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축성 말씀을 낭송할 때 공동집전자가 취하는 동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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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12-19 | 조회수3,234 | 추천수0 | |
[하느님 백성의 예배] 축성 말씀을 낭송할 때 공동집전자가 취하는 동작 - 그 의미에 관한 논란
공동집전 미사의 전통
공동집전은 초세기부터 있었던 성찬례 거행의 형태로서, 단일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봉헌되는 제사의 단일성과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주례 사제(주교)를 중심으로 한 사제단의 일치와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온전한 형태이다.
5세기 이후, 로마에서는 신자와 성당의 수가 점차 늘어나 사제들이 각자 자신의 본당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것이 주가 되면서 공동집전은 큰 대축일과 교황의 순회 미사에 한정되었고, 8세기 이후로는 추기경들만이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공동집전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13세기 이후에는 그마저도 주교 서품 미사와 사제 서품 미사로 축소되었으니, 결국 신부들의 공동집전은 8세기 이후에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는 크게 네 가지 형태였다. 주교가 집전하고 공동집전자가 참여하며 부제와 차부제가 있는 가장 성대한 형태인 ‘주교 미사’, 주교 또는 주교를 대신하는 사제가 집전하고 공동집전자 없이 부제와 차부제가 있는 ‘장엄 미사’, 장엄 미사의 형식을 어느 정도 준수하면서 본당에서 신부가 성가대와 함께 거행하는 ‘창 미사’, 성가대가 없어서 본당신부가 노래하지 않고 거행하는 ‘낭송 미사’의 형태이다. 이 가운데 주교미사가 공동집전의 유일한 형태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 거행의 형태를 ‘부제가 없는 미사’, ‘부제가 있는 미사’, ‘공동집전 미사’, ‘복사 한 명만 데리고 드리는 미사’의 네 가지로 개정하였다. 이리하여 공동집전 미사는 이제 특별한 제약이 없이 자주 거행할 수 있게 되었고, 본연의 미사 거행 형태로서 권장되고 있다. 오히려 이전에 사제가 회중 없이 혼자서 주로 거행하던 미사는 부득이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적어도 복사 한 명은 데리고 하도록 한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미사는 사제가 혼자서 개별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공적인 집회와 거기서 드러나는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임이 강조되었다. 이전에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라는 명칭을 2002년 “로마 미사경본”에서 그냥 ‘미사’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8세기 이후 거의 사라졌던 전통을 회복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감사기도의 축성 말씀을 낭송할 때에 공동집전자가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하느냐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경신성사성에서 어느 정도 공식적인(?)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예규의 형성 과정
1963년 11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에 공동집전 미사의 예식을 연구할 임무가 연구 16그룹에 위임되었다. 1964년 6월 19일 로마의 성 안셀모 성당에서 공의회 회원 모두가 모여 시험적으로 공동집전 미사를 거행하였고, 그 뒤에 드러난 중요 사항들에 대하여 누이즈(A. Nuij)가 전례 학술지에 발표한 글 중에 축성 말씀을 낭송할 때 공동집전자가 지시의 동작으로 오른손을 펼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것은 비잔티움 전례에서, 주례 사제가 축성 말씀을 낭송할 때 부제가 영대를 걸친 오른손으로 회중에게 주례 사제가 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을 공동집전 미사에 적용한 것이다. 이 동작을 이해하려면 감사기도의 형성 과정을 잠시 살펴보아야 한다.
