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상징] 거룩한 표징 : 감실과 영원한 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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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1-11 | 조회수2,486 | 추천수0 | |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감실과 영원한 빛 (1)
저는 저의 어린 시절 수녀들이 운영하던 병원의 경당에 들어서면서 매우 강력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신앙 체험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때가 아마 194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의 고향에 있던 시립병원은 환자 간호를 위해 십자가 수녀회 수녀들의 도움이 매우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도 경당을 감히 폐쇄할 수 없었습니다. 꽃, 불붙인 초, 수를 놓은 하얀 아마포, 분향 향기 등은 당시 어린아이였던 제가 그 경당을 조금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맛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수녀들과 그들이 돌보는 몇몇 환자들이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성광 안에 모셔진 축성된 성체, 곧 성사적으로 빵의 형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을 본 듯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어쩌면 경당으로 저를 데려 가신 어머니에게 이 경당을 이토록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물어보았던 기억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성체를 통해 우리는 빵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모십니다. 이로써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의 생명을 위한 빵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인내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성숙이 필요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정화도 필요합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톨릭교회에는 미사가 없을 때도 성당에 와서 감실 앞에서 기도하며 머무는 오랜 관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감실 안에 빵의 형상으로 현존하십니다. 이로써 환자와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언제든 이 거룩한 양식을 노자 성체로 받아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현존”하십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지치고 낙담하여 절망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시며, 이들에게 기운을 차리게 하고 위로를 보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당신을 찾아와 경배하며 예언자 사무엘처럼 단순히 “예. 저 여기 있습니다.”(1사무 3,4)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통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현존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어디에나 계시지만, 역사와 한계를 지닌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확실하게 만나는 특정한 자리가 마련되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2012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감실과 영원한 빛 (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당신을 찾아와 경배하며 예언자 사무엘처럼 단순히 “예. 저 여기 있습니다.”(1사무 3,4) 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통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현존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어디에나 계시지만, 역사와 한계를 지닌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확실하게 만나는 특정한 자리가 마련되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개신교 계통의 출신으로 테제 공동체의 수도원장이었던 로저 슈츠(Roger Schutz)는 자신이 거주하던 마을의 가톨릭 성당 감실 앞에서 오랜 시간 기도드린 후, 그 성당을 두고 “여기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자리는 그리스도인 각자와 그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영적인 쇄신을 이루는 원천이 됩니다.
감실 앞에는 지속적으로, 이른바 ‘영원한’ 빛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불빛은 성당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성사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그 불빛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절로 인사를 드리도록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고요히 타오르는 그 불빛은 일상생활의 고달픔을 안고 기도하러 온 사람들의 마음의 불안을 서서히 가라앉혀 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불빛은 성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또한 다른 이들을 위하여 타오르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 불빛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위하여 헌금을 하며 복음에서 소개하는 한 여인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애타는 사랑으로 그분께서 돌아가시기 전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아낌없이 그분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요한 12,3 참조).
성체조배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물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감실이 비어 있고 성체조배 하는 장소에 조배하는 사람이 없어 적막하다면, 나라와 사회는 무정하고 냉혹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음악 연주장이나 폐허가 되어버리게 될 것이고, 비록 신앙 없이 살아가는 사람까지도 슬픔을 맛보게 할 것입니다. 감실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도록 하는 사람은 사랑이 꺼지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입니다. [2012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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