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의미를 새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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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6-08 | 조회수9,022 | 추천수0 | |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의미를 새긴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몸과 피 내어주시고 우리는 그 크신 사랑에 믿음과 희망으로 응답한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성체성사의 제정과 그 은총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만찬인 성체성사는 신앙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다. 성체 성혈 대축일은 이러한 성체성사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성체 성혈에 담긴 의미를 돌아보는 장을 마련한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가톨릭교회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64년 우르바노 4세 교황의 교서로 교회에서 정식으로 지켜졌으며, 마르티노 5세 교황(1417~1431년 재위)과 에우제니오 4세 교황(1431~1447년 재위)에 의해 인가됐다.
가톨릭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적으로 변화한다고 믿는다. 외형적으로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남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 교회는 이를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한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믿는 이 교리는 개신교와의 차이를 낳는다. 개신교에서는 성찬례를 주님 최후만찬의 ‘재현’일 뿐이라고 받아들인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마태 26,26-30 마르 14,22-26 루카 22,14-20 참조)는 명령에 따라 교회는 2000년이 넘도록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고백해오고 있다.
빵의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한다는 것은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성체의 의미를 단순히 ‘상징’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찬례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공동 식사로 바라보는 시각도 나타난다. 이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렌가리우스(?∼1088)는 성체 안에 예수가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상징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중세로 넘어오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고 특히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강하게 제기됐다.
성체를 둘러싼 논란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 와서 11개의 교리로 정립됐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는 단지 상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재적(實在的)으로 존재한다 ▲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1년에 적어도 부활절에는 성체를 영해야 한다 ▲ 대죄 중에 있는 이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리를 발표했다.
성체 · 성혈 기적 일어난 성당들… 주님 현존 보며 믿음 깊어져
세계 곳곳에서 성체·성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기적들은 우리에게 그 신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며 주님과의 친교로 이끈다.
▶ 오르비에토 대성당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렌체를 향해 100㎞쯤 가면 푸른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성채 같은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위치한 오르비에토 대성당(오르비에토의 두오모)은 ‘볼세나(Bolsena)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1290년부터 300년 동안 건립됐다. 이 기적을 둘러싼 일화는 12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라하의 베드로 신부는 평소 ‘매일 영하는 제병과 포도주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라는 의구심으로 괴로워하다 1263년 1년간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흔들리는 신앙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르비에토에서 멀지 않은 볼세나의 산타 크리스티나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또 다시 시험에 들었다. ‘이 성체와 성혈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이 맞는가.’
미사 내내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해 갈등하던 그는 성찬의 전례 도중 깜짝 놀랐다. 성체에서 피가 “뚝 뚝”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성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제의 손가락을 적시고, 성체포와 제대 위로 떨어졌다.
베드로 신부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했으나 곧 미사를 중단하고 오르비에토에 있던 우르바노 4세 교황을 찾았다. 진상조사 결과 사실임이 밝혀지자 교황은 피를 흘린 성체와 피가 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토로 모셔오도록 했다. 이어 성체를 공경하는 날로 성체 성혈 대축일을 제정했다. 지금도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가면 기적의 성체포를 볼 수 있다.
-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 내 기적의 성체포.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이탈리아 아브루초 주(州)에 있는 란치아노(Lanciano)는 성체신심이 깊은 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700년 경 란치아노 지방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교의에 확신이 없었다. 어느 날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던 중 눈앞에서 제병이 살로, 포도주가 피로 변했다. 너무 놀란 신부는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 성체와 성혈을 직접 보여줬고, 신자들은 뛰쳐나가 이 소식을 란치아노 전역에 알렸다.
교회는 이와 관련해 네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조사를 벌였다. 아레초(Arezzo)의 에도아르도 리놀리(Edoardo Linoli) 교수가 이끄는 팀은 처음엔 회의적인 태도로 조사에 착수했다가 지난 1971년 3월 공식적으로 교황청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는 ▲ 이 살은 진짜 살이며, 이 피는 진짜 피다 ▲ 살은 심장 근육조직으로 합성됐다 ▲ 이 살과 피는 사람의 것이다 ▲ 이 살과 피는 같은 혈액형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오늘날 신자들은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안치된 성광을 통해 성체와 성혈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74년 이곳을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방명록에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욱 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희망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썼다.
- 이탈리아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성광.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아르헨티나 성모 마리아 성당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화가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이곳에서 사목하던 알레한드로 뻬젯트(Alejandro Pezet) 신부는 지난 1996년 8월 오후 미사에서 성체분배를 끝낼 즈음 한 신자로부터 “촛대 아래 성체가 버려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뻬젯트 신부는 그 장소에서 성체를 발견하고 마음이 상했다. 그는 성체를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담가 감실 안에 모셨다.
얼마 뒤 감실 문을 연 뻬젯트 신부는 성체가 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즉시 당시 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전문 사진가를 불러 성체를 찍도록 했다. 3년 동안 그 성체는 감실 안에 보관돼 철저한 보안 아래 공개되지 않았다.
성체가 부패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베르골료 추기경은 과학적 분석을 의뢰했다. 검사가 편견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본의 출처가 성체라는 것을 밝히진 않았다. 분석을 담당한 심장전문의이자 법의학 병리학자 프레데릭 쥬기브(Frederick Zugibe) 박사는 그 표본이 “심장근육 중 하나”라며 “인간의 DNA를 포함한 진짜 살과 피”라고 말했다.
란치아노 성체 기적에 대한 조사를 한 바 있는 리놀리 교수는 란치아노 성체의 표본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성체의 표본이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제병이 피와 살덩어리로 변하는 엽기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어주신다는 사랑의 표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현대인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기적은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유효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마태 13,58)
기적주의에 휩쓸려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을 향한 배려가 교만으로 바뀐다면, 그 기적은 자신에게도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7일, 서상덕 기자, 김근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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