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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거룩한 표징: 영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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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7 조회수4,194 추천수0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영성체 (1)

 

 

4세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 때 손바닥을 평평하게 하거나, 손가락을 펼치지 말고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려 임금님을 맞이하는 옥좌처럼 만드십시오. 그리고 손을 약간 오그려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아멘’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 성체를 손으로 집어 눈을 거룩하게 하면서 입으로 모십시오. 그러나 이때 성체를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영성체 후 기도를 기다리면서 그러한 신비를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라는 가르침으로 영성체에 관한 교리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가르침에서는 그 당시 이미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대단한 존경과 함께 손으로 모시는 영성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는 거룩한 신비에 대한 외경의 표지로 입으로 영성체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는 포도주의 형상을 한 그리스도의 피를 빵과 같이 모시는 양형 영성체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교회와 신앙의 분열을 초래한 16세기에 벌어진 논쟁에서 신자들에게도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이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에게도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다시 허락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외경심 없는 마음으로 나아가 무례하게 성체를 모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영성체하는 신자들은 영적으로 합당하게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특히 중죄를 범한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 교회,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않고서 ‘주님의 식탁’ 앞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 중세에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수도자들조차도 일 년에 몇 차례만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러자 교황과 공의회는 영성체를 자주 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다만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스스로 내적 성찰을 통해 그릇된 길에서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영성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이들은 내적 성찰 없이 많은 신자 무리에 휩싸여 참석하지 말아야 하거나, 아니면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예식에 참여하는 자세로 성체를 모십니다. [2013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영성체 (2)

 

 

성체를 합당하게 모시기 위해서 신자들은 내적으로나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체를 모시는 데 필요한 외적 조건도 존중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셔야 합니다. 이러한 경외심은 몸의 자세로도 드러납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자세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신자들은 서서 영성체를 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벌어진 손으로 성체를 모시기도 하였고, 손바닥 위에 수건을 올려놓고 영성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입으로 영성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체를 자주 모시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시절도 있었고, 또 어떤 시절에는 영성체를 자주 해야 한다는 권고가 따랐습니다. 이 모든 변화된 영성체 형식은 경외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서서 영성체 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신자는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기로 결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에서도 무릎을 꿇거나 혹은 서서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는 입으로 모시거나 손으로 모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주교는 유감스럽게도 영성체와 관련한 그릇된 관행도 보게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장갑을 낀 채로 영성체를 하러 나오기도 합니다. 손가락 끝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성체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체를 모시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태도는 다른 신자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고, 적지 않은 신자들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입으로만 영성체를 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원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청원은 전례교육을 강화하고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심의 문화를 다시 도입할 것을 기대하는 소망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성경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통하여 야기되는 영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 인물은 주님을 자신의 지붕 아래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 카르파나움의 백인대장입니다(루카 7,6 참조). 그리고 또 한 인물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기 위하여 기쁨에 넘쳐 앞질러 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 자캐오입니다(루카 19,5 이하 참조). [2013년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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