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마술과 전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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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086 | 추천수0 | |
마술과 전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세례만 받으면 구원을 얻고, 견진성사를 받으면 성령의 은총을 받아 신앙이 굳세어져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사를 받고 난 다음에 사람이 변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례 받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약점 많은 인간으로 남아 있고, 견진을 받아도 받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믿음 약한 인간으로 남아 있기가 일쑤임을 경험으로 알 수 있으니까요. 성사들을 받고나서도 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성사로 인해 얻어지는 은총은 없는 겁니까?"
마술 반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힘을 어떤 특수한 대상이나 물건을 통하여 얻고자 시도해 왔습니다. 특히 마술로써 그러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어떤 물건이나 주문 또는 예식이 그러한 마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술이란, 남의 눈을 교묘하게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원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동화를 읽다 보면 흔히 나오는 것이 마술 반지입니다.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는 반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반지, 자기 몸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 주는 반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반지,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는 반지, 요정을 불러내는 반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는 반지 등등.
결혼 반지
혼인 때 신랑 신부는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줍니다. 이 반지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상징합니다.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보면서 부부 각자는 자신과 함께 일생을 같이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와 맺은 사랑의 계약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반지가 이들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저절로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반지를 주머니에 넣어 버릴 수도 있으며, 부부간의 애정에 문제가 있을 때는 아예 반지를 끼지 않거나 아니면 함부로 다룰 수도 있습니다. 결혼 반지 자체는 그 어떤 힘도 없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천대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혼 반지는 위에 말한 마술 반지와는 달리 아무런 마술적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부부의 애정과 믿음을 증거해주고 드러내 주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참으로 자기 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멀리 출장을 가 있을 때에도 반지를 보며 자기 반려자를 생각할 것입니다. 마음 깊이 자기 남편을 믿고 사랑하는 여자라면, 반지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그것을 잃지 않도록 힘쓸 것입니다.
전례는 마술 반지가 아니다
입시철이 되면 개신교 교회나 절뿐만 아니라 성당도 입시를 준비하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로 붐비게 됩니다. 자기 자녀가 입시에 붙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간절한 소망과 함께 미사예물을 바치는 어머니들의 모습..... 정성을 다해 기도와 미사를 바쳤건만 입시에 실패할 경우 사람들은 분노를 느낍니다. 왜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가, 많은 돈을 들여 미사예물도 바쳤고 미사에도 열심히 참석했는데 어찌하여 하느님은 나의 간청을 거절하시는가. 이러한 실망 끝에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는 사람들도 있음을 우리는 주위에서 보게 됩니다.
전례생활, 특히 성사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성사를 하나의 마술로 여기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사만 받으면, 미사예물만 바치면, 기도를 열심히 하면 자기가 바라던 어떤 힘(은총)을 저절로 얻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성사를 받고 나서도 정작 아무런 은총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례를 일종의 미술 반지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례는 결혼 반지이다
전례는 어떤 신통력을 부리는 마술 반지가 아닙니다. 전례는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라던 어떤 것을 거저 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 전례는 결혼 반지와 같습니다. 결혼 반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믿는 부부에게 있어 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느끼게 해주는 힘을 지니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례는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될 때 힘을 드러냅니다. 내가 얼마큼 하느님께 성실하였는가, 얼마나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는가에 따라 전례는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아내에게 성실한 사람에게만 결혼 반지가 의미가 있듯, 하느님께 충실한 이에게만 전례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성사를 받는다는 것은, 성사가 의미하는 바를 생활 안에 실천할 때 그에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계약을 맺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저절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겠다는 것을 드러내고, 이에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서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 세례성사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사를 위시한 전례는 남녀가 맺는 혼인 계약과 같은 것이지 결코 어떤 특정한 힘을 얻게 해주는 마술이 아닌 것입니다.
결혼 반지를 보면서 배우자에 대해 맹세한 바를 상기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실천할 것을 생각하듯, 내가 참여하고 있는 전례의 뜻을 되새기며 하느님께 약속한 바를 상기하고 그에 걸맞게 살 것을 다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전례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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