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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십자가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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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4 조회수5,125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 읽기] 십자가 이야기 하나

 

 

잘 아는 바와 같이, 십자가는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이집트, 카르타고 등지에서 죄인을 처형하는 데 쓰이던 도구였다. 이것이 로마 제국에도 전해졌고, 로마의 식민지이던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 일이 있고 나서부터 십자가는 한낱 처형 도구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 피조물의 죽음과 지옥을 극복한 승리,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막대기 따위를 세로와 가로로 교차시켜 만든 십자가가 죄인을 처형하는 도구로 쓰이기 전에, 사람들은 세로선(날줄)과 가로선(씨줄)이 교차하며 이루는 십자 표시를 태양, 별, 생명, 종합, 중심, 완전 등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편으로는 어려움과 고통의 상징으로도 이해하였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이때부터 십자가는 가장 심오한 뜻을 지닌 실체이자 상징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일찌감치 자신의 서간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또한 로마 6,6; 1코린 1,17; 갈라 5,124; 6,14; 에페 16; 필리 2,8; 콜로 1,20 등 참조).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십자가를 널리 공경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초였다. 그 전에는 교회가 탄압을 받았고, 이를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십자가에 대한 감정이나 소회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때도, 마치 오늘날 비밀스럽게 접속하는 첩보원들이 그러는 것처럼, 땅바닥에 낙서하듯이 물고기 암호를 그려서 소통했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시절이었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해마다 9월 14일이면 공공연하게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다. 그럴 수 있도록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 그래서 이 축일에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하는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주목할 여성들 가운데 하나인 성 헬레나일 것이다.

 

여인숙 주인의 딸이던 헬레나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헬레나 황후의 삶은 썩 행복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황제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새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헬레나는 당시 로마 제국 공공의 적으로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탄압받던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헬레나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새로운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중지시키고 교회에 자유를 주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교회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한편, 헬레나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모후로서 명예와 권위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헬레나는 황제의 어머니로서 궁중에서 위엄과 권세를 누리려 하지 않고,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 하나가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발굴하는 일이었다. 헬레나 황후는 진짜 십자가를 찾기 위한 성지 탐사 작업을 직접 이끌었다. 마침내 진짜로 추정되는 십자가를 찾아냈다. 그런데 발견된 십자가는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예수님과 함께 두 강도도 같은 모양으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헬레나 황후는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인지 가려내기 위해서 임상 실험에 들어갔다. 그 십자가들을 불치병 환자에게 가져가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시하면서 하나씩 입을 맞추게 하였다. 두 번째 십자가까지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 십자가에서 기적적인 치유 현상이 일어났다. 답을 얻은 헬레나 황후는 그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임을 널리 공표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에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교회는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공경하기 시작하였고,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를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나아가 날을 정하여 헬레나 황후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한 것을 경축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교회가 이 축일을 언제부터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날짜가 9월14일로 고정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에서는 이 일을 기념하여 국가적으로 성대한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는 ‘마스켈’(Maskel)이라고도 불리는데(마스켈은 ‘십자가’를 뜻한다), 국가의 종교 축일이자 공휴일로서 9월27일(윤년일 경우에는 9월 28일)에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거행된다.

 

성 헬레나 덕분에 오늘날 세계 곳곳의 성당들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작은 조각들이 모셔져 있다. 교회는 수정이나 귀금속으로 공들여 만든 상자 안에, 또는 제대석 안에 그 십자가의 작은 조각들을 안치하였고, 경건한 신자들은 그 나무 조각에 공경을 표시하며 입을 맞추는 것을 영예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워낙 많은 십자가 조각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까닭에, 과연 그것들이 전부 진짜인지 믿기 힘들어진 것이다.

 

과장하여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위 ‘진짜 십자가’라고 하는 것의 조각들을 다 모으면, 그것들로 한강을 막아 댐을 만들 수도 있고, 태풍으로 폐허가 된 필리핀의 한 도시를 재건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달까지 가는 다리를 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지난날 교회의 일그러진 행적들을 돌이켜보면 능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중세기에는 온갖 주장이 난무했다. 이를테면, 어느 교회에는 예수님을 먹이시던 성모님의 젖이 있다는, 예수님의 손톱이 있다는, 심지어는 그분의 할례 때 잘라낸 포피도 있다는 따위의 주장들 말이다. 이는 마치 하느님께서 수많은 진짜 십자가들을 직접 만드셨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일 뿐이다(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같은 이는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 주제에 사로잡힌 프랑스의 한 고고학자(로울 드 플로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진짜 십자가 유물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일일이 추적하였다. 진짜 십자가라고 교회가 인정한 조각들을 모두 측정하고는 그 결과를 1870년에 발표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십자가 조각들을 모두 합치면, 그 부피가 대략 0.04㎥ 라는 것이다. 가로 27㎝, 세로 27㎝, 높이 55㎝ 정도 되는 통나무의 부피다. 참고로, 이 고고학자는 한 남자가 질 수 있을 정도의 통나무라면 그 부피가 최소한 0.178㎥(가로 27㎝, 27㎝, 높이 244㎝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진짜 십자가’ 조각은 십자가 중 세로 막대의 ¼에 못 미치는 분량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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