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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신부님의 강론은 우리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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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2,077 추천수0

신부님의 강론은 우리의 양식?

 

 

결혼 전 개신교에 다니다가 아내 따라 가톨릭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개신교 예배의 특성은 성서 봉독과 그에 따른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배중의 목사님 설교는 대부분 성서와 관계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미사에 참여하다 보니, 신부님의 강론 내용이 성서와는 별로 연관을 갖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어떤 때는 성서와는 아무 상관없는 돈 이야기나 정치·사회 문제에 관한 것이 주제가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미사 모습으로 미루어볼 때 가톨릭은 성서를 별반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개신교 형제들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의 강론은 정말 복음과 별반 상관이 없는 건지요?

 

 

70년, 80년대, 우리나라가 유신 헌법과 군사 정권의 강압적인 인권 유린 사태를 겪고 있을 때, 일부 신부님들이 당시의 정권에 맞서 성명서를 내고 투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정치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 투쟁을 벌이던 신부님들을 보고 비신자들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종교인은 종교 문제에만 관여하라. 종교인이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중세 때 정치 권력에 맛들였던 나쁜 관습에 아직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인의 사명이 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전하고 실현하는 데 있으므로 자연히 정치 문제에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인이라 해서 불의한 현실을 못 본 체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 견해 사이에서, 신부들이 밖에서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미사 강론중에는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견해도 제기되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신부의 강론이 종교적인 문제와는 상관없는 정치·경제 문제에 치우쳐 있다 하여 미사 참례를 아예 하지 않거나 전혀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신부님들의 미사에 참례하러 먼 곳까지 원정(?)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강론: 미사에서의 교육

 

기원후 153년경,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이던 때 성 유스띠노가 당시의 권력층에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하고 변호하기 위하여 쓴『제1 호교론』을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던 성찬례(미사)의 구조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에 의하면, 사도들의 비망록을 읽은 다음 미사 집전자가 그에 대한 강론을 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도들의 비망록은 분명 현재 우리가 보는 사도들의 편지나 복음서였을 것입니다. 성서 말씀을 읽고 이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현실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제시하던 방식의 이러한 강론은 특히 교부들에 의해 일종의 "교리교육"의 한 방편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띠노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같은 교부들이 남긴 많은 글들이 바로 강론 때 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성 레오 대교황의『성탄 강론』을 읽어보면, 미사 강론이 차지하고 있던 역할과 자리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강론의 쇠퇴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전례 생활이 아주 빨리 쇠퇴하게 되는데, 이렇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반 백성이 전례 때 사용되는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4세기초까지만 하더라도 로마 교회의 전례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던 언어는 그 시대의 국제어로 통용되던 그리스어였습니다. 그러나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관계로 다마소 교황(304∼384년)은 로마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라틴어를 전례 언어로 채택하고, 당신의 비서였던 성 예로니모에게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게 하면서 성서의 목록을 확정하였습니다(382년). 로마 교회가 서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 새로 신도가 된 사람들 대부분이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미사를 위시한 전례 때 라틴어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말씀 전례 역시 라틴어로 거행되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강론 때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날 읽은 성서 말씀을 그 미사에 참여한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다시 번역하여 주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본래 의미의 강론은 미사 안에서 거의 무시되었고, 결국 성직자들의 무지와 신자들의 무관심으로 강론은 미사 안에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강론: 미사의 본질적 요소

 

강론의 쇠퇴는 말씀 전례의 쇠퇴와 더불어 일어났고, 이는 또한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보다는 성체께 대한 신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기형적인 신앙 생활의 발전을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전례헌장』을 통하여 전례 때 각 민족이 자기네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하면서, 말씀 전례가 활성화되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강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것은 물론입니다. 이어 새로 나온 미사경본과 함께 발표된『미사경본의 총지침』 41항, 42항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41.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며 … 신앙 생활의 영양소로서 필요한 것이다. 강론은 성경의 일면이나 미사 경문의 일면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하고, 경축하는 교리와 청중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42. 주일과 축일에 교우들이 참석하는 모든 미사에 있어서는 강론이 의무적이고 … 

 

 

강론: 말씀에 생명을 불어넣음

 

불과 90년 전에 쓰여진 우리나라의 신소설들마저 현대어로 고쳐야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문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하물며 대략 삼천 년, 이천 년 전에 쓰여진 성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문화와는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는 팔레스티나의 문화 풍토 안에서 기록된 성서를 그대로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서 말씀을 우리 시대, 우리 문화 안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성서는 수수께끼 말들로 가득 찬 책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강론은 이 성서 말씀을 현대어로 다시 전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서를 단순히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전에 쓰여진 하느님 말씀을 오늘 우리 인간 상황에 비추어 다시 그 뜻을 되새기는 것이 강론의 본질이라 하겠습니다.

 

 

강론: 하느님 말씀을 인간 삶에 적용시킴

 

하느님 말씀이 우리 삶 안에서 살아 있는 말씀이 되려면 자연히 우리 인간의 삶 전체와 관계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 종교 생활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친 인간의 삶에 대하여 교회가 발언하여야 함을 뜻합니다. 하느님 말씀이 인간의 활동 일부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느님을 복이나 주는 잡신(雜神)의 하나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강론을 하는 신부가 지나치게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정치적 발언을 한다거나 사회 문제를 건드린다면 그것은 결코 하느님을 찬미하는 행위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복음 구절을 해설하는 정도에 그치는 강론은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옳지 못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강론은 하느님 말씀을 우리 인간 삶 안에 침투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할 때 강론의 대상을 복음 해설에만 국한시킬 수 없고 오히려 우리 인간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강론자 개개인의 취향에 지나치게 의존한 강론은 하느님 말씀을 세상에 전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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