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왜 성당 종각 위에 닭이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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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2 | 조회수3,506 | 추천수0 | |
[전례 상식] 왜 성당 종각 위에 닭이 있는가
유럽을 여행해 보면 성당 종각 위에 닭을 장식하여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도 서울 반포성당에 장식되어 있다. 왜 하필 닭인가? 별로 양순하지도 않고 가톨릭 신앙하고는 별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닭을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종각 위에 세워 놓았을까? 사실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는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 오는 물고기가 더 적합하고, 착하고 유순하고 인간에게 친밀하기로는 비둘기가 더 낫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옛사람들은 닭에게 성전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는 명예를 주었을까? 여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신자라면 누구나 베드로 사도가 빌라도에게 끌려가가 전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결정적으로 깨닫고 후회하도록 만든 가야파의 뜰에서 울리던 그 닭울음소리를 복음서에서 읽고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여종이 그를 보고는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자렛의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잡아떼었다. 바로 그때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마태 26,69 이하; 마르 14,66 이하; 루가 22,56 이하; 요한 18,22 이하 참조).
베드로 사도는 그 뒤 평생을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야파의 뜰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을 떠올리며, 예수님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속죄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한다. 회개하고 속죄하라! 자만하지 말라! 옛사람들이 종각 위에 닭의 형상을 세우면서 가진 생각이었다. 성당 종각 위에 있는 닭은 오늘도 성당에 오는 신자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통곡하던 그 순간의 광경을 떠올리도록 기억시키고,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우리들에게 베드로의 자만과 회개를 기억하도록 경고해 주는 것이다.
닭이 종각 위에 올라간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어린 시절, 뿌옇게 동이 틀라치면 맨 먼저 홰를 치며 힘찬 목소리로 밝아 오는 아침을 찬미하는 닭을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캄캄한 것 같지만, 첫닭이 울고 나면 어김없이 동이 트므로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났으며 아침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심 깊은 옛사람들에게 아침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시간이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고귀한 때였으며, 따라서 그 고귀한 시간을 또다시 새롭게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바치고 싶어했던 마음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성전에 나아가 조배하고 성체를 봉헌함으로써 은총을 가득 담은 몸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아침 햇살과 함께 청아하게 봉헌의 시간을 알려 주는 닭울음소리가 있어야 가능했다.
때를 맞춰 우는 성질을 가진 닭에게 사람들을 경신례로 불러 모으는 역할이 주어졌던 것이다. 옛 저서들을 보면 오늘날 성무일도의 아침 기도를 ‘닭이 울 때 하는 기도’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그 닭 아래에 있는 종각에서 울리는 아침 종소리는 근방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침’을 상기시켰고, 어서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루 일과를 봉헌하도록 인도했다.
요즈음 아침에 들리는 닭 울음소리는 거의 사라졌고 일과를 시작케 하는 기능마저도 시계에 물려주었지만, 신앙 선조들이 특정한 상징을 통하여 얻고자 했던 그 의미와 교훈만은 되새겨 볼 만하다. <최윤환 신부의 “하느님 백성의 축제” 참조>
[경향잡지, 1993년 10월호,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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