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월] 요셉 성월의 유래와 신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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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2-16 | 조회수3,821 | 추천수1 | |
2. 요셉 성월의 유래와 신심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의 양부(養父)인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인 요셉 성월의 유래를 살펴본다. 교회는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이 있는 3월을 요셉 성월로 지정하여 의인(義人)이며, 신앙인의 모범이요,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수호자인 성 요셉의 덕을 기리고 본받는다.
1) 유래와 신심
교회 전례력을 보면 3월은 요셉 성월이고, 3월 19일은 성 요셉 대축일로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란 제한적인 명칭이 붙어 있다. 즉 성 요셉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요셉 성인 공경에 대한 최초의 흔적은 4세기 초의 동방 교회에서 찾을 수 있고, 800-900년대 콥트 교회의 달력 7월 20일자에 나타난다. 서방 교회에서는 ‘주님의 양부’라는 칭호로 9-10세기에 지역 순교자 일지에 기록되었다. 1129년에 볼로냐(Bologna)의 한 교회를 처음으로 요셉 성인에게 봉헌하였으며, 이후 점차 교회 달력에 수록되어 ‘마리아의 배필’ 요셉은 하느님의 어머니 공경에 따라 중세기에 빨리 전파되었다. 이러한 전파는 베르나르도(Bernardus de Clairvaux, 1090-1153),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제르트루다(Gertrudis, +1302),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 Senensis, 1380-1444), 제르송(J. de Gerson, 1363-1429) 등 유명한 성인과 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3월 19일 요셉 축일은 12세기경에야 정착되었다. 그런데 성인의 사망일을 알 수 없으므로 축일 선정 이유는 단지 추측일 뿐이다. 당시의 십자군은 나자렛에 요셉을 공경하기 위한 교회를 세웠다.
요셉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14세기에 주로 작은형제회를 통하여 전파되었다. 1479년에 작은형제회 회원이었던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 재위)가 이 축일을 전 교회로 확대하였다. 그레고리오 15세(1621-1623 재위) 교황은 이 축일을 1621년에 의무 기념일로 격상시켰고, 그때부터 성 요셉 공경에 대한 바로크 양식의 그림과 조각이 성행하였다. 또한 성 요셉 신심을 위해 미사 기금을 봉헌하거나 제대 또는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은 성 요셉 공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총을 받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유로 학교 · 교회 · 교구 · 병원 · 대학, 특히 여자 수도회 혹은 어떤 지방이나 국가 전체가 성 요셉을 수호자로 모시게 되었다. 즉 멕시코는 1555년, 캐나다는 1624년, 페루와 보헤미아는 1655년부터 성 요셉을 국가의 수호성인으로 모셨고, 교황 인노첸시오 11세(1676-1689 재위)는 성 요셉을 중국(1678)과 벨기에(1679)의 수호자로 공식 인가하였다. 또한 조선 2대 대목구장이었던 앵베르(L. J. M. Imbert, 范世亨, 1796-1839) 주교의 요청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 재위)는 1841년 8월 22일자로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정하였다. 교황 비오 9세(1846-1878 재위)는 1870년에 성 요셉을 ‘교회의 수호자’로 일컬었고, 축일 등급 순위를 둘째 등급으로 격상시켰다.
레오 13세(1878-1903 재위) 교황은 1889년 성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델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노동자의 수호자’라는 칭호는 교황 베네딕도 15세(1914-1922 재위)가, ‘사회 정의의 수호자’라는 칭호는 교황 비오 11세(1922-1933 재위)가 부여하였다. 미사 경본에 있는 고유 감사송은 1920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항상 사순 시기에 이 축일이 해당되므로 지역 주교회의는 다른 날로 축일을 옮겨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요한 23세(1958-1963 재위) 교황은 1962년에 성 요셉의 이름을 미사의 감사 기도문에 수록하게 하였다. 또한 비오 12세(1939-1958 재위) 교황은 1955년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대축일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1969년의 새 교회력에서는 등급 순위가 둘째인 의무 기념 축일에서 의무가 아닌 기념일로 조정되었다.
