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예수님 시대 공동식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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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10-09 | 조회수5,287 | 추천수0 | |
[전례의 숲] 예수님 시대 공동식사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나 지금이나 한솥밥을 먹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특별한 인연과 유대를 확인하고 드러내고 굳게 하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밥상에 앉는 것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행위입니다. 식사는 생명을 먹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에는 식사를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식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종교, 단체, 장례, 또 다른 이유로 공동 식사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교 신자들은 단체로 그들의 신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였습니다. 한 파피루스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내일, 이 달 15일, 오후 3시에 세라페이온 신전에 있을 (침대형 식탁이 있는) 공동식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다른 초대장도 있습니다. “신이 오후 3시에 토레이온 신전에서 있을 공동식사에 당신을 부릅니다.” 말하자면 신들은 자기 신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공동 식사도 이러한 풍습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찬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몇 유다교 공동식사 모습을 살펴봅니다.
‘치료사’들이 공동식사
첫째, 치료사들의 공동 식사가 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역에는 ‘치료사’라고 부르는 남녀 ‘철학자’들의 단체가 있었습니다. 이 치료사들은 덕행을 쌓고 기도와 관상 생활에 몰두하였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떠나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단순한 거처에서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단체에는 동정을 지키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입회한 뒤에는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과 창설자 글을 읽었습니다. 원로는 주간 모임에서 남녀 회원들을 가르쳤습니다. 자기를 절제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행 관습을 실천하였습니다. 보기를 들어, 궁극적 지혜를 얻기 위해 여러 날 단식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일곱째 날을 가장 단계가 높은 거룩한 축제일로 여겼습니다(안식일과 일곱 번째 안식일). 그날은 영혼을 살찌운 뒤에 육신을 살찌우기 위하여 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음식은 단순했습니다.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고, 소금을 곁들여 빵을 먹었습니다.
이들은 “거룩한 회식”에 흰 옷을 입고 참여하였습니다. 공동체 입회 순서에 따라 남자들은 방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여자들은 왼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하여 팔을 펼치고 하느님의 강복을 청하였습니다. 모두 자리를 잡은 뒤에 주례자는 성경을 주석하거나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담화를 마치고 주례는 일어나서 하느님께 찬미가를 노래하였습니다. 각자는 차례로 자기 부분을 노래하였고 다른 이들은 침묵 속에서 들었습니다. 한 단락이나 후렴을 함께 노래할 때도 있었습니다.
찬미가가 끝나면, 젊은이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두 개의 식탁을 준비하였습니다. 한쪽에는 사제가 앉아 누룩과 소금이 안 들어가고 양념이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의 예식 식사를 본 뜬 것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치료사들이 앉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우슬초로 양념을 한 누룩 든 빵을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거룩한 밤샘 기도를 거행하였습니다. 남자 여자 두 편으로 나누어 기도하였는데 하느님께 드리는 긴 감사의 기도를 노래하였습니다. 거룩한 밤샘 기도로 이집트 탈출의 구원을 기억하였습니다.
쿰란 공동체 식사와 바리사이 식사
둘째, 에센파의 한 분파인 쿰란 공동체의 식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본디 예루살렘에서 피신한 유다교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예식에 순수하게 참여하기 위하여 독신을 지켰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부 유다인과 이교도들이 공동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이들의 공동 식사는 자신들의 순수성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남자들만 이 식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유다교인이나 이교도들은 접근이 금지된 건물에 모였습니다. 먼저 자신을 정화하기 위하여 찬물로 씻었습니다. 이어서 아마포 옷을 입고 ‘거룩한 성소’인 식당으로 향합니다.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은 다음 빵 담당은 준비된 빵을 차례로 나누어 주고, 요리 담당은 각자에게 접시와 한 접시분의 음식을 줍니다. 아무도 사제가 감사기도를 바치기 전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사제는 다시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식사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살아가도록 음식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식사 뒤에는 거룩한 옷을 벗고, 되돌아가서 저녁까지 일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리사이들의 식사가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분리된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예식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한 율법 규정의 정밀한 연구에도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정결한 음식, 바쳐야 할 십일조에 관한 규정들을 적용하는 문제도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삶은 단식과 단순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식사에서는 음식 규정의 세밀한 적용이 더 두드러지고 친교나 다른 특성은 부차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찬례는 부활하신 주님과 신자들이 함께 하는 식사
일반 유다인들 사이에서도 공동 식사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헬레니즘 문화에서는 반쯤 누워 식사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가장이나 중요한 손님이 윗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는 그 왼쪽과 오른 쪽이었습니다 (마르 12,39; 루카 14,7 참조). 빵과 포도주는 식사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기 전에는 빵 축복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찬양받으소서, 주 하느님, 세상의 임금님, 당신은 땅에서 빵을 내셨나이다.” 그리고 식사 끝에는 포도주 잔에 다른 찬양기도를 바쳤습니다. 한편, 안식일이나 축제일에는 그 전날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서 포도주를 축복하고 마시는, “축일 성화 예식”(히브리어로 키두쉬)이 있었습니다(루카 22,17-18 참조).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축제 식사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어린양을 먹는 것처럼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식사에서는 특히 빵과 물고기와 달걀(루카 11,11-12 참조)을 먹었습니다. 물고기는 예수님이 만찬에서 드신 음식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어집니다(마르 6,38 이하; 루카 24,42 참조).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 고기 잡는 이야기들은 성찬례와 관련이 있습니다(요한 21,9 참조). 이러한 배경에서 물고기는 3세기 초부터 빵과 약간의 꿀과 함께 분명하게 그리스도교 식사의 표시로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빵(새로운 만나)과 물고기로 계속하여 당신의 사람들을 배불리십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계속하여 “일용할 양식을”(마태 6,11) 주십니다. 결국 성찬례는 부활하신 주님과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입니다.
유다교 식사들과 그리스도교 식사를 견주어보면 공통적으로 빵과 말씀과 공동체 유대가 핵심 요소로 드러납니다. 말씀은 찬양 기도와 가르침을 포함하고 유대는 가난한 사람 병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됩니다. 한편, 몇 공동체 식사는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을 본받아 정결례 규정을 존중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식사 관습과는 거리를 둡니다. 예수님이 사제들과 성전 관습을 멀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님과 주님의 몸인 교회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0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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