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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본기도의 역사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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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2,907 추천수0

본기도의 역사와 의미

 

 

본기도는 미사의 시작 예식을 끝맺는다. 거의 모든 전례 거행에서 한 단계가 기도 (oratio)로 끝맺는다는 것은 전례의 구조적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기도를 통하여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미사의 각 부분에서도 그렇고 또한 시간 전례나 독립된 말씀의 전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날의 본기도는 예물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와 더불어 주례자의 기도에 속한다. 이 주례 사제의 공적 기도는 반드시 주례자 혼자 말하거나 노래해야 한다. 이것에서, 주례 사제는 다른 사람들 (독서자, 공동집전 사제들 등)에 의해 대표될 수 없다. 주례사제가 바치는 본기도는 그 날 지내는 축일이나 신비 (전례주제)와 연계된 공동체 전체의 서원과 심정을 하느님께 드리면서 모든 위한 통역자의 역할을 한다. 짧은 문고로 그날 축일이나 그 날 독서 안에 들어 있는 중심 내용을 요약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그 날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이 기도문들은 참으로 소중한 보물이다.

 

전례 역사에서 본기도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즉 Oratio와 Collecta이다. 로마 전례에서 보면, 젤라시오 성사집,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본기도 본문을 제목 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일부 기도문에 Oratio라는 이름을 붙인다. 또한 로마 예식집 (Ordines Romani)에서도 항상 Oratio라고 부른다. 그리고 MR 1570까지도 Oratio라고 불렀다. Oratio라는 말은 동사 orare에서 나왔는데, “기도하다”와 마찬가지로 “말하다”, “연설하다”, “선포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oratio의 번역은 “말로 표현된 기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와 연관하여, 고대 교회에서는 강론을 통하여 말씀에 봉사하는 것과 공식 기도문 (public prayer)을 바치는 것은 사제 직무에서 가장 중요한 은사였다. 또한 일반사회에서 사용된 고전적 낱말 oratio는 orator와 연결되어 이름지어졌으며 대중 연설, 특히 판사 앞에서 자신의 고객의 변호를 하는 변호사의 공적 연설이었다. 그래서 Oratio는 중개의 뜻도 가지고 있다.

 

Collecta라는 이름은 총지침과 MR 1970/75에 미사에서 주례자가 바치는 첫 번째 기도에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반면 과거에 사용되었던 Oratio라는 이름은 일반적인 기도를 가리키게 되었다. Collecta는 “모으다”는 의미로 동사 colligere에서 나왔다. 또한 로마에서는 지역 (장소)을 나타내는 의미를 취했다. ‘collecta 교회’ (모인 교회)는 교종 순회 미사 날에 로마시에 사는 신자들이 전례가 거행되는 statio 교회로 행렬하여 모여들었다는 장소적 의미로 쓰였다. 또한 Collecta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옥좌에 바치는 한 묶음과 같이, 참석자들 각자가 마음 속으로 드리는 모든 지향들을 종합하여 주례자가 한 기도문 형식으로 모은다. 따라서 본기도는 집회의 모음을 표현한다. 

 

지난 학기에서 본 바와 같이, 주례자를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기도문들이 애용되고 반복됨으로써, 또 기도문들의 수집과 필사가 이루어짐으로써 성찬례 거행에 필요한 기도문들을 양피지로 적어 모아놓은 소기도서들 (libelli sacramentorum) 직역하면 “성사들의 책들”이 생겨났고, 곧 이어 여러 성사집들이 만들어졌다. 후대에 가서 이러한 기도문들은 단어에 단어로 반복되었거나 새로운 기도문을 형성하는데 제시되곤 하였다. 오직 오랜 기간을 거친 다음에야 주례자의 공식 기도는 고정된 양식이 되었다. Oratio는 7-8세기 이후 문자화되었으나, 4-5세기 이전부터 구전 형식으로 전수되었다. 

