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 이야기2: 십자성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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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3-31 | 조회수4,490 | 추천수0 | |
최창덕 신부의 전례 이야기 ② 십자성호
미사 시작 때 사제가 입당해서 깊은 절로 제대에 공경을 드리고 주례석으로 이동한 후 맨 먼저 하는 예절은 바로 십자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사제는 십자성호를 크게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합니다. 이말 안에는 이중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구원받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십자성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말하며 긋는 것이므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우리가 받은 세례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의 물로 새로 태어났고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신자들도 미사 시작 때에 사제와 함께 십자성호를 그으며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십자성호는 가장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가톨릭신앙의 표지입니다. 우리나라 운동선수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시합에서 우승한 후 십자성호를 긋는 장면을 보게 되면 우리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그 선수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우리 또한 덩달아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자랑스럽고 소중한 표지인데, 남이 하는 것을 보면 뿌듯해 하면서도 스스로는 식당이나 모임에서 식사 전에 십자성호를 긋는 것을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십자성호를 긋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떳떳하게 십자성호를 긋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십자성호를 바르게 긋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왼손 손바닥은 아랫배에 붙이고 오른손 손가락을 모두 모아 큰 동작으로 천천히 십자를 그리는데, 오른손 끝으로 먼저 이마를 짚으면서 “성부와”를, 명치를 짚으면서 “성자와”를, 왼 어깨를 짚으면서 “성령의”를, 오른 어깨를 짚으면서 “이름으로”를,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하면서 “아멘”을 외웁니다.
“십자가의 표시인 성호를 그을 바에야 제대로 옳게 긋자. 그저 아무렇게나 서둘러 남이 보아도 무언지 알아볼 수조차 없이 해서야 쓰겠는가. 아니다. 올바른 십자성호를 긋도록 하자. 천천히, 크게,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이렇게 하다 보면 온 몸이 십자가의 표시와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된다. 이마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어깨에서 어깨로 그어나가는 성호에 모든 생각과 정성을 쏟으면 십자성호가 몸과 마음을 감싸주면서 나를 거두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십자가의 표시가 우주의 표시이고 구원의 표시인 까닭이다. 우리 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다. 사람을 그 골수에 이르기까지 성화하시는 일 또한 이 십자가를 통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올리기에 앞서 십자성호부터 긋는 것이다. 그것은 성호가 우리를 다스려 마음과 뜻을 하느님께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기도를 드리고 나서 성호를 긋는 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바가 우리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다. 유혹을 당할 때면 우리를 굳세게 해주도록, 위기에 처할 때면 우리를 감싸주도록, 축문(기도문)을 외울 때면 하느님 생명의 풍만함이 우리 영혼도 온갖 결실과 강복으로 채워주시도록 성호를 긋는 것이다.”(로마노 과르디니, 장익 옮김, 거룩한 표징, 분도출판사, 1976. 13쪽).
[2014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대구주보 3면,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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