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령] 교회와 장례 문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본당 내 봉안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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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1-07 | 조회수3,794 | 추천수0 | |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장례 문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본당 내 봉안시설
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의 장묘 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목적으로 화장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과 언론과 시민단체의 장묘 문화 개선운동 등이 맞물려 2005년부터는 화장률이 52%로 매장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화장률이 60%를 넘어섰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도 199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교회가 운영하는 공원묘지에 봉안당(납골당)을 설치하는 문제와 매장 시한제 등 묘지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화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 왔으며, 신자들의 화장률도 크게 증가하였다. 더불어 교회에서 운영하는 묘지가 대부분 만장이 되면서 교회 묘지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봉안시설도 하나둘씩 생겨나게 되었다.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현재 교회에서 운영하는 봉안당은 전국 13곳으로 기존 묘역에 설치한 것이 일반적이며, 본당 내에 설치된 곳으로는 서울대교구 용산성당, 흑석동성당, 대구대교구 죽도성당, 부산교구 망미성당, 의정부교구 신곡2동성당 등이 있다. 지역민과 신자들의 생활공간인 성당에 봉안시설이 있다는 것이 낯선 풍경 같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외국의 성당들은 성당 마당에 묘지가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으며, 한국 교회에서 처음 봉안시설을 세운 본당들에서도 이런 데서 착안을 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일반 의식은 아직 이를 받아들이기에 시기상조인 듯하다. 지난 7월 31일 헌법재판소가 학교 부근 200m 이내 납골시설의 설치를 금지한 학교보건법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장기간 지속되어 오던 태릉성당 봉안당 설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성당 측의 패소로 일단락된 것이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서울대교구가 태릉성당 내 봉안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해당 구청에 신고를 하였으나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이를 이유로 신고가 반려되자 성당에서는 행정소송을 냈다. 1, 2, 3심을 거치면서 모두 성당의 승소로 판결받았지만, 소숭 중에 학교 주변 납골당 설치 금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헌법 소원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서울대교구에서는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나 무덤을 기피하는 풍토와 정서가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다 하더라도 그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히 의심스럽다고 하겠다. … 납골시설의 확충은 원하면서도 우리 마을 내 집 앞 설치는 반대하는 님비현상이야말로 자라나는 청소년의 가치관 형성에 큰 해가 될 것이다.”라는 유감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태릉성당의 문제를 겪으면서 앞으로 본당 내 봉안시설을 설치할 때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 전망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본당 내에 봉안시설을 이미 건립하여 운영하는 몇몇 본당이 있다. 이들 본당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설치하였고, 또 현재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서울대교구 용산성당 ‘베다니아의 집’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용산성당에는 71명의 성직자가 묻혀있는 성직자 묘지가 1890년부터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다. 이 성직자 묘지 덕택에 2003년 납골당을 개관하면서도 본당 신자들과 지역민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자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는 하였지만 성당 주변에 아파트들과 주택가, 유치원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큰 반대 없이 납골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으며, 지금도 불편함 없이 유지하고 있다.
‘베다니아의 집’은 성당건물 1층에, 신자들 동선에서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부터 성당 마당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와 죽음과 생명을 묵상할 수 있는‘생명의 길’이 시작되고, 그 위로 성직자 묘역이 있다. 다른 성당 봉안당보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전체 819실을 두고 있으며,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모두 분양이 완료되었다. 한식, 추석 때 본당에서 위령미사를 함께 드리고, 유해 안치 시 예식은 유가족들이 직접 주관한다.
미리 ‘베다니아의 집’을 예약해 둔 용산성당 신자 윤경옥 헬레나 씨는 “처음에 봉안당이 생긴다고 했을 때 낯설고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있으니 참 좋아요. 돌아가신 분들을 멀리 모시고 가끔 찾아뵙는 것보다 자주 찾아뵐 수 있고요. 가까운 신자들과 죽은 다음에 다 같이 모여앉아 연도를 바치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해요.” 하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흑석동성당 ‘평화의 쉼터’
흑석동성당 ‘평화의 쉼터’는 2004년 12월 개관하였다. 이 지역은 주택 밀집지역으로 개관 당시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자 본당신부(당시 안상인 요셉 신부)와 사목회 모두 발 벗고 나섰으나 결국 행정소송을 거쳐 봉안당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칙적으로 납골당을 설치하려는 지역이 설치금지 지역에 해당하지 않고, 설치기준 역시 부합하기 때문에 구청은 설치 신고를 수리해야 한다.”며 “주민들의 집단 반대 등 다른 사정은 반려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성당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흑석동성당은 봉안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자 지하실이나 어느 한 구석에 설치하지 않고, 성당의 중심이 되는 1층에 ‘평화의 쉼터’를 두었다. 항온 항습이 유지되고 유해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줄마다 12사도의 이름으로 구분되고, 전면 중앙에는 제대가 있어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신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대구대교구 포항 죽도성당 ‘사도들의 쉼터’
죽도성당은 2003년 성전 재건축을 시작하면서 성당 내 봉안시설을 마련하는 구상을 하고 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2004년 11월 성전 봉헌식 이후 본격적으로 설치와 신고를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 주민들이 알게 되었고, 성당 옆 주민 몇몇이 크게 반대를 하였다. 주임신부(당시 김상규 필립보 신부)가 직접 나서서 이들의 반대 이유를 들어보니 “납골당이 혐오시설이니 나중에 집을 팔 때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성당에서는 성당 옆 반대가 가장 심했던 세 가구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집을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한 채는 이후에 성당에서 매입하였다(한 채는 다른 이가 원룸으로 개발, 다른 한 채는 그대로 살겠다고 함). 그 밖에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자 성당에서는 지역 시의원들을 초청하여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봉안시설이 혐오시설이 아님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처음 거부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봉안시설이라는 것이 잘 구분도 안 되는 실제 모습을 보고는 차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도들의 쉼터’는 성당 지하 1층에 마련되어 있으며, 대리석으로 된 열두 사도 그림 안쪽과 십자가상 주위에 유해를 안치하도록 되어있다. 특별히 습기와 벌레가 생기는 것을 영구적으로 막고자 골분을 사리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자 고인에 대한 동영상과 유족들의 편지 등을 편집하여 상영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성당에 와서 참배를 하다 보니 성당에 발걸음을 자주 않던 사람들도 오게 되고, 성당에 활력을 주는 효과도 생겼다. ‘사도들의 쉼터’ 바로 옆에 있는 대강당에서 본당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개최되는데, 본당신자들도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번 위령성월에도 ‘사도들의 쉼터’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위령미사가 봉헌된다.