 

본기도는 미사 전례서에서 가장 로마다운 본문이다. 이 기도문들은 그것의 놀라운 부요함과 간결하고 짜임새 있으며, 고전적인 형식 때문에 우리는 놀라게 된다. 본기도는 고정된 구조로 전개되는데, 즉 기도를 하자는 권고, 침묵, 삼위일체 형식으로 맺는 기도, 집회가 외치는 “아멘”이다. 

 

기도하자는 권고는 가장 짧다. 주례자는 손을 모으고 (manibus iunctis) 복수형으로 “(우리) 기도합시다” (Oremus) 하고 초대한다. 손을 모은 것은 개인 기도의 표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집회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주례자는 ‘그리스도의 인격’ (persona Christi),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각 신자들의 지향을 모으기 때문이다.

 

침묵의 목적은 총지침 32항에 나와있다: “모두 사제와 함께 잠시 침묵 중에 하느님 대전 (conspectus Dei)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마음에 그들의 간청들을 상기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침묵의 이 공간에 신자들은 초대에 응답을 하고 주님의 현존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개인 기도를 그들의 마음에 형성시킨다. 조용한 침묵은 전례의 한 부분이며 구조적 요소이다. 이는 전례헌장 (30항)에서 강조되었다: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회중의 환호, 응답, 시편 교송, 대경, 성가와 함께 행동과 동작과 몸가짐 등을 올바르게 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합당한 때에는 거룩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이는 총지침 23항에 다시금 언급되었다. 여기에서 또한 침묵의 목적을 구별한다: 참회 예식과 기도하자는 초대 후에서는 마음을 추스르고, 독서 또는 강론 후에는 묵상하는 것이며, 영성체 후에는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찬양드리는 것이다. 개인기도에서 나오고 기반될 때 공동기도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 (요한 4,23)이 된다. 1967년에 나온 성음악 지침 (Musicam sacram) 17항에서 말한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신자는 전례 행위 때 바깥 사람으로 그리고 침묵하는 관망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말씀을 들음에서, 노래에서, 기도들을 경청함에서, 그리고 사제에게만 속한 부분을 선포하는 사제와의 영적인 통교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준비를 통하여 신자들은 거행되는 신비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침묵은 성령의 활동과 깊이 연관되 있다. 침묵 중에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아빠, 아버지하고 대신 간구해 주신다.

 

침묵 기도의 때는 더 이상 선택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요구된다. 따라서 침묵은 결코 생략해서는 안된다. 침묵의 길이는 적당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침묵의 길이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모으는데 짧거나, 거행의 흐름을 끊지 않도록 길지 말아야 한다. 

 

그 날에 해당하는 본기도는 주례자가 말하거나 노래한다. 이는 모든 참석자의 기도를 요약한다. “거행의 주제가 표현된다” (총지침 32): 주일, 축일과 고정된 시기, 성인의 기념, 죽은 이의 기념 등. 초기에는 이것은 관습 (그리고 때로는 의무)이었는데, 보기를 들어, 혼배와 같은 다른 예식이 동반되는 미사에서 교회력과 성인 축일은 함께 기념되었으며 어떤 의무적인 기도들 (orationes), 심지어는 7개까지 첨가되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그랬다. 오늘날에는 본기도 하나가 거행의 성격을 지시한다. 사제는 모든 참석자들이 주의를 기울이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본문을 크고 뚜렷한 목소리로 말하거나 노래한다 (총지침 12). 암송에 아무 것도 동반하지 말아야 하는데, 다른 기도들도, 노래도,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들도 (총지침 12), 또 해설도 있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집회의 응답이다. 마지막 “아멘”은 사제가 말한 기도를 집회가 한다는 뜻이며, 그 기도를 확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총지침 32). 아멘은 거행의 주체로서의 집회의 일치를 명백히 한다. 그러나 역할의 차이점 또한 드러낸다.

 

본기도 본문은 비교적 고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나클레시스 (anaclesis: 하느님의 속성을 언급) 직역하면 “위로 부른다”, “위를 향하여 올린다”는 뜻이다.

 

1. 하느님 이름: Deus (하느님), Pater (아버지) 등과 같은 유사한 것들.

