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감사송의 구조와 그 내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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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564 | 추천수0 | |
감사송의 구조와 그 내용
1. 시작 대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Dominus vobiscum). “또한 당신 영과 함께” (Et cum spiritu tuo). “마음을 드높이” (Sursum corda), “주님께 올립니다” (Habemus ad Dominum).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gratias agamus).”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Dignum et justum est).
대화는 유대인 모델에 뿌리박고 있는데, 곧 기도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기도로 초대하는 양식이다. 관심과 초대를 하는 이러한 말들은 특별히 식후 찬양 기도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시작 찬양과 응답은 그리스도인 용어로 번역된 유대인의 평화-양식을 근거로 삼고 있다. “마음을 드높이”는 벌써 구약성서의 표현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 손들고 마음 바쳐 기도드리자” (애가 3,41). 바울로는 “... 위에 있는 것을 찾으시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시오...” (골로 3,1-2). 3세기 초 로마의 히뽈리뚜스는 이 환호를 동일한 말마디로 보고하고 있으며, 몇 년 후에 아프리카의 치쁘리아노도 동일한 말을 자신의 저서에서 말한다: “기도 전에 사제가 감사송을 선행하여 형제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마음을 드높이 (Sursum corda) 라고 한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Gratias agamus)는 먼저 유대인의 회식에서 식후에 외우던 양식이다.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께 찬양드리자”라고 말했다 (미쉬나 트랔타트 베라코트 7,3a). 동시에 이 표현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감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berakah/eucharistia의 특별한 찬양에 쓰이는 양식화된 표현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eucharistasomen 비쟌틴 전례에서 여전히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응답인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는 헬레니즘의 기원을 갖는다. Polis (도시국가)의 집회에서 동의하는 환호는 “axios” (옳다)이다. 사실 마땅함과 옳음은 동의어이다. 즉, 감사드리는 것이 지극히 마땅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사송의 대화 부분의 목적은 모든 이가 공적 주례자와 말하는 이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한다. 도입의 “Dignum et iustum”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과 로마 전문 (Canon)의 끝에 하는 “아멘”은 양자를 밀접히 일치하게 하고, 형제와 자매와 그들의 교회적인 일치로서 모인 공동체를 입증한다.
2. 찬양 또는 감사 (감사송 자체)
감사송의 두 번째 부분인 찬양 (감사) 자체는 대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백성들이 동의하는 형식을 드러낸다. 감사송 자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앞의 두 개만을 분석할 것인데, 결론 부분인 세 번째 부분은 천사들의 찬송인 “Sanctus”에 대한 확장된 도입이기 때문이다.
2.1. 시작 구절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마땅히 찬양받으실 분이다는 것은 진정 사실이다. 하느님은 “주님”이시고 백성들의 “아버지”이시며, 본성적으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시작은 어느 감사송에서나 항상 동일하다. 본문은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지향 자체에 대한 선포로 시작된다. 지향에 대한 이러한 확증은 행위를 형태적으로 그리고 장엄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한다. 이렇게 감사를 말함은, 숙고하고 묵상한 행동으로, 그 자체에 대한 의식적으로 그리고 인격에 대한 의무적인 행위로 드러난다.
무엇보다 감사드림 (gratias agere)은 “마땅하고 옳은 일” (dignum et iustum)로 스스로 정의된다. 이 두 가지 단어는 동의어이다.
또 다른 두 개의 명사인 “aequum et salutare” (도리요 구원의 (길))가 이어진다. “Salutare” (구원)는 “구원의 길” 이태리말로는 “구원의 원천” (fonte di salvezza)으로 번역한다.
더 많이 언급할 것이지만 이것은 감사드림이 구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aequum”은 “저희 도리”로 해석되었다. 정의에 대한 은유적인 덕목인 라틴말 “aequitas” (평면, 균형, 대칭, 공정)를 하는 표현은, 무엇보다도 신들에게 바치는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pietas” (신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낱말들의 법적인 성질이 즉시 보여진다. 모든 사람은 기도를 바칠 때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로마가 복음화되자 로마 교회의 기도 방식 안으로 종교에 관한 로마의 법적인 개념을 포함한 로마 문화의 모든 양식과 특성이 들어오게 되었다. 가정 예배에서나 공적 예배에서나 동일한 특징이 모든 예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이고 적어도 감성적이거나 신비적인 특징과 관련되지 않은, 법률적인 특징이었다. “ius civile” (시민법)가 시민 개개인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듯이, “ius divinum” (신법)은 시민들과 신적 권력 사이의 관계를 규정했다. 따라서 로마인들의 종교 어휘에는 당연히 법률적인 단어들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감사드림은 완전하고도 충만한 예배이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의무 자체를 지향함을 감사송에 도입이 된 이 법률적인 단어들이 분명히 보여준다.
2.2 본론
특별한 축제의 신비 또는 일반적인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서 나오는 찬양하는 특별한 이유가 그 뒤를 따른다. 이는 감사송의 핵심을 이룬다. 구술 양식이며 감사 행위의 동기에 대한 선포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본문은 바울로의 사상이 엿보인다. 하느님의 선물, 다시 말해서 구원과 은총은 불어나면서 우리 감사의 행위를 충만케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니, 은총이 좀더 많은 이 사이에 불어나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감사도 그만큼 더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2고린 4,15).
우리가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의 주도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안에서 은총을 발견하는 경험에서 우리의 감사드림이 유발된다. 이것이 근본적인 관점이다. 곧 우리들의 감사드림은 우리 자신들이 행위자가 아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이것을 생산하신다. 우리 입술로 하는 찬미는 선물이며, 정확하게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신앙과 같다. 특히 감사송의 바로 이 부분에서 아나포라는 신앙고백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로는 두 가지 개념을 말한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움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면 (omologeitai) 구원에 이릅니다” (로마 10,10).
많은 수의 감사송 각각의 감사 행위 내용에 한계를 지울 수는 없다. 1969년 라틴말 미사 전례서에서 감사송은 82개이고 1975년 미사 전례서에서는 4개를 더했다. 사실 각각의 감사송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 역사 중에서 어떤 특별한 요소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이다. 회개와 인간 구원의 서술로 또는 거행하는 신비에 대한 특별한 강조와 함께, 전례 주년에서 감사드리는 주제로 변한 특별한 순간 각각이다. 또한 거행되는 전례 축제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께가 아닌, 보기를 들어 성인들, 이들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 지향된다면, 구원의 신비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측면을 반영하는 감사송은 항상 하느님 중심적 (teocentrico)이다.
감사송 본문에서 서술하는 대상은 항상 선물인, 곧 하느님께서 행하신 은총과 구원이다. 하느님의 선물을 기념하고 이야기하며, 인간은 그 선물을 찬양하면서 응답한다. 선물이 수여자를 계시하고 드러낸다는 내적으로 유일한 운동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선물을 찬양한다. 수여자와 선물을 찬양한다는 것은 무상으로 받아들인 선물을 더욱 명백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물을 받아들임은 선물을 받은 이가 의무를 지닌 이로 남는다는 뜻이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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