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부활] 사순기획3: 피정과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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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3-27 | 조회수5,034 | 추천수0 | |
[온고지사순] (3) 피정과 묵상 성경 묵상 · 수행 일상화했던 선조들 삶
- 신앙선조들의 대표적 묵상서 중 하나인 「묵상지장」. “묵상이란 하느님과 마주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요긴한 것을 기도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친밀하게 내왕함이 마치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묵상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교회사연구소)
예수 부활 대축일을 뜻깊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절제와 극기, 기도에 힘쓰는 기간인 사순시기에 특히 요구되는 신앙행위로 ‘피정과 묵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피정(避靜, retreat)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는 신심행위로 정의된다. 피정의 장소로는 보통 성당이나 수도원,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된다.
그렇다면 신앙선조들은 사순시기에 어떻게 피정과 묵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박해시대라면 지금처럼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마땅한 피정 장소도 없었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여러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부터가 큰 위험이 따랐다.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피정과 묵상을 보여주는 명확한 문헌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보면 순교자들이 평상시는 물론 특히 사순시기에 초인적이라 할 정도로 단식과 금육을 철저히 지켰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런 사실에서 신앙 선조들이 사순시기에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대와는 방법과 장소는 다를 수 있지만 피정과 묵상이 강렬하게 이뤄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는 한글 최초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을 “교우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성인의 수양방법인 피정을 일상화하기 위한 책”이라고 말했다. 「성경광익」에는 피정 방식에 대해 “매일 3차례 묵상하며 매번 모두 사각(四刻, 1각은 15분, 4각은 1시간)씩 하는데 처음 1각은 준비하고 다음 1각은 자기가 묵상해야 할 묵상 자료를 준비하여 나머지 시간에 묵상하며 그것이 끝나면 다시 1시간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는 해설이 나온다.
김 신부는 “기록상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피정을 한 인물은 정약전으로 이후 사순시기에 굴속이나 산중에 들어가 개인 피정을 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며 “피정이 한국교회에서 공식화 된 것은 1910년대 교구 차원에서 공소회장들을 모아 연 1회 피정을 실시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1920년대에는 피정에 참석 못하는 공소 회장의 경우 불참 사유를 교구에 보고하도록 해 피정을 제도화했다.
지금은 매해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새로운 묵상서적들이 나온다.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도 묵상서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압수된 천주교 서적 목록에는 「묵상지장(默想指掌)」, 「묵상(默想)」 등 한문본 묵상서들과 「 믁샹지쟝」, 「묵샹졔의」와 같은 한글로 된 묵상서들이 발견됐다. 「묵상지장」은 “묵상이란 하느님과 마주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요긴한 것을 기도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친밀하게 내왕함이 마치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묵상법을 가르쳤다.
이 외에도 한국교회사연구소에는 「신명초행」, 「선생복종정노」, 「구령요의」, 「성상경」등 주로 개항기 전후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묵상서들이 다수 소장돼 있다. 박해시대에도 사순시기를 사는 신자들에게 묵상이 중요 신심행위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광(이냐시오) 교수(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집중적인 묵상을 이끌어 주는 책자로 한글 필사본 「묵상신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 책의 제3권과 제4권에서는 사순시기 전후 7주간에 걸쳐 예수의 수난과 고뇌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묵상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묵상신공」이 실제로 얼마나 읽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묵상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김정숙(소화데레사) 교수(영남대 국사학과)는 1907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국채보상운동이 그해 사순시기에 천주교 신자인 서상돈과 정규옥을 중심으로 시작된 배경을 “절제된 삶을 살겠다는 천주교 신자들의 묵상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천주교 신자가 발의했고 여기에 천주교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해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천주교 교우촌 44곳, 사제 2명, 신자 600여 명이 국채보상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김정숙 교수는 당시의 천주교 교세를 감안하면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진소 신부는 사순시기가 갖는 중요성은 인간의 본능을 극복하는 ‘수행생활의 일상화’에서 찾아야 하지만 현재의 한국교회에는 참 의미의 피정과 묵상이 사라졌다고 지적하면서 “「성경직해광익」을 통째로 외웠던 선조들을 본받고 불교에서 선승들이 동안거, 하안거를 하는 것처럼 천주교도 본래 의미의 사순시기 피정과 묵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23일, 박지순 기자]
[온고지사순] 서울 시흥동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 한 해를 살아가는 힘 ‘사순시기 기도 · 묵상’
서울 시흥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은 사순시기를 맞아 지난 5일부터 4월 13일까지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를 진행 중이다. 본당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매일 저녁 8시40분~10시40분까지 2시간씩 기도와 묵상을 한다.
주수욱 주임신부는 “신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제가 시키거나 권유한 적도 없고 신부인 저도 신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참여할 뿐”이라고 말했다. 시흥동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저녁 8시40분~9시10분 십자가의 길, 9시20분~9시30분 찬미, 9시30분~9시40분 자비심의 기도와 지향 기도, 9시40분~10시10분 묵주기도와 103위 성인 호칭기도, 마지막으로 10시10분~10시40분까지 30분간 묵상과 강복으로 구성된다. 마지막 순서로 묵상을 하는 것은 그날 하루의 삶과 기도를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다.
사순시기 4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자들이 성전에 모여 2시간씩 기도와 묵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시흥동본당의 사순시기 40일 기도회가 본당 신자들에게는 ‘일상’이라는 점이다. 기도회를 주관하는 본당 성령쇄신봉사회 이희숙(루치아) 회장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20년 이상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온 우리 본당의 전통”이라며 “사순시기 기도와 묵상에서 한 해를 사는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주수욱 신부는 본당 신자들을 ‘아나윔’(Anawim)이라고 표현했다. 아나윔은 자신의 일상을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하느님만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주 신부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후 다시 하느님을 찾아 이스라엘로 기어이 돌아온 유다인들과 같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하느님께 의지하는 시흥동본당 신자들은 ‘이 시대의 아나윔’이라고 설명했다. 시흥동본당의 사순시기 기도와 묵상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목숨까지 바쳐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의 믿음에 비해 현대 신앙인들의 믿음은 연약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주 신부는 무한경쟁이 소용돌이치는 후기 산업사회와 최첨단 IT 사회인 한국에서 사순시기 40일 기도와 묵상에 매일 같이 신자들이 모인다는 사실은 순교자들의 믿음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과거 박해시대 목숨을 바치는 것이 순교였다면 지금은 겸손하고 소박하게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이 순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희숙 회장은 사순시기 40일 기도회에서 마지막 묵상 전에 103위 성인호칭 기도를 바치는 이유를 “순교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 특히 사순시기에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시흥동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는 못한다. 주 신부는 “다들 바쁘게 사는 도시 본당 신자들이 기도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이들이 많고 몸은 다른 곳에 있어도 마음만은 성전에 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앞에 두고 지긋이 눈을 감은 시흥동본당 신자들의 묵상에는 고난의 시기일수록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다소곳한 염원이 배어난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23일, 박지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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