1840년대부터 성 요셉 대축일이 들어 있는 3월을 요셉 성월로 지내면서 그의 덕을 기리고 본받기 시작하였는데, 요셉 성월 신심서가 처음 발행된 것은 1850년이고, 5년 뒤 1855년에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교황 비오 9세는 당시 3월에 매일 요셉 성인께 간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영적인 은사를 베풀었고, 1865년 4월 27일에는 3월을 특별히 성 요셉에게 봉헌된 달로 설정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쾀쾀 플루리에스>(Quamquam pluries, 1889. 8. 15)에서 성 요셉의 지위와 요셉 신심의 이유를 분명히 하였고, 3월에는 매일 성월 기도를 바치도록 권고하였다. 그리고 1909년 3월 18일에는 여러 주교와 수도원장들이 제시한 <성 요셉 호칭 기도>를 인가하고 보급하였다.
2) 현대적 의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직전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의 준비와 성공을 위하여 나자렛 성가정의 가장이요, 성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도움을 위탁하였다(1961. 3. 19). 바오로 6세(1963-1978 재위) 교황도 현대 교회에서 성 요셉의 사명을 “보호와 방위, 수호와 원조”라고 하였다. 현대 세계에서 교회가 해악이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요셉의 사명은 바로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비오 11세 교황은 요셉의 중재란 “남편의 중재 · 양부의 중재 · 가장의 중재”라고 하였다(1935. 3. 19). 성 요셉은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양부요, 돕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레오 13세 교황은 성 요셉이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고 하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의 모범이고, 미혼자 · 독신자 · 수도자 · 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이다. 그리고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시므로 가톨릭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라고 하였다(1889. 8. 15). 이상의 교회 가르침이 요셉 성월 때 행하는 여러 기도에 반영되어 있다. 성월이 목표는 성월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월에 행한 기도와 모범을 일 년 내내 가정과 사회에서 구현하는 데 있다. 성 요셉은 교회 전체와 나라 지역의 수호자요, 노동자 · 가정 · 동정녀 · 환자 · 임종 환자의 수호자인 동시에 요셉회 · 수공업자 · 벌목자 · 목수 · 기술자 · 개척자 · 여행자 · 묘지 관리자 · 추방자 · 신혼부부 · 가정 · 처녀 · 순결 교육자 · 회의에 빠진 자 · 눈병 환자들의 수호자이다. 그리고 유혹당할 때, 머물 곳이 없을 때의 수호자로 도움을 주고 있다.8)
3) 한국 교회와 요셉 성인
조선 포교지가 북경교구에 예속되어 있던 관계로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조선 대목구의 주보로 모셔왔다. 조선 2대 대목구장인 앵베르 주교가 1838년 12월 1일자로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새로운 주보로 ‘聖母無染始孕母胎’를 정하여 줄 것을 청했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자로 성 요셉을 함께 주보로 모실 것을 조건으로 이를 허락하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문서에 나타난 기록이다. “1841년 8월 22일에 있었던 성하의 공식 알현 예식 중에서. 갑사의 주교이자 조선의 대목구장인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의 겸손한 청원에 대해서, 하느님의 섭리로 우리 장상이신 그레고리오 16세 성하께서는, 포교성성 장관인 본인이9) 아래와 같이 기록하도록 하시며, 자애로우시게도 선교지의 주보성인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호칭 아래 기념하도록 선포하셨다. 그렇지만 요셉 성인의 축일도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선교지의 공동 주보로 유지하도록 하셨다.”10) 이에 한국 교회는 ‘요셉 성인과 성모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모시게 되었다.
8) “한국가톨릭대사전” 9권, 6551-6552쪽. 9) J. Wesser 대주교. 10) “한국천주교회사” 2,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323쪽.
[교회와역사, 2013년 2월호, ‘聖若瑟聖月’(저자 들라플라스Delaplace 번역 유은희 체칠리아 수녀(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에서 발췌, pp.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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