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미사는 최후 만찬의 재현(再現)? | |||
---|---|---|---|---|
이전글 | [전례] 전례의 단계적 토착화 | |||
다음글 | [미사] 미사의 준비운동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138 | 추천수0 | |
미사는 최후 만찬의 재현(再現)?
어느 본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성찬 전례 때 성체 축성중 "만찬을 하시면서 빵을 들고 축복하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라는 말씀을 하시던 신부님께서 성체를 둘로 나누어 들어올린 가운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본당과는 다른 양식인지라 미사 후 신부님께 그 이유를 여쭈었더니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 성체를 축성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빵을 쪼개어 나누어주시고 이어 성혈을 축성하시지 않았는가? 미사는 최후 만찬의 재현이니까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빵을 축성한 다음에 빵을 쪼개는 것이 합당하지 않는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신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기 전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할 때 빵을 쪼개는 예절이 잘못된 것인지요?
미사에 대한 오해: 미사는 최후 만찬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전례가 미사이기 때문에 미사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우리 신자들, 심지어 일부 성직자·수도자들에게까지 퍼져 있다면 믿으실는지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가운데 하나가, 미사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신 최후 만찬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미사가 최후 만찬의 재현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미사 때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행했던 그 방식 그대로 이루어져야 미사의 본의미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때문에 성체를 축성하는 순간에 빵을 쪼갠다든지, 최후 만찬이 식사이므로 미사 역시 식사로서의 성격(예를 들어 조금은 떠들썩한 잔치 기분과 사람들과의 친교를 드러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악수나 인사 등)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만일 미사가 최후 만찬의 재현이라면, 우리는 성체 축성중에 빵만 쪼갤 것이 아니라 성체 축성 후 즉시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빵을 축성하신 다음 그것을 제자들에게 분배하셨고, 이어 포도주를 축성하신 다음 또 나누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가능한 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동작을 모방하려면, 예수님 당시의 식사 습관대로 식탁(제대) 주위에 비스듬히 누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지금과 같은 제병이 아니라 진짜 빵을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쓸데없는 성체 논쟁에 빠져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최후 만찬은 파스카 신비의 "기념물"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장차 결혼할 것을 굳게 다짐까지 한 두 사람이었지만, 세상 일이 그들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라, 어느 날 갑돌이가 외국에 나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다시 오려면 적어도 삼 년은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결혼하여 같이 갈 처지도 못 되는 이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아는 사람만 알겠지요. 하여 갑돌이는 자기가 늘 몸에 지니고 있던 목걸이를 갑순이에게 주면서 "이건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그리고 외국에서 돌아오면 너와 결혼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증표야"라고 하였습니다. 갑돌이가 떠나가고 홀로 된 갑순이는 처음엔 너무나 그가 그리워서 어쩔 줄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와 함께했던 다정한 순간들도 희미해지고 심지어 그의 얼굴도 흐릿해져 갔습니다. 이제 갑순이에게 있어 갑돌이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은 그가 남기고 간 목걸이뿐이었습니다. 목걸이는 갑돌이와 자신의 사랑을, 갑돌이의 결혼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다가 죽으실 때가 이르자 당신의 사업을 제자들이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갑돌이처럼 기념물을 남겨 놓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남겨 놓으신 기념물이 바로 "최후 만찬"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마지막 만찬은, 제자들과의 헤어짐을 서러워하여 베푸셨던 단순한 고별 만찬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무엇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내놓고자 하시는지 제자들이 세세대대로 기억하게 하시고자, 제자들 역시 당신뒤를 따라야 함을 가르치시고자 남겨 주신 기념물이 바로 최후 만찬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찬을 마치시면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미사는 최후 만찬의 "기념"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강림이라는 사건 이후에 예수님의 신비(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자 최후 만찬을 본 떠 예식을 거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미사의 성찬례 예식의 시작입니다. 갑순이에게 있어 갑돌이가 목걸이를 줄 때 어떤 식으로 주었는지, 그때 갑돌이와 자기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소에서 만났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목걸이를 통해 드러나는 갑돌이의 마음과 약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있어 최후 만찬이 어떤 식으로 치러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후 만찬이 뜻하는 바를 미사의 성찬례를 통해서 계속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동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동작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사의 성찬례는 최후 만찬을 그대로 모방하는 "재현"이기보다 최후 만찬이 뜻하는 내용을 전하는 그 "기념"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미사를 최후 만찬과 동일시하여 예식마저도 최후 만찬 때처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사의 본뜻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미사 예식이 완전하므로 더 이상 고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작과 기도문들이 과연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우리가 그 예식에 참여하면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좀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그것을 성찬례에 도입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식 자체가 아니라 예식이 담고 있는 내용의 전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사의 본뜻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동작과 기도문들을 계속 계발하되, 그 신학적·전례학적 의미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