라시우스 성사집 : 현존하는 젤라시우스 성사집은 7세기 말엽 파리 근교에서 필사된 것으로, 6세기 로마 전례의 본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분석한 결과, 로마의 시내 본당의 전례에 도움을 주기 위해 편찬된 것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었으며, 참된 의미에서 최초의 성사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젤라시우스 성사집은 성탄전야미사로부터 시작되며 전례주년의 모든 시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편집 배열에 대하여 살펴보면, 앞의 베로나 성사집이 매달의 전례주년 미사와 성인축일 미사를 섞어놓은 것과 달리, 이 젤라시우스 성사집은 먼저 전례주년 미사와 성인축일 미사로 크게 분류한 다음, 그 안에서 일 년의 흐름에 따른 순서로 기도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③ 그레고리우스 성사집 : 이 성사집은 보통 제목 때문에 대교황 그레고리우스(590-604)의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교황 호노리우스(625-638) 때 편집된 것이고, 시내 본당이 아닌 교황청의 교황집전 미사를 위해 편찬된 것입니다.
편집 배열에 대하여 살펴보면, 앞의 젤라시우스 성사집이 전례주년 미사와 성인축일 미사를 크게 분리한 것과 달리, 그레고리우스 성사집은 베로나 성사집처럼 다시 전례주년 미사와 성인축일 미사를 구별하지 않고 함께 섞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섞어 놓다보니 일부 주일의 경우 ‘연중 제 몇 주일’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고, 바로 직전에 거행된 축일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축일(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후 1, 2, 3... 주일, 성 라우렌시우스(8월 10일) 후 1, 2, 3... 주일, 천사축일(9월 29일: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성 미카엘 천사) 후 1, 2, 3... 주일 등입니다.
그레고리우스 성사집이 중요한 이유는, 전례의 통일로써 자신의 제국 안에서 정치적 통일과 왕권강화를 꾀하려고 로마전례서를 요구한 샤를마뉴(=카알 대제)에게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772-795)가 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수입된 그레고리우스 성사집은 지역의 필요성에 의해 부록이 덧붙여져 프랑스-독일지역을 아우르는 프랑크 왕국(나중에 신성로마제국)에서 유일한 전례로 자리 잡았고, 로마 전례가 지역 전례 전통을 물리치고 전례적 통일을 이루게 합니다.
④ 8세기 젤라시우스 성사집 : 8세기와 그 이후 젤라시우스 성사집과 다른 전통들이 서로 섞여 편집된 혼합 성사집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모두 ‘8세기 젤라시우스 성사집’이라고 불립니다.
로마 전례의 전례서인 성사집들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나타났지만 본문을 분석한 결과, 그 내용은 레오 1세(440-461), 젤라시우스 1세(492-496), 비르질리우스(537-555)등의 것으로 상당히 고대의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례기도문들은 대부분 이런 옛 전통에서 취해진 것입니다.
⑤ 로마 전례의 특징 : 1) 로마 전례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마 감사기도문(=로마 전문; 로마 카논)으로 그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유일한 양식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다른 전례 전통과는 구별됩니다. 2) 외형적으로 로마 전례의 어휘는 정확하고, 절도 있고, 간결하고, 장황하지 않고, 덜 감성적이었는데 이것은 라틴어 덕분입니다. 3) 로마 전례의 문체는 거룩하고, 인간적이고, 영적인 것을 잘 표현하는 문학적 위대함이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라틴어 덕분입니다. 4)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로마 전례의 신학적 특징으로, 기도문들이 ‘성부 하느님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ad Patrem per Christum in Spiritu Santo)’ 바쳐진다는 것입니다.
다. 글을 맺으면서
지금까지 서방전례의 분류, 특히 로마 전례를 살펴보면서, 로마 전례가 지역 교회의 전통 및 정확하고 간결한 라틴어를 바탕으로 정통 신학을 표현함을 공부하였습니다. 우리도 올바른 신학을 알고, 그것을 전례와 생활로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06년 8월호,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전례꽃꽂이연구회 지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