 

2. 속성: 전능하신 (Omnipotens), 영원하신 (aeterne), 자비로우신 (misericors), 가장 인자하신(clementissime)와 유사한 형용사들.

 

3. 찬사: fidelium splendor animarum (신자들의 영혼의 광채)과 유사한 것들.

 

아남네시스 (anamnesis: 기념)

 

기념은 구원 사건에 대한 암시이다. 특히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드러난 아버지의 업적을 기억한다.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드리기 전에 그분이 전에 하셨던 놀라운 구원 사건을 기억하여 그 구원 사건이 오늘날에도 현존케 한다.

 

에피클레시스 (epiclesis: 성령청원기도)

 

1. 기도하는 이들의 자격: (qualificazione): ut nobis indigins famulis tuis (당신의 부당한 종들인 저희들이...).

 

2. 간청의 목적: 거행의 목적을 하느님께 밝힌다. 즉 다양하게 구현되는 신자들의 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영광송 (끝맺는 양식)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성부께 지향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부께 지향하나 성자에 대한 언급으로 기도가 끝맺을 때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성자께 지향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이 그것이다. 

 

그런데 본기도와는 달리 예물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는 항상 짧다: 성부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부께 지향되나 성자에 대한 언급으로 끝날 때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성자께 지향될 때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그래서 이 구조에 따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본기도를 분석해 보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나클레시스),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으니 (아남네시스), 

저희도 주님의 인내를 본받아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에피클레시스).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영광송)

 

초기 본기도 항상 성부께 지향되었다. 우리가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께 지향된 기도들은 후대에 나타났고 종종 반 아리우스 신학의 영향 아래에서 그랬다. 미사 전례서는 고대의 환경을 다시 살려서 확장할 가능성을 제정하였다. 따라서 총지침 32항은 말하기를: “사제의 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지향된다 (dirigitur).” 성령께 지향되는 Orationes는 물론 신학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전에서도 아주 예외적이었다 (동정녀 축성 미사의 본기도처럼 오직 소수였다). 현행 미사 전례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종교 역사 관점에서 보면, 손을 하늘로 향해 들어올리는 것은 초 세기 세계관에 부합하고 “위에 있는 신들”에게 기도하는 외적 동작이다. 다른 한편, 손을 펴서 올리는 것은 무기를 안들었다는 평화와 신뢰와 간청의 자세이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께 (출애 9,29.33; 시편 28,2; 63,5; 88,10 등등), 또는 성전을 향해 (1열왕 8,38 등) 손을 드는 것은 관습이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는 전형적인 기도의 자세였다.

 

이러한 유대인의 기도 동작은 공동 기도와 마찬가지로 개인 기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드러나게 받아들었다. 떼르뚤리아노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De oratione 14):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 의식 때문에 그들의 손을 그리스도께 마땅히 들어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손을 들어올릴 뿐만 아니라, 주님의 수난을 본받고자 손을 편다. 또한 기도에서 그리스도를 우리가 고백한다.” 팔을 펴는 자세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표지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그리스도들에게 교부들은 또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의 모습을 본다. 원래 기도 (orans) 동작의 이러한 해석은 이차적으며 은유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은 흥미있고 받아들일 만하다.

 

요약하면 팔을 펴고 하는 사제의 동작은 삼중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늘로 향한 자세는 항상 하느님의 옥좌에 대한 상징이다 (참조 1열왕에서 솔로몬이 하늘을 향해 손을 편 채 기도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기도를 상기시킨다. 참석한 모든 신자들의 기도를 주례자는 신자들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단 하나의 기도 형식으로 모아 바친다. 

 

권고할 때 주례자가 손바닥을 서로 마주 붙이는 것은 미사 중에 사제 개인 기도이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영성체 때처럼 아마도 의탁과 신뢰의 동작이다. 사제 서품에서 이 동작은 주교에게 신의를 맹세하는 예식의 부분에서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전통에서 서서 기도하는 것은 구세주의 부활을 상기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부활 50일 동안 장궤나 엎드리면서 기도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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