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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부활절 월요일의 세시풍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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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4 조회수4,397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읽기] ‘부활절 월요일’의 세시풍속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은 조금씩 길어지고, 밤은 낮이 길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짧아진다. 그리고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춘분이 지나면서부터는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점점 더 길어진다. 낮이 길어진다는 것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그만큼 세상의 생명 활동이 많아지고 강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빛 또는 밝음과 생명은 선이고, 어둠과 죽음은 악이다. 그러니까 낮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이제는 선의 세력이 악의 세력보다 더 강해지고 융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럴 즈음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일을 성대하게 경축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춘분이 지나고 처음으로 달이 꽉 차는 날인 보름이 지난 첫 토요일을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과월절(파스카)’로 지낸다. 토요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지낸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되살아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요일이 ‘주님의 날’ 곧 ‘주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큰 축일을 경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축제들을 지낸다. 드디어 죽음의 계절인 겨울이 끝나고 생명의 계절인 봄이 왔기 때문이고,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셨기 때문이며, 나아가 이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부활하리라는 것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부활대축일 모든 물에 예수님 축복이 깃든다 믿어

 

그런데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세계 곳곳에서 경축해 온 부활 축하 행사들에는 그리스도교적 근거와 이교적 근거가 어우러져 있다. 전례만 보더라도 이교도의 다산 기원 의식을 비롯한 민간의 풍습들을 그리스도교화하기 위한, 그리고 멋진 날씨며 꽃과 곡식과 과일 등 소출을 기대하는 자연의 기쁨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연결하기 위한 배려와 노력이 그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부활 성야 전례에 인상적인 상징들이 녹아 있다. 불 축복, 깜깜한 성당, 숨죽인 신자들 사이를 지나가는 촛불 행렬, 물 축복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단 교회의 전례뿐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나라들과 지역들의 세시풍속에도 풍성하게 스며들어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자들이 부활 대축일에 미사에 참례하러 성당에 갈 때 병에 물을 담아 가지고 가서 사제의 축복을 받곤 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물은 집으로 가져와서 집안의 마귀들을 물리치는 데, 여성들이 미용을 위해 얼굴을 씻는 데, 또는 병을 치유하는 데 사용했다. 미국 동부 지역에는 지금도 그렇게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부활 대축일에 모든 물에 예수님의 축복이 깃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날을 1년에 두 번 있는 ‘미역 감는 날’ 가운데 하루로 잡아 강이나 개천에서 미역을 감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역을 감기 위해 강을 찾은 김에 강가에서 사순시기 동안 절제했던 음식들을 먹으며 즐겁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성당에서 성수를 퍼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이 성수를 뿌림으로써 그해 농사가 잘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성수를 집 안과 헛간, 밭과 과수원에 뿌렸고, 씨앗과 작물과 암소의 젖몸에도 성수를 뿌렸으며, 이 성수로 노인들의 눈을 씻었다.

 

이렇듯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는 일은 부활 대축일 하루로 끝나지 않고 그 다음날까지도, 심지어는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그래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는 흥미로운 부활 대축일 다음 월요일의 풍속들이 있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다수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는 부활 대축일을 특별 휴일로 정하여 경축해 왔다. 대개는 성주간 또는 성삼일 동안 쉬었는데, 이 기간이 짧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일부 국가에서는 부활 대축일 후 월요일도 공휴일로 정하여 쉬게 되었다. 소위 ‘부활절 월요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월요일 하루만 추가로 쉬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기왕 쉬는 김에 토요일까지 1주일을 내처 휴일로 지내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 자체가 새 삶, 새 생명의 축제

 

그리하여 지내게 된 ‘부활절 월요일’ 경축 행사 중 하나로, 폴란드와 미국의 폴란드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지내는 딘구스의 날(Dyngus Day)이 있다. 오래된 전통에 따르면, 폴란드의 총각들은 이날 물통에 물을 담아 들고서는 노래를 부르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다가 젊은 아가씨를 보면 물을 끼얹었다. 또한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회초리를 가지고 다니며 아가씨의 다리(발목)를 살짝 때렸다.

 

이는 장난삼아 하는 행위였지만, 사실은 평소 마음에 둔 아가씨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구혼 방식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 풍습은 다분히 다산을 기원하던 고대의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이지만,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이날 물을 끼얹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죄인들을 깨끗하게 하셨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며 시끄럽게 구는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물을 뿌린 데서 유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이 관습이 점차 일반화되어 오늘날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물을 뿌리며 즐거워하는 풍습으로 전환되었다. 아가씨들도 이날만큼은 물세례를 받으면 1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는 생각에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딘구스는 슬라브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에 믿던 딘구스(Dyngus)와 스미구스(Smigus)라는 쌍둥이 신 가운데 하나다. 딘구스는 물과 습지의 신이고 스미구스는 천둥과 번개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세속적인 ‘부활절 월요일’ 경축 행사들이 있다. 비잔틴 의식을 따르는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날을 ‘밝은 월요일’ 또는 ‘재생의 월요일’라고 부르고, 경축 행사는 그 다음날인 화요일에 치른다. 이 행사는 파스카 의식과 같으며, 사람들은 이날 친지나 따로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한편 4월 23일 성 제오르지오(조지) 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이 축일이 부활 대축일이나 그 다음 주간과 겹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별도의 ‘부활절 월요일’ 경축 행사는 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날 야외 스포츠를 즐긴다(남부 호주의 오크뱅크 이스터 카니발이 유명하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부활절에 빌비(주둥이는 쥐처럼 생기고 귀는 토끼처럼 생긴 호주 고유의 동물)나 달걀 모양으로 만든 초콜릿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집트의 콥트 교회는 ‘부활절 월요일’에 파라오 시절인 기원전 2700년경부터 내려오는 축제인 샴 엘 네씸(Sham El Nessim, ‘봄바람의 냄새를 맡는다’는 뜻)을 지낸다. 이 축제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함께 지내며, 전통적으로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한다.

 

아무튼 부활 대축일과 관련된 축제들은 밝고 유쾌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자체가 새 삶, 새 생명의 축제이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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