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말씀 전례 거행 요소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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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9-23 | 조회수3,617 | 추천수0 | |
[전례의 숲] 말씀 전례 거행 요소들
말씀 전례를 아직도 하느님 말씀을 듣고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은 만나야 할 인격체이고 경축해야 할 사건입니다. 그래서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은 읽는다고 하지 않고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선포에는 말 외에 노래, 태도와 동작, 이동, 행렬, 상징, 그리고 침묵을 활용합니다.
하느님께 목소리를 빌려드리는 독서자 외에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독서집과 복음집, 그것을 선포하는 장소인 “독서단” 또는 독서대가 매우 중요합니다. 독서집은 성경을 말씀 전례에서 사용하도록 전례주년과 축제일에 따라 편집하여 마련해 놓은 전례서입니다. “전례 성경”, 또는 “미사 성경”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복음만을 따로 모아 놓은 책이 복음집입니다. 독서대는 성경 독서를 하는 장소입니다. 독서집은 독서대에 놓습니다. 복음집은 입당 행렬 때 들고 들어가 제대 위에 놓고, 복음 선포 때 다시 제대에서 독서대로 행렬을 지어 옮깁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은 각별해
독서집은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전례 요소로서 주님의 현존을 표시하는 표지입니다. 말씀 안에서 현존하시는 주님에 대한 존경은 구체적으로 그 책에 대하여 표시합니다. 독서집은 “천상의 실재를 드러내는 전례 표지이기 때문에 품위 있고 아름답고 고상해야 합니다.” 유다교 전통에서는 오래 사용하여 못쓰게 된 성경 두루마리는 불사르거나 버리지 않고 거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 때문에 회당에 딸린 특별한 “저장소”(gheniza)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은 각별했습니다. 전례 성경은 보통 성경책과 다르게 더 공을 들여 만듭니다. 특히 복음에 대한 공경 때문에 고대 교회부터 이미 복음집은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뛰어난 그림을 넣어 편집하고 값진 재료를 사용하여 예술적으로 제본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동방 교회에서는 복음집이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동방 교회의 이러한 정성은 로마 전례에서 주님의 말씀을 성체 현시대에 보존하는 것에 비유되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전통적으로 책의 즉위 행렬, 초, 향, 입맞춤으로 복음집에 영예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거룩한 말씀에 대한 깊은 믿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주보 형태나 잡지 형태의 사목 보조 자료는 미사 독서집으로, 더군다나 복음집으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를 준비하며 묵상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책, 그 말씀을 통하여 말씀 형태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모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소홀하게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전화기(스마트폰)나 손 컴퓨터(아이패드)를 포함한 전자책 같은 현대 기기들도 사목 보조 자료로 여깁니다.
독서대는 말씀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곳
독서대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곳이다. 주간 첫째 날 새벽 빈 무덤에서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독서대의 조상은 성경에 나오는 에즈라의 단입니다. 율법학자 에즈라는 축제에서 광장에 모인 회중에게 장엄하게 율법을 선포하기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느헤 8, 4). 그 때부터 에즈라가 쌓은 단은 언제나 독서대와 연결되어 기억됩니다.
말씀 전례 동안 신자들은 독서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독서대는 독서할 책을 올려놓기 위해 마련한 단순한 책 받침대가 아닙니다. 말씀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독서대는 회중이 잘 바라볼 수 있고,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합니다. 독서대는 전통적으로 조금 높은 데 품위 있게 마련된다. 그리스어로 “암보”라고 하는데 올라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원칙으로 고정되게 만듭니다.
독서대는 제대와 같은 품위와 중요성을 지닌다. 하느님 말씀과 성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독서대는 제대와 조화를 이루어 마련해야 합니다. 복음집은 제대에서 독서대로 행렬을 지어 운반합니다. 독서대에서 선포된 말씀은 제대 위에서 그분의 “몸”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말씀과 성체의 두 식탁이라고 말합니다.
독서대에서는 성경 독서가 선포됩니다. 또한 강론, 신자들의 기도와 파스카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말씀 전례의 중요한 요소들로 말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창이나 지휘자는 화답송(때에 따라 알렐루야)을 노래할 때를 제외하고는 독서대에 오르지 않습니다. 권고, 해설, 공지 사항은 독서대에서 하지 않습니다. 독서대와는 구분된 곳, 해설대나 다른 적당한 곳에서 해야 합니다.
제대에 하는 것처럼 독서대 장식에도 마음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둘레에 화분을 놓거나 단순한 꽃꽂이를 하여 독서대의 품위를 더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장식은 하느님 말씀이 살아 있는 에덴동산을 기억시킬 수도 있습니다. 한편 제대에서는 확성기가 보통 장애가 되는 요소이지만, 독서대에서는 잘 마련하면 상징 가치를 뛰어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한편, 미사 거행이 없을 때도 성당에 독서대에 복음집을 놓고 신자들이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만 성체와 똑같은 공경을 드리기 위해 일부 성당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또 다른 감실을 만들어 거기에 복음집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성체와 말씀에 같은 공경을 드리지만 드리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례석은 전례 거행에 매우 중요
말씀 전례의 두 번째 장소로 주례석, 곧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의 좌석이 있습니다. 성경은 회당에는 “모세의 자리”가 있었다고(마태 23, 2) 말합니다. 고대 교회부터 주례석은 전례 거행에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주교는 그 자리에 앉아 회중을 이끌고 가르쳤습니다. 미사경본은 “주례의 좌석은 그가 회중을 주례하고 기도를 인도하는 임무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례석은 실제 좌석 또는 의자와 관련이 있는 상징입니다. 주례가 주례석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다는 것은 회중이 주례석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뜻과 통합니다.
과거 세대에는 전례에서 상징 가치를 보는데 오늘날보다 더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거룩한 신비는 예배 장소나 물질보다 사람 안에서 더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전례 거행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표지 가운데는 회중을 주례하는 사제의 인격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례 사제를 바라보는 것은 자신들 가운데 현존하신다고 인식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행위를 하기 위하여 회중은 표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표지는 드러나야 하고 이것은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치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례석은 왕좌 같은 형태로 화려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해설대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미사 해설을 하고 공지 사항을 전하며 특별한 경우 신자들의 증언이나 호소가 이루어집니다. 성당과 제단의 구조를 생각하며 독서대와 구분되게 설치해야 합니다.
또한 전례서가 예상하는 대로 복음 선포 뒤에 복음서를 독서대에 두지 않고 다른 데 둘 때가 있습니다. 이때 복음집을 놓아둘 탁자나 비품에도 마음을 써야 합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은 보조 탁자(주수상)도 말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탁자(주수상)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품위 있는 탁자나 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밖에 독서자와 성대가의 자리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습니다. 임무와 관련하여 회중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8월호, 심규재 실버스텔(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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