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를 살다: 성찬 전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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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2-13 | 조회수5,174 | 추천수0 | |
[전례를 살다] 성찬 전례
어렸을 때 가진 미사에 대한 기억 가운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부모님과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배운 엄한 교리교육 때문인지 왜 그리 미사가기가 싫었던지, 가더라도 만화방에서 놀다가 어떻게든 늦게 성당에 들어 가려고 머리를 굴렸습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거룩하시도다’ 뒤에 종을 치는데 그 종 치기 전에만 들어가면 미사가 된다고, 그러면 죄가 안 된다고 잘못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시도다’ 앞부분은 예비 부분 또는 전미사 부분이라고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학교에 입학한 후 어느 땐가 옛 미사경본을 찾아보니 미사 순서에서 정말 ‘예비(豫備) 미사’라는 표현의 작은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비(豫備)라는 말을 앞 또는 전(前)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라 예비 신자들이 세례 받은 신자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부분, 곧 오늘날의 ‘말씀 전례’ 부분을 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찬 전례’를 뜻하는 ‘제헌 미사’와 대별되는 표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에도 성찬 전례는 미사의 중심부분이고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나오는 부분만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배웠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부분을 놓치면 기다려서 다음 미사를 보아야 한다고 알았습니다.
말씀 전례가 미사의 본질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성품성사를 제외한 다른 성사 전례나 예식에도 있기 때문에, 성찬 전례는 미사에만 있는 고유 전례이자 중심 부분입니다. 바로 이 전례 중에 최후 만찬 때와 같이 십자가의 제사와 일치, 나눔의 잔치가 성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전례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기념하면서 성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제물을 봉헌하며, 거룩한 식사로 주님과 하나 되고 이웃과 일치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성찬 전례의 원래의 고유한 명칭은 ‘감사 전례’입니다.
신앙심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잔치가 인간적 일치의 체험일 뿐 아니라 종교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음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식탁 주위에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오직 하느님의 돌보심에 감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식탁에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의 베푸심과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때도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였고, 예수님은 모든 가장(家長)이 행하듯이 식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식탁 위에 있는 빵을 들어 아버지를 찬양하는 간단한 기도를 바치십니다. “이 땅에서 빵을 생기게 하신 세상의 왕이신 우리 주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리고 예수님은 식탁에 둘러앉은 제자들의 수만큼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그들에게 한 조각씩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그 다음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은 다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가장들이 성대한 식사 후에 행하듯이 우선 포도주 잔을 들어 하느님을 찬양하는 보다 긴 기도를 다시 바치신 다음 제자들에게 잔을 돌리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각자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잔의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먼저 예수님이 주시는 잔을 받아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이 잔치가 다른 모든 잔치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주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치실 몸, 당신이 흘리실 피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은 이 식사의 시작과 끝에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의 희생을 미리 행하신 것이고 또 그 희생은 이 성찬에 현존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말씀으로 후에 이와 같은 희생을 항상 재현할 것을 교회에 위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의 유언을 유다인들의 잔치와 관련시키셨고 또 그 잔치 중에 신약의 기념제를 위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새로운 것은 간단한 시작기도 끝에 주신 한 조각의 빵, 하느님을 찬양하는 보다 긴 기도 끝에 주신 한 모금의 포도주에서 실현되셨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집전자는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 다음 먼저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예물 준비 때 빵과 포도주를 건네고 바쳐진 빵과 포도주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 성체의 빵을 쪼개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줍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제단으로 가지고 가는 행위는 우리가 미사에 기여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성체 사건에 실제로 참여한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금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예물 준비에 참여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대축일에 예물에 향을 피우는 것은 향연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듯이 우리의 예물을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께서 그 예물을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으로 우리에게 다시 주신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느님 앞에 바치는 참 예물은 빵과 포도주, 우리가 내는 금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서 바치는 ‘산 제물’(로마 12,1)로 드려야 합니다.
예물 준비와 빵의 나눔 사이의 부분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찬 기도’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감사 기도’ 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성경의 기록을 보면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리고 “포도주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사의 이 부분은 빵과 포도주로써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전에는 변화를 미사의 주요 부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대부분이 감사 기도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께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표현하신 말씀을 인용하는 중간 부분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사제 홀로 그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성변화의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은 기도의 일부, 바로 감사 기도의 일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을 하지 않으면 빵과 포도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그 말씀은 감사 기도 안에서 할 때만 거룩한 변화의 힘을 갖습니다. 감사 기도 전체가 아버지께 대한 감사 기도요 구원을 위한 기도며 예물의 변화입니다. 사도시대에는 미사 전체를 가리켜 ‘빵의 나눔’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체의 빵을 참석한 자들의 수로 나누는 데는 앞서 바친 찬미의 기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참석한 사람들이 주님의 몸인 빵의 일부를 받음으로써 그것이 함께 모일 때 그리스도의 몸 자신이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빵 나눔을 바로 미사 전체의 표시로 이해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당에서 큰 제병을 사용하지 않고 작은 사제용 제병을 사용하는데 이는 빵 나눔의 표시성을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 합니다. 더구나 감실에서 성체를 건네주는 것은 과한 비교일지 모르나 잔치에 오신 손님에게 냉장고의 음식을 꺼내 드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즉 지나간 미사성제의 성체를 영할 것이 아니라 방금 이 미사에서 감사 기도를 바친 성체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현행 성찬 전례는 최후 만찬 때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따라 예물 준비, 감사 기도, 영성체 예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 호부터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월간빛, 2014년 2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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