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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성찬 제정과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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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5 조회수8,069 추천수0

[전례의 숲] 성찬 제정과 축성

 

 

“성찬 제정 이야기”는 전통 용어로 “축성”이라고도 합니다. 축성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사실을 말합니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에는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축성은 감사기도 전체를 통하여, 특히 그 정점인 제정 이야기의 낭송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제는 거룩한 사제품의 힘으로 감사기도를 낭송하며 축성을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마술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감사기도는 사제만 바칩니다. 그러나 사제는 다락방에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말을 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사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바치는 것입니다.

 

미사 거행은 그 본성으로 ‘공동체 행위’입니다(총지침 34). 그러므로 미사에서 “사제는 주례자로서 교회의 이름으로 그리고 함께 모인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칩니다”(총지침 33). 마찬가지로 사제가 축성문을 바칠 때도 “회중 전체의 이름으로”(총지침 78) 회중과 함께 바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례는 공동체의 얼굴과 입이 되어(in persona Ecclesiae)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 사제가 감사기도를 “속으로”(secreto) 바치던 때 “축성의 말씀은 마디마다 주의를 기울여” 바쳐야 했습니다. 이제 사제는 “주님의 말씀은 마디마다 또렷하게”(미사 통상문 89) 낭송해야 한다고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말로 “또렷하게”(aperte)로 옮긴 말은 “공적으로”, “공개적으로”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곧 신자들 모두 잘 알아듣고 함께 바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거룩한 사제품의 힘으로 감사기도 낭송하며 축성

 

함께 바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미사경본은 “침묵을 지키며 사제와 일치하여”(총지침 147) 바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신자들은 낭송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침묵 속에 관상하고 경배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동방 전례에서는 회중은 빵과 포도주 축성 뒤에 각각 “아멘”으로 환호하며 사제의 기도를 호응하며 확인합니다. 더군다나 콥트 전례에서 제정 이야기 부분에서 사제의 기도에 회중은 여러 차례 환호하며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빵 축성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성 바실리오의 콥트 전례” 1993). 포도주 축성에서도 마찬가지로 회중은 환호하며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 위대하고 신성한 신비를 제정하셨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당신을 죽음에 넘기기로 결심한 때가 되자

◎ 저희는 믿나이다.

† 그분께서는 거룩하고 흠 없고 순결하고 복되고 생명을 주시는 손에 빵을 드셨습니다.

◎ 저희는 이것이 진실임을 믿나이다. 아멘!

† 그분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오 하느님, 당신 아버지이시며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 아멘!

† 그분께서는 그것을 축복하셨습니다.

◎ 아멘!

†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 아멘! 저희는 믿나이다, 찬양하나이다, 현양하나이다.

† 그분께서는 그것을 쪼개어 당신의 거룩한 제자들과 덕망 높은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정녕 이것은 나의 몸으로, 죄의 용서를 위하여 내어줄 것이며,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부서질 것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이것은 진실이옵니다. 아멘.

 

성찬 제정 이야기는 감사기도에 따라 조금씩 표현은 다르지만 언제나 마지막 만찬을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수난 전날”(1양식), “잡히시던 날 밤에”(3양식). “수난 전날 저녁에”(기원), “…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실 때가 되자”(화해). 4양식에서는 수난의 시작을 요한복음을 인용하여(13장)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현양받으실 때가 되자”(4양식)라고 말합니다. 화해 감사기도 가운데 하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팔을 펼치시기 전에”라고 말하며 십자가의 수난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2양식에서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라고 표현합니다. 다만, “스스로 원하신”(voluntarie)은 원문에서는 “넘겨질”(traderetur)을 꾸미는 부사인데, 우리말에서는 “수난” 앞에 놓아 원문과 달리 수난 자체를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으로 해석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가운데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의 각 문장에서 미사경본 원문에는 “실제로”, “정녕”을 뜻하는 부사가(enim) 있습니다(우리말 번역에는 나타나지 않음. 영어에서는 “For”로 옮김).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파스카 회식 관습에 충실하여 말씀과 동작을 하셨지만 당신 뜻을 밝히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셨습니다. “받아먹어라/마셔라. 이는 ‘실제로’ … 내 몸이다/피의 잔이다.” 그러므로 이 부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말씀을 예식만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되풀이하라

 

제정 이야기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되풀이 명령으로 끝납니다. 구약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이집트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잔치를 규정하시며 되풀이 명령을 덧붙이신 것과 같습니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탈출 12,14).

 

죽음을 앞두고 유언으로 남기신 주님의 명령을 교회는 미사를 거행하며 실천합니다. “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겉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동작이지만, 내용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의 죽음”, 그분의 파스카 사건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 전례들에서는 성 바오로의 권고를 덧붙여 말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너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나의 죽음을 전하여라.”(1코린 11,26). 부활과 승천을 덧붙이는 기도문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 전례에서 이 의미는 축성문 뒤에 “신앙의 신비여!” 외침에 대한 회중의 (첫 두 가지) 응답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만찬에서 하신 예언적 동작과 그 말씀을 예식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되풀이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상에서 사랑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자기 목숨까지도 내놓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7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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