초세기에 감사기도의 원형은 축성 기원 다음에 성찬 제정문과 축성 말씀이 나오는 순으로 되어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다음 부분에, 성체를 통해 일치하는 교회에 구원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간구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 성령의 활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4-5세기를 거치면서 동방 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언급된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신성을 강조하여 그것을 단순한 언급이 아니라 축성 기원으로 보았고 그와 관련한 신학 논쟁이 있었으며, 그 결과로 성찬 제정문 앞에 있던 축성 기원이 뒤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성찬 제정 보도문 다음에 나오는 축성 기원에서 성변화가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며, 사실상 대부분의 동방전례에서는 뒤에 나오는 이 축성 기원에서 성체와 성혈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한편, 서방교회에서는 이미 5세기경에 암브로시오가 축성 말씀에서 성체와 성혈이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이 점은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이후 비잔티움 전례에서는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성찬 제정 보도문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이 축성의 효력을 지니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며, 그 결과 주님의 말씀도 축성의 효력을 지닌다는 신앙을 표현하려고, 주례사제가 주님의 말씀을 낭송하는 순간에 부제가 오른손으로 가리켜 보여주는 이 동작이 비잔티움 전례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곧 이 동작은 축성의 순간을 가리키는 ‘지시’의 동작인 셈이다. 부제는 축성을 기원하지 않는다.
한편, 공동집전 미사의 예식을 준비했던 연구 16그룹의 대변인은 바가기니(C. Vagaggini)였는데, 그가 1964년 4월 2일에 28명의 전문 참고인들에게 검토하도록 제시한 초안에는 동작의 의미까지 밝혀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할 때, 몸을 조금 숙이고 오른손을 제병을 향해 펼치는데, 이것은 성령의 활동으로 인한 성화와 축성의 표지이다.”라고 되어있었다. 이것은 오른손을 펼치는 동작을, 앞서 누이즈가 비잔티움의 전통에 따라 제시한 ‘지시’의 의미와는 달리 ‘축성 기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 참고인들의 비평을 거친 뒤 5월 30일에 작성된 둘째 초안에서는 “축성 말씀을 바칠 때, 오른손을 제병을 향해 펼친다. … 축성 말씀을 바칠 때, 오른손을 성작을 향해 펼친다.”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동작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이 제거된 것이다. 6월 17일의 셋째 초안과 6월 20일의 넷째 초안에서는 이와 관련된 변동 사항이 없었으며, 마지막 초안이 공의회 주교들의 인가를 받아 6월 26일에 “공동집전 예식”이라는 이름으로 교황에게 제출되었다. 그리고 다시 두 차례, 곧 12월과 이듬해인 1965년 1월의 수정을 거쳐 “축성 말씀은, 오른손을 제병과 성작을 향해 펼치고서, …”라고 더욱 간단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1965년 3월 7일 마침내 이 전례서의 표준판이 반포되었는데, 그 직전에 중요한 수정이 가해져서 “축성 말씀은, 좋다고 보이면, 오른손을 제병과 성작을 향해 펼치고서, …”라고 확정되었다. 곧 이 동작은 의무가 아닌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이에 따르면 중대한 의미는 지니지 않는 동작으로 해석된다. 이 예규는 2008년에 “로마 미사경본” 제3판의 수정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현재에 이른다.
논란
표준판이 반포된 이후 오른손을 펼치는 동작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곧바로 대두되었다. “노티시애(Notitiae)” 1965년 5월호에, 오른손의 한 쪽을 기울여서 성체와 성혈을 가리키는 지시의 의미로 펼쳐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비록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라 해도) 긍정의 답이 주어졌다. 이 대답은 오른손 동작을 비잔티움 전통에 따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1982년 8-9월호에는 마르티몰트(A. G. Martimort)가 바가기니의 의견을 반박하고 경신성사성의 대답을 지지하는 논고를 게재하였으며, 1985년에 반포된 “주교 예절서” 106항과 그 각주에서도 같은 해석이 발견된다.
그러나 1969년 이후로 바가기니, 마짜렐로(S. Mazzarello), 묄러(E. Moeller), 마데야(S. Madeja), 로디(E. Lodi), 카친스키(R. Kaczynski), 마이어(H. B. Meyer) 등 대부분의 저명한 전례학자들이 이것을 축성기원의 동작으로 보아 오른손 안수의 동작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잔티움 전례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동방전례와 달리 로마 전례에서 성변화가 완성되는 순간은 축성기원 다음에 나오는 축성 말씀이며, 축성의 순간에 합당한 동작은 지시가 아니라 축성 기원의 동작이고, 로마 전통에서 축성 기원의 동작은 안수였기 때문이다.
