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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년 5월 31일 토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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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경주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31 조회수8,029 추천수0

 


2014년 5월 31일 토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

 

 

 

자료 : http://blog.daum.net/seonomusa/1366(중년의 미학) / 마리아는 길을 떠나...(루카1,39)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은 바로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이 만나는 자리가 된다.

 

 

자료 : 테오필로신부님 / 마리아는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즈가리아집으로 갔다.

자료 : 테오필로신부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

자료: 테오필로신부님 / 위층 기념성전은 교회사 안에서 마리아의 영광을 찬미하는 축제적인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두 인물인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하다. 뿐만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이 서로 만나 기쁨에 찬 찬미가 중의 최고의 찬미가로 매일 성무일도 저녁기도 때 노래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모찬가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방문성당 성당 마당에는 각국어로 된 성모찬가가 63개국(2008년 3월 현재)의 언어로 벽에 붙어 있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방문성당 중앙제단 벽화 / 마니피캇-마리아의 찬미/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http://blog.ohmynews.com/js1029/15926


▲ 마리아와 엘리사벳(Mary and Elizabeth),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자료 : 성공회 약수동교회 / 마리아가 3개월  동안 엘리사벳 집에 있으면서  사용한 우물 (마리아 우물) 

 

 

 

 

[오늘의 묵상]

오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한 해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 채 보내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부족해 이렇게 아쉬운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끔 산책도 했고, 동네 집들 담장과 아파트 단지 화단만 해도 꽃이 만발하는 시절이니 꽃구경하지 못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햇볕도 마음껏 즐겼고, 공원에서 열리는 이런저런 축제도 둘러보았습니다. 모임이 많은 시기였으니 지인들과 만나는 반가운 자리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좋은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흘러가 버린 듯한 씁쓸함을 이 화창한 날씨에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사람 마음이란 본디 아름다운 시기나 좋았던 때가 지나갈 때 감사하기보다는 잡아 두지 못한 안타까움이 앞서는 법인가요? 아니면 이 좋은 때에 저만 행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행복한 시간에 굳이 상실의 그림자를 보는 것일까요? 행복한 순간이 흘러가야 또 다른 행복한 순간이 오는 것이 이치일 텐데, 그걸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이러한 생각에 잠시 머물다가 구약 성경 「코헬렛」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7,14). 현자가 이렇게 권고하는 것을 보니 좋은 것을 그늘진 마음 없이 즐기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기뻐할 줄 몰라서, 행복한 순간에도 그것을 잃을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은 더없는 치유제가 될 것입니다. 저도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봄날의 난데없는 서글픈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그 만남에 초대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유다 시골의 소박한 두 여인이 얼마나 기쁨과 감사에 넘쳐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헤아려 보십시오. 이제, 두 사람의 만남의 순간에 깊이 들어가 봅니다. 화창한 봄날에 느끼는 기분 같은 기쁨이 어떻게 두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간직되는지를 잠시나마 묵상해 보십시오. 좋았던 순간에 매달린 채 사라지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길이 어떤 것인지는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그 길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 오월의 마지막 날, 아름다운 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산책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엘리사벳에게 다가가시는 성모님의 발걸음과 닮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료 : 굿뉴스

 

 

 

 ▲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듣고 주님의 놀라우신 업적을 찬양하러 먼 산골마을로 길을 서둘렀다. 그림은 예루살렘 성모방문기념성당의 벽화.

 

주님의 탄생예고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본문] 
일반적으로 믿음을 요구하는 사람이 그 믿음을 북돋아주는 것이 윤리적인 통념입니다. 그리하여 천사 가브리엘이 신비를 전할 때, 동정 마리아에게 한 가지 예를 들음으로써 그 믿음이 북돋아지도록, 한 나이 많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엘리사벳이 잉태한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자, 전갈을 불신했거나, 천사의 말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거나, 증거로 든 예를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받은 약속에 대한 기쁨에 넘쳐서, 봉사하려는 경건한 마음에 차서, 그리고 그 기쁨에 이끌려 급히 유다 산골마을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마리아가 높은 곳 말고 어디로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겠습니까? 성령의 은총은 느린 노력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부녀들이여! 여러분도 임신한 친척들에게 마땅히 베풀어야할 근면함을 배우십시오. 전에는 가장 깊은 내면의 방에서 머물던 마리아를, 동정녀의 부끄러워함도 군중 앞에 나타나는 일에서 붙잡지 못했고, 산악의 험난함도 마리아의 열정을 저지하지 못했고, 여행의 먼 길도 마리아의 의무수행을 지연시키지 못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본분을 생각하면서, 손해는 생각지 않고,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성별을 생각지 않고, 급히 집을 떠나서 산골로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암브로시우스의 ‘루카 복음 주해’ 2장 19∼20절 

[해설] 
암브로시우스 교부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몇 가지 점을 함께 생각해 보자. 

1) 주님은 믿음을 갖도록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당신의 구원사업의 계획을 알려주신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믿음을 도와주시고 북돋아 주시기 위해서 친척 엘리사벳이 주님이 베푸신 기적의 은혜로 아기,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사실을 알려주신다.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사실이 마리아에게 믿음을 갖도록 마음을 준비시켜 주었다.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먼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도움을 주신 것을 언급한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에게 믿음의 은혜를 간직하도록 도움을 베푸는 주님이시다.

2) 동정 마리아의 방문은 엘리사벳과 그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는 방문이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는 방문은 언제나 천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마리아의 방문은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기를 뛰놀게 만들었고, 엘리사벳의 입에서 찬미의 기도가 나오게 도와주었고, 마리아도 기쁨에 넘쳐 찬미의 노래를 주님께 불렀다. 이처럼 은혜로운 방문은 여러 사람에게 기쁨과 축복을 안겨다 줌을 알 수 있다. 

3) 성령께서는 지체함과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마리아는 온전히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분이시다.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러 길을 서둘렀다. 사실을 확인하러 가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마음으로 주님의 놀라우신 업적을 찬양하러 길을 서두른다. 

산위로 이끄심은 암브로시우스의 설명을 따르자면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을 뜻한다.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거룩한 곳이며, 예수께서도 기도하시러 자주 산에 올라가셨다. 
산에 오른다는 말은 암브로시우스 교부의 설명에 의하면, 주님께서 참으로 인간이 되심을 믿는 것,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여 낳으신 것을 믿는 것,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던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승리자가 되신 것을 믿는 것,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산으로 올라감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천주의 모친 마리아는 믿음의 눈으로 구원의 신비를 바라보신 은혜의 어머니가 되셨다.

 

 

 

장인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청주교구 총대리

 

 

 

편집 : 불광동성당 미디어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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