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부활] 성지(聖枝)의 일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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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3-17 | 조회수2,284 | 추천수0 | |
성지(聖枝)의 일생 - 주님 수난·죽음 빛내며 희생합니다
- 주님수난성지주일의 나뭇가지 축복은 영원한 생명과 승리를 상징하지만, 예식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심이다.
- 제주 동문본당 신자들이 주님수난성지주일 일주일 전 성지 가지를 채집하고 있다.
저는 못난이 성지(聖枝)입니다.
일 년 내내 묵묵히 십자고상 뒤를 지키고 재의 수요일에는 재가 돼 사순시기가 시작됐음을 알리기도 합니다. 또 주님수난성지주일 미사 중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예식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제가 누구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더군요. ‘주님수난성지주일’을 맞아서 여러분께 저를 소개하려고합니다.
저는 한라산 중산간에서 자라난 편백나무(노송나무)입니다. 제주도의 깨끗한 공기를 맞으며 자라난 저는 잎이 항상 푸르고 병충해에도 강해 성지로는 제격이라고 합니다. 특히 10년에서 15년 사이의 어린나무가 가장 좋습니다. 아담하면서도 예쁜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주로 과수원이나 목장 바람막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채집 작업을 위해 미리 허가를 받는 것이 필수입니다. 작업이 가지치기와 같아 목장과 과수원에서도 흔쾌히 허락합니다.
채집은 보통 주님수난성지주일 일주일 전에 합니다. 제주교구 동문본당(주임 이영조 신부)에서는 본당신자 3~4명이 작업에 참여합니다. 신자들이 채워야 하는 양은 1000여 가지. 많지 않은 양이기에 작업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본당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 다 모을 수 있습니다.
채집과정은 시작단계에 불과합니다. 성당으로 옮겨진 직후가 본격적으로 성지가 되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저는 본당 제대봉사자들에 의해 깨끗이 목욕을 합니다. 그동안의 묵은 때를 씻고 성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죠. 이어서 십자고상에 알맞게 이발을 합니다. 제대봉사자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작업하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합니다. 허리도 아프고 가지에 남은 먼지로 인해서 재채기도하고 힘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지를 가져갈 다른 신자들을 위해서 이정도의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합니다. 봉사자들은 가지 하나하나를 정리할 때마다 기도를 하는 정성을 잊지 않습니다. 제 몸에는 동문본당 신자들의 정성과 희생 그리고 신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과정을 거친 저는 이제 각 가정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립니다.
본당 신자들은 주님수난성지주일에 성당을 찾아와 저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의 저를 하나씩 챙겨갑니다. 봉사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의 손에 들린 저도 역시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주님수난성지주일, 신자들은 예수가 예루살렘 입성 때 유다인들이 했던 것처럼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외치는 환영행렬을 벌입니다. 그 가운데에 제가 있지만 저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더욱 빛나길 바라며 제 자신을 희생할 뿐입니다. 그리고 전 다시 십자고상 뒤를 묵묵히 지킵니다. 내년 재의 수요일이 다가올 때까지.
[TIP] 성지에 대한 짧은 상식
성지는 보통 종려나 올리브 나뭇가지를 의미합니다.
최후의 승리(묵시 7, 9)를 상징하며 로마 박해 시대에는 성인들을 상징해 묘지 내 순교자들의 무덤을 표시하는데 사용됐습니다.
특히 성지는 예루살렘 입성 때 백성들이 승리와 존경의 표시로 흔들며 환영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제주교구 동문본당 외에도 다수의 본당에서 성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지로는 제주도 편백나무를 비롯해 쑥백나무, 소나무 등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주님수난 성지주일의 의미와 전례
주님수난성지주일은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수난기를 읽으면서 예수의 죽음에 관한 신비를 기념하는 유일한 주일입니다. 1955년 이전에는 수난시기의 둘째 주일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력 개혁 당시 수난시기를 줄임으로써 성지주일의 공식 명칭이 현재와 같이 정해졌습니다.
주님수난성지주일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그의 수난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때문에 전례에도 두 가지의 의미가 다 담겨있습니다.
먼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미사가 시작됩니다.
새 미사 경본은 성대한 행렬(제1양식), 성대한 입당(제2양식), 간단한 입당(제3양식) 등 세 가지 방식의 예식을 마련했습니다. 세 양식 가운데 메시아이자 왕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적절한 예식을 찾아내는 것은 사목자의 몫입니다.
나뭇가지 축복에는 두 가지 기도문 중 하나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가지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예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성지가 아니라 행진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심입니다.
미사는 입당 후 참회 예절 없이 본기도로 시작합니다.
고통 받는 종의 노래(이사 50, 4~7), 주의 수난에 대한 시편(시편 21),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필립 2, 6~11)으로 이어지는 예수의 수난 신비는 수난 복음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수난 복음은 3년 주기로 구성돼 있으며 내용은 모두 수난 신비에 관한 것들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08년 3월 16일, 이지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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