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사제직과 사제의 미사 전례 복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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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9-18 | 조회수8,294 | 추천수0 | |
[본당신부님과 함께하는 월례교육] 전례 - 사제직
사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사제를 일컬을 때 우스갯소리로 ‘주일만 일하는 남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혹시 모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사제’라는 것을 아십니까? 사제직은 ‘교계적인 사제직’과 ‘보편 사제직’으로 나뉘는데, 교계적인 사제직은 성직자들이 행하는 사제직이고 보편 사제직은 모든 신자들이 행하는 사제직입니다. 이 두 사제직이 본질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며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47 참조).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제이며 예언자이고 왕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41항 참조). 다시 말하면 모든 평신도들도 사제로 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사제적 공동체’라 불립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46 참조).
수원교구 미래 복음화를 위한 「50주년 교서」 43항에서 모든 그리스도신자의 사제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자신의 모든 활동 안에서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사제직을 수행합니다. … 평신도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늘 기도하셨던 것처럼 자신을 하느님과 일치시키며, 그리스도께서 온 일류를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시키셨던 것처럼 주변의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제의 본질적 임무는 자신의 ‘봉헌’을 통해 하느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봉헌’이 어떻게 ‘중개자 역할’로 이어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사제의 가장 완전한 모델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기 희생을 통해서 하느님과 세상을 중개하셨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성자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중개하기 위해 먼저 사람이 되셨습니다.
중매쟁이는 신랑과 신부 양쪽을 모두 아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자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과 접촉하셔야 했기 때문에 인간이 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사제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접하기 위해 성찬례에 참여하고 또한 세상과 거리낌 없이 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 하느님을 만날 정도로 거룩하셨습니다.
만약 중매쟁이가 신랑이나 신부 쪽과 싸워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중매를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도 하느님과 인간을 만나기에 합당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면 사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덕이 바로 ‘겸손함’이고, 그 겸손함은 하느님의 뜻에만 ‘순종’할 줄 알도록 이끕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모세만을 만나주시는 것을 그의 형과 누이가 시기할 때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3).
*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사제가 미사 때 향을 치는 이유는 그 ‘향’이 ‘희생제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향은 자신을 태워 악취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도 ‘향’처럼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습니다. 인간의 죄의 악취를 중화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제는 신자들의 제물만 봉헌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제물과 함께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참 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온 인류를 위한 구원 제물로 아버지께 봉헌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화해하도록 만드는 중개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중개자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바로 ‘자기희생’인 것입니다.
* 축복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멜키체덱은 하느님께 빵과 포도주를 바치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인간에게 죄의 용서와 영원한 삶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제는 미사 때 하느님께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인 그리스도를 신자들에게 전해줍니다. 따라서 사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제는 자기희생으로 받은 축복과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축복의 통로가 축복으로 가득하지 않을 수 없고, 행복의 통로가 행복으로 가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제는 가장 축복받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 사제는 ‘중매’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위에서 중매쟁이를 사제와 비유했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제는 하느님과 인간을 중매하여 한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제가 없다면 미사를 통해 성체를 영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교’에 가장 가까운 말이 ‘사제 직무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하는 선교의 직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이처럼 우리가 하는 사제직은 우리가 일치해 있는 교회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이 둘을 하나로 엮어주는 중매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 중매로 교회와 하나가 되면 그 교회 안에 하나이신 그리스도와도 한 몸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신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성경이 바로 ‘카나의 혼인잔치’(요한 2,1-12)입니다.
성모님의 중개가 없었다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잔치는 계속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먼저 그리스도에게 다가가 당신 믿음으로 교회에 은총을 청합니다. 봉사자들은 물을 항아리에 채움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러나 포도주로 상징되는 성령의 은총은 성모님의 중개로 교회에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중개로 교회는 은총의 포도주를 계속 얻으며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옛 계약이 성립되지 못했듯이, 성모님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간에서 그런 역할을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열렬한 사제직 수행이 없다면 교회는 세상과 단절되어 결국 텅텅 비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신앙 : 사제의 미사 전례 복장
사제가 입는 ‘수단’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수단은 사제의 직무를 가리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점차 형성된 복장이기는 하지만 죄를 사해주는 ‘법관’의 의미와 영혼을 치료해주는 ‘의사’의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제의 특별한 직무를 위해서는 ‘세상에서 죽고 오직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봉헌된 제물’의 의미가 있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더불어 목 부분에 흰 로만 칼라를 하게 되어있는데 그 의미는 때 묻지 않은 ‘순결함’을 나타내줍니다.
수단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이젠 사제의 전례 복장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미사를 하기 위해서 사제는 평상복인 수단이나 클러지 셔츠 위에 특별한 의복을 입습니다. 5가지의 전례복을 입으면서 각각의 의미를 드러내는 기도를 바칩니다.
첫째로 개두포(蓋頭布, amictus)는 가장 먼저 착용하는 아마포로 된 장방형의 흰 천으로 어깨에 걸칩니다. 개두포는 고대 로마인의 목도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원의 투구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영적 무장 없이 수행하는 사제직은 어쩌면 껍데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장백의(長白衣, alba)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백색의 옷입니다. 장백의는 사제가 미사 때 지녀야 할 육신과 영혼의 결백 그리고 마음의 순결을 상징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께서 중개자로서의 사제 직무를 가장 완전하게 수행하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흠도 티도 없으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띠(cinctura)는 장백의를 입을 때 장백의가 끌리거나 벌어지지 않게 허리에 매는 것입니다. 띠는 일, 싸움 등에서 나타나는 결의와 악마와의 투쟁, 참고 견디는 극기의 상징이며 금욕생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제직에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지만 인간의 깨어있고 준비되고 절제되고 노력하는 삶이 또한 요구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영대(領帶, stola)는 고대 동방에서 사용하던 술이 달린 화려한 목도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영대는 성직자에게 부여된 직책과 의무, 그리고 성덕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성덕이 뛰어나다고 해서 모두 미사 주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제의(祭衣, casula)는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가 장백의 위에 입는 반추원형의 옷으로 로마 사람들의 옷인 패눌라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의는 예수의 멍에를 상징하고 애덕을 표시하는 데, 처음에는 제의를 ‘사랑의 옷’이라 했고, 9세기엔 ‘온유하고 가벼운 그리스도의 멍에’라고 했으며, 12세기에는 ‘순결의 옷’이라고 불렀습니다. 멍에는 소가 일을 하기 위해 매야하는 일종의 ‘구속’입니다. 그러나 ‘가볍고 아름다운 구속’입니다.
주례자는 전례를 거행하기 전에 거룩한 옷을 하나씩 입으면서 기도로써 준비합니다. 전례가 우리 삶을 구속하는 귀찮은 것이 아닌 우리 영성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교회의 복된 유산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참조 : 가톨릭전례위원회, 전례 짬짜, 천주교 사제의 복장, 평상복과 전례복]
[외침, 2015년 9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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