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부활] 기름진 음식 먹는 참회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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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9-24 | 조회수5,351 | 추천수0 | |
[세상 속의 교회 읽기] 기름진 음식 먹는 참회 화요일
사순시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상 사명의 절정이요 마무리인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와 묵상을 하러 광야로 떠나신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고난 여정과 부활 영광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속죄와 희생의 삶을 다시금 살아가기로 다짐한다는 뜻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셨다. 40은 성경에서 매우 상징적인 숫자로, 노아 홍수 때 하늘에서 비를 퍼부은 날들의 수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서 약속의 땅을 발견하기 전에 광야에서 방랑하던 해들의 수를 가리킨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다. 이날은 교회의 전례력에서 가장 엄숙하게 지내는 날 중의 하나로, 참회 시기가 시작됐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재를 발라 준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라고 경고하면서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이다. 이 의식은 워낙 생생해서 다른 무엇으로도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시기가 되면 신자들에게 희생과 절제의 삶을 살도록 강조해 왔다. 이를테면 당분간(?) 식사는 배불리 하지 말고 더러는 굶기도 해라, 고기와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지 말라, 심지어는 부부 관계도 하지 말라며 생활 전반에 걸쳐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부문에서 참고 살기를 권유했다.
이것이 일부 신앙 선조들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고생거리였나 보다. 그래서 단단히 작정하고 ‘고난’의 40일을 지내기 전에 좀 더 즐겁고 기분 좋게 즐길 행사를 생각해냈다. 그 하나가 우리말로 사육제(謝肉祭)라 옮겨지는 카니발(Carnival)이다. 유럽과 남아메리카 등지에서는 사순시기가 시작되기 전에 카니발을 지낸다. 이 말은 ‘고기여, 그만’(carne vale) 또는 ‘고기를 먹지 않다’(carnem levare)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로마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당시 그들이 지내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하였다. 이 이교적(異敎的) 제전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계승되어 매년 부활 대축일 전에 절제하고 희생하는 기간을 지내는 관습과 연결되었고, 나아가 아주 현실적이게도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기 전에 실컷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그만큼 예전에는 사순시기를 나름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는 방증이리라.
사육제는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 프랑스의 니스, 독일의 쾰른, 스위스의 바젤 등 가톨릭을 믿는 유럽 지역들에서 성행한다. 그리고 미국의 뉴올리언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등지에서도 성행한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별로 행하지 않는다. 카니발은 엄밀히 말하면 사순시기를 잘 지내기 위한 방편으로 미리 즐기는 축제이고, 그래서 성탄 시기에 이어서 시작되어 재의 수요일 전날에 끝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의미가 변하여 카니발 기간 자체보다는 이 기간에 열리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행사들이 눈길을 끈다. 그 중의 하나로 카니발 마지막 날에 지내는 행사가 있다. 카니발 마지막 날, 곧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은 ‘참회 화요일’(Shrove Tuesday, Mardi Gras) 또는 ‘기름진 화요일’(Fat Tuesday)이라 불린다.
이날을 기름진 화요일이라 부르는 것은 음식과 음료를 기름지고 배부르게 먹고 마시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순시기를 코앞에 둔 화요일이 되면, 유럽의 신자들은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중세의 사순시기 규정에 따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권장되는 식재료들을 몽땅 동원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달걀, 버터, 설탕, 라드(돼지고기 지방), 육류가 그것이다. 특히 영국 같은 곳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태양도 없고, 고기도 없고, 섹스도 없이 무려 6주간을 비실거리며 지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살맛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주부들은 사순시기 동안 금지되는 음식 재료들을 모두 사용해 잽싸게 기름진 요리를 만들어서 가족들이 기나긴(?) 단식 기간을 버텨 나갈 수 있도록 먹였다. 전통적으로, 이 음식은 베이컨, 햄, 소시지, 다진 돼지고기 등 온갖 종류의 육류를 다 넣어서 최고로 기름기 풍부하고 영양가 높게 만든 팬케이크였다.
물론 이 팬케이크의 유래를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가령, 40일 동안 금육과 단식을 하며 음식을 덜 먹게 되면, 냉장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이라 계란, 버터, 우유 등의 식재료가 쉽게 상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내 상할 염려가 있는 식재료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서둘러 팬케이크를 만들던 한 주부에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집에서 열심히 팬케이크를 굽는데, 갑자기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고해 성사를 볼 시간이 되었다고 알리는 소리였다. 그러자 황망한 주부는 앞치마를 두른 채로 프라이팬을 들고 집을 나와서 팬케이크를 공중으로 던져 올려 뒤집으면서 성당을 향해 달렸다. 이를 계기로 ‘팬케이크 뒤집으며 달리기’라는 이상한 풍습이 생겨났다. 이 달리기 시합이 행해진 것은 1445년이라고 하며, 오늘날에도 참회 화요일이 되면 부인네들이 마을 광장이나 성당 뜰에 모여서 달궈진 프라이팬에 담긴 팬케이크를 공중으로 던져 뒤집어 받으면서 지정된 길을 달리는 경기를 한다고 한다.
이날을 참회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위의 주부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중세기에 사순시기를 잘 지내기 위한 준비로 흔히 고해 성사를 보던 관습과 관련된다. ‘참회’라는 뜻의 shrove는 ‘죄를 고백한다’는 의미의 shrive에서 유래한다. 중세기에 영국인들은 안주인이 팬케이크를 다 굽고 나면 온 가족이 함께 팬케이크를 가지고 성당으로 가서 고해성사를 보았다.
이 관습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종교적이거나 신앙적인 면에서는 다소 느슨해졌다. 사제들은 성공회 성당에서 고해 성사를 베풀지 않았고,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전과는 달리 하느님을 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보다는 편안함을 누리고 싶어 하고, 슬픔보다는 즐거움을 맛보며 살고 싶어 한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면서도 그분이 겪으신 고통을 우리도 따라 겪으려 하기보다는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고통당하셨으니 우리는 그분처럼 고통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 2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 선조들은 그네들이 살아간 소소한 삶을 통해 결코 소소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며칠 뒤에 겪을 허기와 소증(素症)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그렇게 해서라도 교회의 가르침과 권고를 이행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었을까?
참회 화요일의 깊은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고 돌아가신 것이 물론 모든 인류의 온갖 죄를 기워 갚기 위함이었지만, 특별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였음을, 우리가 저마다 지은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시기 위해서였음을 먼저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3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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