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부속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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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9-23 | 조회수4,686 | 추천수0 | |
[전례의 숲] 부속가
규정된 날에는 알렐루야 앞에 부속가를 부릅니다. 부속가는 미사의 찬미가 또는 전례 찬가입니다. 부속가는 알렐루야의 특별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속가”라는 말은 “딸린 노래”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알렐루야에 덧붙인 가락”을 뜻했고, 이어서 본문이 붙어 “가사 있는 부속가”로 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디 부속가는 알렐루야 뒤에 있었습니다.
음악 형태로서 부속가는 800년 이후 알렐루야에 덧붙인 본문으로 수도원 전례에서 생겨났습니다. 수도승들이 그레고리오 성가로 알렐루야를 부를 때 마지막 “아” 음절을 긴 가락(“유빌루스”라고 부름)으로 불렀고, 이 가락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 가락에 본문(가사)을 붙이는 방법을 고안하였다고 합니다(“멜리스마”라고 함). 그 가사가 노래로 변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가들이 미사 전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속가는 알렐루야 앞으로 옮겨 부르게 되었습니다. 알렐루야를 직접 복음 준비 노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음악 관점에서 부속가는 구조와 가락에서 시간전례(성무일도) 찬미가와 다릅니다. 시간전례 찬미가는 전통적으로 모든 연이 같은 장단과 운율로 구성되고 첫 연과 같은 가락으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부속가는 보통 독립적인 도입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축일의 고유 알렐루야의 가락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그 다음 몇 개의 다른 연이 이어지는데 각 연은 자기 가락과 운율을 갖습니다. 부속가는 보통 양편으로 나누어 교창으로 노래하며,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각각 단락과 화답 단락으로 부릅니다.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에 의무적으로 불러
중세에 부속가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도원 뿐 아니라 본당에서도 부속가집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중세 음악사 전문가들은 5000개 이상의 부속가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부속가는 1400년대부터 쇠퇴하였고 트리엔트 공의회 개혁으로 다섯 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네 개는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사용합니다.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에는 의무적으로 부릅니다.
“파스카 희생 제물”(Victimae paschali laudes)은 보통 콘라도 2세와 그의 아들 헨리코 3세의 황실 사제 위포의(+1050년)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부르고, 팔일축제에는 자유롭게 부를 수 있습니다.
“오소서, 성령님”(Veni Sancte Spiritus) 성령강림 대축일에 부릅니다. 노트켈 수도원장(9-10세기)이 저자라고 추정합니다. 지극히 복되신 빛이신 성령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은총을 주시는 분”,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으로 표현됩니다. 그분께 일곱 은총과 함께 상징적인 표현으로 구원의 선물을 간청합니다.
“시온이여, 노래 불러”(Lauda Sion Salvatorem)는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체 찬미가”로 성체 교리를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종합하고 신학적으로 빼어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성체성혈 대축일에 부를 수 있습니다.
13세기 토디의 자코포네의 작품으로 여기는 “주 예수님, 높이 달린”(Stabat Mater)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수난을 받으실 때 그 곁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합니다(9월 15일). “사랑의 샘, 성모시여”로 시작하는 둘째 부분에서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과 성모님이 겪으신 고통에 참여해달라는 간구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진노의 날 닥쳐오면”(Dies irae)의 저자는 13세기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쓴 토마스 첼라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속가는 과거에는 위령미사에서 불렀습니다. 이 부속가는 심판 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날 나팔소리가 나면 영혼들은 하느님 옥좌 앞에 소집되어 심판을 받습니다. 곧, 착한 이는 구원을 받고 악한 이들은 영원한 불 속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습니다.
이 노래는 지금은 더 이상 미사에서 부속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간전례(성무일도)에서 연중 시기 마지막 주간 찬미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몇 수도회에서는 자기들의 고유 부속가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네딕토회에서 성 베네딕토 축일에 “기쁨의 날”(Laeta Dies), 설교자회(도미니코회)에서 성탄절 부속가로 “큰 기쁨으로”(Laetabundus),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 “성덕의 놀라운 기적”(Sanctitatis nova signa) 등 입니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부활하셨네”
부속가 가운데 부활 부속가, “파스카 희생 제물”은 매우 훌륭한 노래입니다. 라틴어 원문에서는 처음 두 행이 시작 구절입니다. 그 다음 정식으로 연이 시작합니다. 각 연은 낱말의 수효는 운율에 맞추어 잘 짜여있습니다. 가락은 첫 두 연은 같고, 이어지는 두 연은 다릅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부속가가 대중적 큰 인기를 끌었던 대화 형태를 지탱해 줍니다. 대화체는 중세에 부활절 아침 미사 밖에서 있었던 부활 연극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본문은 독립된 연, 우리말로 첫 행(파스카 희생 제물 우리 모두 찬미하세)은 제목으로서 전체 내용을 요약합니다. 여기서 제물, 또는 제사라는 말은 미사를 가리키며, 이름을 바꾸어 “찬미의 제사”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하신 아버지께 자기의 찬미로 파스카 희생제사를, 미사성제를 바칩니다.
첫 연에서 그리스도는 묵시록에서 발견되는 죄 없는 어린양으로서 제시됩니다. 죽으신 분은 이제 서 계십니다(묵시 5, 6). 그분은 일곱 봉인을 여는 분이십니다(묵시 6-8). 이분이 우리 죄인을 아버지와 화해시키신 죄 없는 어린양이십니다. 이제 정확하게 미사 거행에서 더 힘찬 찬미로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묵시 19, 9).
둘째 연에서는 죽음과 생명은 섭리적 결투를 묘사합니다. 생명의 주님은 죽으셨지만, 이제 승리하시어 살아나셨습니다. 승리하여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죽음 사이에 일어난 결투라는 섬뜩한 표상은 성찬례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도 죽음과 죄를 거스르는 결투에 생명의 샘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이어서 시 구조의 부속가는 차츰 절정에 이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극적이고 감동적인 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길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청합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표지를 보았다고 응답합니다. 그는 빈 무덤, 수의, 염포, 천사, 특히 부활하여 지금 살아계신 분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당신 제자들을 갈릴래아에서 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환희의 외침으로 그분을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부활하셨네.” 마리아 막달레나의 희망은, 교회로서 우리 희망으로, 믿는 이로서 나의 희망으로, 변형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희망의 종합이고, 그분 부활은 희망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부속가는 큰 신앙 서약으로 마감합니다. 그것은 신비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에 찬 외침입니다. “그리스도 참으로 부활하셨네. 저희는 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저희를 자비로이 구원하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1월호, 심규재 실베스텔(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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