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상징] 거룩한 표징: 거룩함과 아름다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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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1-11 | 조회수1,937 | 추천수0 | |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거룩함과 아름다움
이슬람교 창시자는 “하느님은 아름다우시며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편 저자도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께서 광채와 함께 나타나시네.”(시편 50,2)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아름답게 만드는가? 여기에서 인용한 두 종교적 지혜의 원천들은 이러한 질문을 특정한 대상을 넘어서는 것으로 만듭니다. 이 원천들은 누가 아름다운가라는 물음을 통해 바로 하느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존재가 완성됩니다. 합일과 지혜와 사랑과 아름다움은 이러한 완성 안에서 아무런 모순 없이 일치를 이룹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과 활동 안에서 하느님의 속성에 해당하는 고유한 것이 늘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종종 아름다움은 선하지 않고, 선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예술에서 발생하고, 인간을 경멸하는 상황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인간적 선이 드물지 않게 예술적 아름다움 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저속한 것이 마치 예술인 것처럼 착각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진기한 말을 남긴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합니다.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여기에서 선과 사랑과 분리된 단독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와 거룩한 인간이 발휘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의 한 임금 앞에서 “당신께서는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시며”(시편 45,3)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노래를 바로 예수님께 적용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판관 앞에 굴욕적인 죄인으로 끌려 나오셨을 때나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아름다움도 풍채도”(이사 53,3 참조) 없었지만, 내면으로부터 빛을 발산하는 존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심연을 꿰뚫어보는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시기에 가장 거룩한 분이시며, 가장 고귀하신 분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십니다. 성경은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모습에 대비되는 하느님 아버지께 들어 올려진 하느님 아드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에서 그토록 자주 분리되었던 아름다움과 사랑이 여기에서 다시 영원히 하나로 결합됩니다.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묵시록은 이러한 선과 아름다움이 일치를 이루는 자리를 완성된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도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밝혀지고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묵시 21,23.27 참조).
전례와 일상생활 안의 거룩한 표징은 매우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표징은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광채를 최소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2011년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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