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마침 강복의 양식은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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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4-02 | 조회수4,016 | 추천수0 | |
[전례와 생활] 마침 강복의 양식은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미사의 마침 예식에서 강복은 인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례적인 관습에 따르면 사제는 이제 두 손을 넓게 벌리고 공동체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성서적인 강복 축원을 상기시키고 공동체는 이에 대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관습입니다. 사람이 개인이나 공동체가 만나고 헤어질 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인사를 함으로써 서로 간의 결속과 형제애를 나타냅니다. 인사를 한 다음 사제는 즉시 신자들을 향해 십자표시를 그으면서 강복을 줍니다. 이는 유다인의 오랜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미사 때의 사제의 축복은 그 역사적 기원에서 보아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강복이 미사에 들어온 것은 중세 후기입니다. 그전에는 주교가 미사 후에 퇴장하면서 신자들에게 강복하였으며 그 관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10세기 전후까지 사제는 미사 후에 퇴장하면서 강복을 하지 않은 대신(주교만이 할 수 있기에) 신자들에게 성작 또는 성체포 등을 들고서 개별적으로 강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강복은 인사와 파견사 사이에 있지만 미사경본 개정 전에는 인사, 파견사, 사제의 기도 후에 강복이 따라 왔습니다. 이는 중세기에 주교가 퇴장하면서 하던 강복을 미사 끝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며 의미로 보아 올바른 순서가 아니라고 여겨 개정 때 현재와 같이 사제가 강복한 다음에 신자들을 파견하는 순으로 바꾸었습니다.
강복 양식은 “보통 강복”, “장엄 강복”, “백성을 위한 기도”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기회에 사제는 보통 강복 대신에 장엄 강복(미사경본 123-135쪽) 또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미사경본 136-140쪽) 모든 강복은 말로 하거나 노래로 할 수 있으며 이때 사제가 공동체 위에 십자표시를 긋는 강복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장엄 강복 때 부제(사제)는 먼저 강복 받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또는 고개를 숙이도록 권유합니다. 그런 다음 사제는 공동체 위에 두 손을 펴들고 삼위일체의 기도를 말(노래)하고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라는 강복 청원으로 마칩니다.
“백성을 위한 기도” 때 처음에 무릎을 꿇거나 또는 고개를 숙이자는 권유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어 사제는 수록되어 있는 스물여섯 가지의 기도 중 하나를 바치고 기도가 끝난 다음 사제는 언제나처럼 “전능하신 천주께서는 ….”라는 강복 청원으로 끝맺습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이러한 백성을 위한 축복기도들은 옛날 사순시기의 평일미사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 해 전체에 걸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복 때 신자들의 십자성호는 미사경본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의미 있는 몸짓으로서 보존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에서 온갖 축복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 자신의 한계를 느낍니다. 인간은 자신의 허약함을 절감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온갖 불행과 시련, 어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느낄 때 인간은 저절로 하느님의 도움을 간청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은 믿음에 속합니다. 주님만이 나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확신은 그분께 나를 전적으로 맡기는 신앙의 다른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면 청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사제는 사람을 위해 하느님의 생명의 힘을 간절히 청합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위탁과 성령의 힘으로 신자들에게 축복합니다. 축복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해 하느님을 찬미하며 인간들 위에 강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이제 각자 삶의 현장으로 떠나는 신자들은 하느님의 강복을 받아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신앙인, 곧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고 살아가는 삶의 시기가 변화하는데 맞추어 교회는 다양한 축복양식을 제공해주는데 비해 실제 마침 예식 때의 강복은 천편일률적으로 한 가지뿐입니다. 간단하고 귀에 익은 한 가지만을 사용합니다. 부지런한 사목자는 전례시기에 따라 또는 본당 공동체의 특별한 날에 맞추어 베풀도록 배려한 다양한 강복양식을 이용하여 미사 올 때의 무거운 마음에서 갈 때 가볍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목회자들은 신명기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으로 교회를 유지 발전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축복이 위로부터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이라면 가톨릭교회의 전례는 결코 무미건조하거나 천편일률적이 아닙니다.
[월간 빛, 2010년 4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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