부산교구 밀양성당 ‘천상낙원’
밀양성당에서는 1996년 성당을 이전하던 때부터 봉안시설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가 본당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2006년 1월 ‘천상낙원’을 개관하였다. 다른 성당과 다르게 ‘천상낙원’은 성당 옆 2층의 독립 건물로 지어졌다.
‘천상낙원’ 내 경당은 가족이나 단체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제대 밑에 김대건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천정은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성화 작품으로 꾸미고, 제대 전면에는 천국과 현세, 지옥과 연옥을 상징하는 타일조각 작품을 설치하여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했다.
밀양성당은 밀양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밀양시 승화원(화장장)이 바로 옆에 있고 성당 내 장례식장도 있어 편리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성당에 ‘천상낙원’이 설립되고 본당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했는데, 분양 가격을 낮춰달라는 어르신들의 요구에 분양 가격과 관리비도 다소 낮추었다. 또한 봉안시설의 1단은 지역 내 저소득층을 위한 공간으로 따로 마련해 두었으며, 지난 해 생활보호대상자 한 분이 돌아가셔서 처음 무상으로 안치되었다. 매주 월요일 새벽미사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미사가 천상낙원 경당에서 고인들을 위한 위령미사로 봉헌된다.
의정부교구 신곡2동성당 ‘하늘의 문’
신곡2동성당은 처음 설계부터 봉안시설을 포함하여 지어진 성당이다. 이를 위해 본당에서는 국내는 물론 외국의 봉안시설까지 견학하는 등 연구와 검토를 거듭하였으며, 1층에 봉안시설인 ‘하늘의 문’을 두고, 2층은 무덤을 상징하는 소성당, 3층은 부활을 상징하는 성전으로 꾸며 성당 전체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도록 하였다. 새로 개발되는 지역이라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지역 주민들이 알고 민원을 제기해 왔다. 이에 성당에서는 주민들을 초청하여 직접 시설을 견학하고, 안심할 수 있도록 설명회를 열었다. 땅 밑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고자 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있도록 한 설계와 바닥 틈새 빈 곳에 숯을 넣어 공기가 정화되어 흐르도록 한 정성 등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은 성당 옆으로 경기도 제2청사가 있고, 아파트단지와 주택, 바로 길 건너에 어린이 집이 있는 데도 별다른 민원 없이 지역 주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 밖에도 성당 자체가 지역에 열린 구조로 담장도 두지 않았으며, 지역 내 행사가 있을 때 찬조를 하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고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고 있다. 더불어 지역 내 무연고자를 위하여 시설의 일부를 개방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특별히 ‘하늘의 문’이 다른 봉안당과 차별되는 점은 단순한 시설에 그치지 않고 이를 사목적으로 연결하여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이들을 영적으로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만 할 수 있는 특수한 몫이기도 하다. 여기서 ‘하늘의 문’ 전담수녀가 톡톡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봉안예식, 삼우제, 50제(49제 대신 성령강림을 상징하는 50일을 기념한다.), 기일 등에 가족들과 함께 예식을 진행하고, 사별가족 모임인 ‘하늘가족 모임’을 주관한다. 부부사별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고, 자녀와 사별한 이들은 주로 개인 상담을 하고 있다. ‘하늘가족 모임’에서 사별의 아픔을 나누다보니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10회 모임이 끝나고 성서모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www.elife.or.kr)를 통해서도 고인을 추모하고, 사별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데, 이곳에는 사이버 추모관과 ‘고인에게 드리는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 등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고인들을 위한 추모미사가 봉헌된다. 점점 참석 인원이 늘어 요즘에는 400여 명의 신자들이 모인다.
‘하늘의 문’은 본당 신자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평상시 죽음의 공간을 옆에 두고 있다보니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본당 신자들이 하늘의 문 봉사자로 활동한다. 위령성월이면 주일학교 교사들이 ‘하늘의 문’에 학생들을 데리고 와 함께 기도하고,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하여 교육 효과도 뛰어나다. 본당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늘의 문’ 덕분에 신곡2동성당은 빚 없이 성전 건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늘의 문’ 전담 안 데레사 수녀는 “발령을 받았을 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처음 왔을 때 음악도 흐르고 환해서 마치 갤러리에 온 기분이었어요. 이곳에 오면 참 편안해져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봉안당을 혐오시설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하고 말했다.
본당 내 봉안시설은 원하는 때 자주 찾아볼 수 있고, 특히 거룩한 성전에 모셔져 있으니 신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장묘시설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신과 무덤을 기피하고, 죽음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인의 일반의식이 한순간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도 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미 지역 속에 들어가 있는 본당 봉안시설들이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본당들의 예에서 보았듯이 성당 안에 봉안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성당이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었다. 더불어 신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도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장례의 본래 의미를 잃어가는 요즈음 장례 문화를 선도하고,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파스카의 의미를 되새기는 복된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2009년 11월호, 글 · 사진 이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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