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성모님 축일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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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9-24 | 조회수4,466 | 추천수0 | |
[세상 속의 교회읽기] 성모님 축일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
20세기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인류는 큰 전쟁에 시달렸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대륙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전쟁(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0년에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가톨릭교회가 믿어야 할 교리로 선포했다.
당시 지구의 반은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했다. 그들이 유럽에서 소비에트 연방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승전국이 되었고, 아시아(중국)에서 혁명에 성공한 덕분이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체제는 서방 전역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치철학을 지닌 체제라는 공감을 얻었다. 게다가 새로운 핵무기 제조 시설과 앞선 과학기술 연구기관까지 보유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그동안 인간을 억압해 온 모든 ‘미신’과 통치 구조들을 끝장내고 인간을 해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우월성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들은 우주 항공 기술에서 서구 세계를 주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공위성과 우주인들을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우주로 쏘아올린 것이다. 1957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했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이때 지구로 귀환한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천국이나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라도 보았느냐는 소비에트 연방 언론인들의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은 가가린의 말을 반종교 선전에 대대적으로 이용했다.
이와 같은 시선들에 비교할 때, 1950년의 교회는 ‘이상형’으로 비친 공산주의 체제와는 딴판으로 반동적 정치, 괴상한 믿음들, 그리고 쓰레기통 같은 역사를 향한 후진적 관행의 보루처럼 보였다. 과학의 적으로, 자아 발전과 실현을 향한 인간 진보를 억압하는 부정적 세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교회를 이끌던 비오 12세 교황은 실제로는 누구 못지않은 과학도였다. 양봉업자들 앞에서는 꽃가루에 대해, 안경사들 앞에서는 녹내장에 대해, 또 부인과 의사들 앞에서는 이 피임용 살정제가 지니는 신적 의미에 대해 해박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교황 비오 12세 ‘성모 승천’ 교의로 선포
비오 교황은 또한 천문학과 우주과학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기술 발전과 우주 탐험을 향한 준비 단계들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어쩌면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의 과학적 자부심을 꺾는 데는 가톨릭교회에 하늘에 올라가는 더 우월한 기술이, 간단하고도 우아한 방법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인류의 우주 개척자는 1900년 전에 이미 우주 진입에 성공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성모님이 승천하지 않으셨는가. 어쨌든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비오 12세는 뒤늦게, 그러나 스푸트니크호 발사보다는 7년 앞서 이 사실을 ‘교의’로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런데 이 교의는 이때 새로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니다. 비록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교회는 초기부터 성모님께서 승천하셨음을 믿었다. 그러했기에 일찌감치 전례로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했고, 성화나 이콘으로 성모님의 승천을 묘사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성모님의 승천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나 자료는 없다. 그러나 ‘이중 부정의 법칙’, 곧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논리학의 원리에 의거해서 ‘성모님께서 승천하지 않으셨음을 입증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지상에 성모님의 무덤이라고 주장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짜든 가짜든 간에, 마리아의 유해는 어디에도, 교회 제대에도, 박물관에도 없다. 만약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요즘 대세인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사기로라도 올라올 텐데, 다른 여러 성인들의 유해가 더러 발견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만일 성모님이 묻히신 곳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대적으로 떠벌리고 바로 그 옆에 기념품 매장이라도 차리려 할 것이다. 아마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수지맞는 순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수지맞는 관광 시장이 없다는 것 자체가 성모님은 결코 묻히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논거다.
우리도 하늘로 들어 올려지리라는 시범 보여주셔
전통적으로 교회력에서 가장 성대하고 즐거운 축일 가운데 하나인 성모 승천 대축일은 지구의 북반구에서는 한여름인 8월에 지낸다. 이 축일은 일종의 추수 축제다.
이날, 유럽에서는 소녀들이 꽃다발을 만들어서 축복을 받기 위해 성당으로 가져갔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처녀가 꽃을 들고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소녀들이 따르며 시가지를 거쳐 성당까지 행렬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약초를 ‘성모 승천 다발’로 만들어서 특별한 축복을 받기 위해 성당으로 가져갔다.
이러한 관습은 색다르고 재미있는 한 전설에 대한 믿음에서 유래한 듯하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세상의 모든 꽃들은 향기를 잃고 약초들은 치유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랬다가 성모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곧 성모님의 무덤에서 시신이 아니라 꽃만 잔뜩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원상을 회복했다고 한다.
꽃들이나 풀들 중에는 ‘레이디스슬리퍼스’(성모 마리아의 슬리퍼)라든가 매리골드(마리아의 황금)처럼 성모님의 이름을 따서 불리는 것이 많은데, 이는 아마도 신심 깊은 정원사들이나 식물학자들이 이 전설을 기리고자 한 데서 비롯했을 것이다.
한편, 중세의 신학자들은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성모님의 운명을 미루어 보면 우리의 운명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성모님께서 시범적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곧 우리도 성모님처럼 천수를 누리면서 존경받는 삶을 살고 난 후에는 마침내 하늘로 들어 올려지리라는 것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자면,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말살하고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붉은 군대는 교회의(성모님의) 푸른 군대를 결코 이기지 못했다. 특히나 성모 승천 대축일이 되면 공산주의자들의 속이 부글거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다. 1919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가 전쟁을 벌였다. 공산주의자들은 폴란드 영토를 쉽게 통과해서 먼저 독일을 ‘해방’하고 이어서 유럽 전역을 ‘해방’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1920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폴란드 병사들 수천 명이 폴란드의 비스와 강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시는 성모님을 보았다고 한다. 결국 폴란드가 승리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수백 킬로미터나 퇴각했다. 이 여파로 당시 군사 활동을 주도하던 스탈린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뒷날, ‘검은 성모님’의 나라 폴란드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비스와 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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