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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월] 5월, 5월제 그리고 성모 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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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4 조회수4,460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읽기] 5월, 5월제 그리고 성모성월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1년을 4등분하여 2월 1일은 봄이 시작하는 날로, 5월1일은 여름을 시작하는 날로, 8월 1일은 가을을 시작하는 날로, 그리고 11월 1일은 겨울을 시작하는 날로 여겨 왔다. 이 구분에 따르면, 5월1일은 그야말로 봄과 더불어 되살아난 자연 생명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 활동이 더욱 왕성해지는 계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예전부터 이날을 성대하고 떠들썩하게 지냈다.

 

5월 1일이 되면 유럽의 각 지역에서는 특히 농작물의 생육과 병충해 구제를 기원하는 행사를 벌였다.

 

농부들은 이날 아침에 받은 이슬과 물이 약용 또는 화장용으로 특효가 있다 하여 몸에 바르거나 뿌렸고, 그런 다음에는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을 방목하기 위하여 야외로 내몰기도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시대 이전의 농경사회에서 행해지던 의례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 축제를 흔히 ‘5월제’(May Day)라고 한다.

 

5월제는 유럽 대륙이 그리스도교화하기 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이교적인 성격이나 색채를 띠는 요소가 많았다. 그래선지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5월제는 차츰 없어졌거나 아니면 성탄절, 부활절, 모든 성인 대축일 같은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이 축제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 자취나 흔적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그 하나가 ‘5월 기둥’(maypole)이다.

 

5월 1일이 되면 유럽과 미국의 여러 곳에서는 큰 나무 기둥을 광장에 세우고 그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고 즐긴다. 농작물의 성장과 번식의 상징으로서 기둥을 세우던 풍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어린 나무를 잘라서 그대로 썼으나 오늘날에는 기둥을 색칠하고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다.

 

 

성모님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기 시작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는 5월을 전통적으로 성모님의 달로 여겨 왔고, 이러한 맥락에서 5월제는 성모 마리아와 연결되었다. 예전에 사람들이 5월 기둥을 꽃과 리본으로 장식했듯이,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님의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본당들에서 5월에 성모님의 머리에 왕관(화관)을 씌어 드리는 대관식을 거행한다. 이는 5월 기둥을 꾸미던 풍습이 성모상을 장식하는 관습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축제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대체다.

 

하지만 5월 1일을 기념하는 것은 이게 다가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5월 1일은 굶주리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휴일, 곧 노동절(근로자의 날)이 되었다. 한때 노동절이 소비에트 연방의 군대가 붉은 광장에서 연단의 독재자들 앞을 행진하는 살벌한 행사로 기념된 적도 있지만, 본래는 노동조합(guild)들의 모임이라는 민간 행사로 시작되었다.

 

나아가, 교회는 이날에 또 다른 상징 한 가지를 추가했다. 날로 세속화해 가는 대중의 마음을 다시금 교회로 돌리고자, 1955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5월1일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선언한 것이다. 물론 이는 노동의 존엄함에 대한 장엄한 확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월 1일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의미가 많은 날이 됐다. 심지어 이 축일의 이름인 ‘메이데이’는 오늘날 비행기와 선박에서 절망적 상태에 빠진 조종사나 선원들의 조난 구조 신호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봄 축제나 5월제 지내던 5월을 성모님의 달로 지내

 

한편, 교회는 일찍부터 1년 중 한 달을 구원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하신 성모님을 기리고 찬양하는 달로 지냈다. 동방 교회에 속하는 이집트 지역의 콥트 전례 교회는 11세기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성모님을 찬미하기 위해 12월 10일부터 1월 8일까지를 성모님의 달로 지냈다. 이 기간에 신자들은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매일 저녁 성모님과 관련된 내용의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지역의 교회들은 13세기부터 8월을 성모님의 달로 정하고 성모님의 큰 축일인 8월 15일(오늘날의 성모 승천 대축일) 이전 15일 동안 단식을 하고 이후 15일 동안 축제를 지내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서방 교회에는 유럽 사회가 차츰 그리스도교화함에 따라 민중이 봄 축제나 5월제를 지내던 5월을 성모님의 달로 지내는 관습이 생겼다. 5월과 성모님을 처음으로 연관시킨 사람은 13세기말 스페인 지역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던 알폰소 10세다. 그는 5월의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성모 마리아를 통해 얻는 영적 풍요로움을 결부시켜서 5월을 성모님께 기도하는 달로 지낼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필립보 네리 성인이 젊은이들에게 5월 한 달 동안 성모님께 꽃다발을 바치고 찬미의 노래를 불러 드리며 선행으로 그분을 공경하게 했다.

 

5월에 성모 성월을 지내는 것이 구체화된 것은 17세기말부터다.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의 도미니코회 수련원에서 1677년부터 5월 1일에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제를 지냈고, 그러다가 1701년 5월부터는 한 달 동안 매일 축제를 열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성모 호칭 기도를 노래로 불러 바치고 성모님께 장미 화관을 봉헌했다. 또한 이탈리아 나폴리와 만토바 지방의 성당에서도 5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성모님께 찬미가를 바치고 그분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후 성모성월을 특별하게 지내는 신심은 그 뒤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독일 등지로 널리 퍼져 나갔다.

 

 

성모님 사랑 클수록 그리스도께 더욱 다가가

 

성모성월 신심이 정착되는 데에는 근대와 현대에 재임한 역대 교황들의 적극적인 권고와 교의 선포가 큰 역할을 했다. 비오 9세 교황은 1854년 12월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했고, 비오 12세 교황은 교서를 통해 성모성월 신심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전례에 속하지는 않지만 어느 면에서는 전례적 예배 행위로 간주할 만한 신심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1965년에 발표한 ‘성모 성월에 관한 교서’에서 “성모 성월은 세계 도처의 신자들이 하늘의 여왕께 사랑을 표현하는 달”이며 “교회 공동체와 개인, 가정 공동체는 이 기간 동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마리아께 드리고, 기도와 찬미를 통해 성모 마리아의 숭고한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성모 신심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무분별한 성모님 공경이 자칫하면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 섭리의 인도를 받는 신자라면 성모님을 향한 사랑과 공경이 크면 클수록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5월제와 관련된 풍습 중에 20세기 들어서 서양에서도 사라져가는 것으로 ‘5월 바구니’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사탕이나 꽃을 작은 바구니에 담아 이웃집 문간에 몰래 놓아두는 것인데, 바라건대 이런 풍습은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5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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