이미 1-2세기의 “사도전승”에서 감사기도 때에 사제들이 예물을 향해 양손 또는 한 손을 펼친다는 언급을 볼 수 있으며, 3세기 성 갈리스토 지하무덤의 한 성당 벽화에는 성변화와 관련하여 예물에 양손으로 안수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오늘날에도 견진성사에서는 주교가 견진 대상자들에게 양손으로 안수하며 기도한 뒤 오른손으로 이마 위에 안수하면서 축성 성유를 발라준다. 또한 사제 서품식에서 사제단은 수품자에게 양손으로 안수한 뒤 오른손으로 안수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서 바가기니는 “축성의 순간에 공동집전자들은 축성기원의 모양으로 손을 뻗어야 한다. … 이는 ‘이 빵’과 ‘이 잔’을 말한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단순하고도 저급한 지시적 동작을 하는 것과는 한참 다른 것이다.”라고 했다.
애초에 누이즈가 비잔티움 전통에서 부제가 하는 동작을 로마 전례에서 사제가 하는 동작에 적용한 것이 문제였다. 부제는 사제와 달리 축성을 기원하지 않으며 지시하는 동작을 할 뿐이다. 게다가 로마 전례의 감사기도에서 결정적이고 핵심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동방전례에서는 그 위치도 다르고 지니는 무게 또한 다르다. 아마도 그래서 공의회는 “좋다고 보이면”이라는 표현을 삽입하여 이 동작을 없애기를 내심 바랐는지도 모른다.
마르티몰트는 “노티시애”에 실은 그의 글에서 바가기니를 반박하기 위해, 전례 동작은 그에 동반하는 말씀에 의해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하면서 그 동반하는 말씀이 “이것은 … 이다.”이니 그 동작의 의미가 지시라고 했는데, 그것은 동방전례에서 주님의 말씀이 축성 기원 앞에 나오는, 성찬 제정 사건에 관한 단순한 보도문으로 묻혀버리는 경우에나 그러하다.
로마 전례에서 주님의 말씀은 단순히 신학적으로 저급한 지시의 말씀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축성 말씀이었고, 따라서 마르티몰트가 제시한 논리대로 본다고 해도 그에 동반하는 동작은 축성 기원의 의미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손을 펼쳐서 지시하는 것이 로마 전통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예법이라는 바가기니의 의견에 대하여, 만일 이것이 이전 전통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공의회의 혁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의회의 대변인은 스스로의 의견을 포기하는 공의회의 종이라고 했는데, 개혁이란 반드시 살려야 할 전통의 본질을 현실에서 올바로 구현해 내려는 연속성에 대한 진정한 추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전통과 전적으로 단절되어 구현해 내어야 할 그 어떠한 연속성도 목표로 지니지 못한 채 새로움만 추구하는 것은 이미 개혁이라 부를 수 없고 맹목적이며 허황될 뿐이다.
그리스도교의 첫 전례인 성찬례는 주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며, 전례 개혁 역시 주님의 모습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주님께서는 흐려져 가는 유다교의 본질을 올바로 살려내고 완성하시고자 유다교의 관행을 부수고 개혁하신 것이다. 베네딕토 16세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과거와의 단절로 보아서는 안 되고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제 문이 열리어 다시 나아가야 할 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이 내어놓은 모든 결과는 사실상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그동안 닫혀있었지만 신자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반드시 열려야 할 길을 열어놓고 이제 그리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회 이후 모든 것이 완벽히 정리되어 우리 앞에 제시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제 다시 나아가기 시작하는 참된 전통의 길에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희망과 기쁨을 맛보는 일일 것이다. 전례 전통에서 발견되는 성찬례 거행의 참된 신학을 복원하여 이제 새로이 제시되어 그 앞길을 열어놓은 공동집전 미사도 그러하다.
* 신호철 비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전례학 박사.
[경향잡지, 2010년 12월호, 신호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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