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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설날, 차례 이렇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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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5 조회수5,282 추천수2

설날, 차례 이렇게 지내요


몸과 마음 단정히... 정성스럽게 준비

 

 

명절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를 갖추고 조상 은덕(恩德)을 기리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에도 조상에 대한 효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 가족의 화목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제사(차례)예식안이 있다. 하지만 이 예식안은 「상장예식서」(주교회의 인준) 별책으로 나와서 그런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설날 아침, 가족이 함께 예를 올릴 수 있는 이 예식을 소개한다. 이 예식은 기제사와 설날, 한가위, 한식 등 모든 제사와 차례 때 사용할 수 있다.

 

 

준비사항

 

차례를 올리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혹시 불목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 살펴 화해하기로 다짐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한다.

 

 

예식순서

 

1) 제사 준비를 모두 마치면 영정(위패)을 모시고, 제주(祭主)는 제사의 시작을 알리며 십자 성호를 긋는다.

 

2) 참석한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두 번 절한다.

 

3) 제주가 영정(위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분향한 후 잔을 받아 미리 준비한 그릇(모사기-茅沙器) 위에 삼제(三祭-술을 세 번 조금씩 따르는 것)한 다음 돕는 이에게 주면 돕는 이는 잔을 올리고 밥그릇 뚜껑을 열어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차례로 나아가서 잔을 올린다. 그러나 제주 이외에 다른 사람은 삼제를 하지 않는다.

 

4)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제주가 조상께 고한다.

 

"주님의 보살핌으로 오늘 다시 (    )께 차례(제사)를 올리게 되었나이다. 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의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 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    )를 기억하여 이 차례(제사)를 올리오니 (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을 따라 화목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5) 제주는 아래의 말로 참석자들에게 함께 조상을 기억할 것을 권한다.

 

"성경에는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1고린 2, 9)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4, 7~9)

 

이 말씀으로 우리 (     )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며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 되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한 백성입니다. (주례는 다른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권고할 수도 있다)

 

6) 주부가 나아가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놓는다. 제주와 모든 참석자는 두 번 절한다. 절한 다음 조상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한다.

 

7) 제주인 주인과 주부는 국그릇을 거두고 냉수나 숭늉을 올린다.

 

8) 제주는 모든 참석자와 함께 두 번 절하며 작별배례를 한다. 제사를 마치면서 조상과 가족, 친척들과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할 것을 결심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성가를 부른다.

 

9) 영정(위패)을 따로 모신 다음, 참석자들은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 식사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이며 조상과 가족간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축제의 기쁨은 이웃, 특히 소외된 형제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평화신문, 2009년 1월 25일, 정리=김원철 기자]

 

 

차례상은 이렇게

 

 

1) 차례상은 집안 관습에 따라 차리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 차례상 앞에는 깨끗한 돗자리나 다른 깔개를 편다. 영정 대신 위패를 모셔도 좋다. <그림 참조>

 

2) 첫 줄은 숟가락을 놓는 대접과 잔, 받침대와 송편(추석의 경우)을 놓는다.

 

3) 둘째 줄은 어동육서(漁東肉西)다. 오른쪽(동쪽)에 어적(생선 구운 것)을, 가운데에는 소적(두부 구운 것)을, 왼쪽(서쪽)에는 육적(고기 구운 것)을 놓는다.

 

4) 셋째 줄은 3가지 종류(육탕, 소탕, 어탕)의 탕을 놓는다.

 

5) 넷째 줄에는 좌포우혜(左捕右醯)라 해서 왼쪽에는 포를, 오른쪽에는 식혜를 놓는다.

 

6) 다섯째 줄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오른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 차례상에는 각 가정 고유의 차례 음식을 올릴 수 있으며,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가족이 즐기는 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

 

 

조상제사에 대한 교회 가르침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서간 조상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설을 맞아 조상제사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살펴본다.

 

교회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포용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대표적 경우다.

 

가톨릭교회에서 조상제사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6세기 중국에서였다. 당시 중국에서 선교하던 선교회들 가운데 예수회는 조상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을 드러내는 미풍양속으로 본 반면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미신으로 여겼다. 선교회들의 이 같은 견해 차이는 '제사논쟁'을 촉발시켰고, 100여 년간 계속된 제사논쟁은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조상제사를 미신행위로 간주하면서 엄하게 금지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제사에 참례할 수 없었고, '신주'(神主) 또는 '신위'(神位)라고 쓴 위패를 집안에 두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교황청의 제사금지 지침은 1790년께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당시 조선사회에 제사를 엄격히 금한다는 천주교 가르침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게된 계기도 결국 제사문제 때문이었다.

 

전라도 진산에 살던 윤지충(바오로, 1759~1791)은 제사를 금하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집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불태워 버렸고, 1791년 5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외사촌 형 권상연(야고보, 1751~1791)과 상의한 끝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전주 풍남문 밖에서 참수당하고 말았다. 한국교회 첫 번째 순교자들이다.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교황청 가르침이 바뀌는 데는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는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제사에 대해 관용적 조치를 취했다. 조상제사가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적 풍속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교회는 이후 이 훈령에 따라 시신이나 무덤, 죽은 이의 사진(영정)이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음식 차리는 행위 등을 허용했다. 다시 말해 제사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교회 지역교회법인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는 제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사의 근본 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제134조 1항).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 의식을 거행함이 바람직하다"(제135조 2항). [평화신문, 2009년 1월 25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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