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기념(아남네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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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0-08 | 조회수6,743 | 추천수0 | |
[전례의 숲] 기념(아남네시스)
예수님께서는 성찬 제정 마지막에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 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억”은 그리스어로 “아남네시스”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전문 용어로 보통 “기념”으로 옮깁니다. 기억 또는 기념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령 청원”(에피클레시스)과 함께 전례의 핵심 개념이 되었습니다. 보기를 들면, “모든 전례는 구원 업적의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기념은 본디 히브리어 “지카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당신을 기억하도록 몸소 선택하신 것으로, 대사제가 지녀야 할 보석, 아말렉족을 무찌른 기록, 나팔 소리, 특히 파스카 축제 따위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하신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나를 잊지 말고 제삿날을 챙겨라. 꽃다발을 가져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를 행하여라”라는 명령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내놓으신 사랑의 제사를 거행하고, 실제 삶에서도 우리 자신을 제물로 내놓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예수님의 이 “기억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미사 전체가 “구원의 기념제”(4양식),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제사이지만, 감사기도에는 고유한 “기념 예식”들이 있습니다. 사제의 권고와 회중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기념 환호”, 이어서 사제가 바치는 “기념 기도”입니다. 2양식에서는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라고 기도합니다.
“기념 기도”는 감사기도의 가장 오래된 요소에 속하며 미사의 동기와 목적을 표현합니다. 유다교 전례의 “찬양 기도”(브라카)에서 감사와 찬양의 동기, 곧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감사기도에서도 찬미와 감사는 자연스럽게 그 동기, 곧 기념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감사송에 (4양식에는 “거룩하시도다 후 기도”에서도) 이미 “기념” 특징을 갖는 감사의 여러 동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 창조, 구원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기념 기도”에서는 그리스도 구원 업적에 집중합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2양식에서는 죽음과 부활만 기억하지만, 1양식에서는 수난, 부활, 승천을, 3양식에서는 수난, 부활, 승천, 다시 오심, 4양식에서는 죽음, 저승에 가심, 부활, 승천, 다시 오심, 기원 감사기도에서는 수난, 죽음, 부활, 승천, 화해 감사기도에서는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화해 둘째 양식에서) 다시 오심을 기억합니다.
“기억”은 보통 지난 일이나 사람을 잊지 않고 머리나 마음에 떠올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지각과 느낌이 가슴속에 스며들고, 이어서 “배 속 깊은 곳에 있는 방”에 기억으로 저장된다고 생각했습니다(A. 셰켈). 보기를 들면, “중상꾼의 말은 맛난 음식과 같아 배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잠언 18, 8)고 말합니다.
사람은 기억하는 동물입니다. 지난 시절, 고향, 애틋한 일이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더 많이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억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공동으로 하는 기억도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체의 “배 속 깊은 곳에 있는 방”인 기억 저장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기억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로 보존됩니다. 이를 신화라고 부릅니다. 어떤 기억은 연대기 또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더 정밀하게 보존되기도 합니다.
기억은 축제의 형태로 보존되기도 합니다. 개인이나 가족에는 생일, 혼인 기념일, 제사가 있고, 마을에는 동제, 기우제, 풍어제가 있고, 나라에는 전통적인 명절이(한가위, 설) 대표적이고, 문화(한글날), 정치 사회(해방이나 독립, 승전이나 민주화 기념, 애도) 영역에 대중이 참여하는 축제들이 있습니다.
한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공동체는 “문서 보관소”나 “기록물 보관소”를 가집니다. 문학과 예술, 기념물과 박물관, 기념관이나 “기억 교실”도 기억을 돕습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죄로 여겼습니다. 기억을 방해하는 행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공동체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병들었다는 뜻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온갖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길은 기억하는 것입니다(권혜경-박수진).
교회는 고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한 거룩한 역사,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살아 있는 “기억 보관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글로 기록된 성경과 영으로 기록된 전승입니다. 교회는 기억을 위해 끊임없이 성경을 읽으며 선포합니다. 전승은 자주 축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전례주년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전례, 특히 미사는 성경과 전승 두 요소를 담아서 거룩한 역사를 살아 있는 현실로 바꿉니다.
기억은 언제나 행위나 활동의 의미 담아
성경과 전례에서 말하는 기억 또는 기념은 지난 사건이나 사람에 관한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회상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행위나 활동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념은 흔히 축제라는 활동으로 실현됩니다. 이집트에서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 관하여 이렇게 규정합니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탈출 12,14). 가말리엘 랍비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모든 세대의 각자는 자신이 이집트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풀이합니다.
한마디로 기념은 지난 사건을 재현하여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기에 직접 참여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사건에 맞게 살아가면서 그 사건에 있었던 효과를 똑같이 누리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이루신 과거의 구원 활동이 기억 예식을 통하여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기억은 희망을 뜻하기도 합니다. 미래에 열려 있는 하느님의 약속과 보증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억의 축제인 미사에서 세 겹으로 주님을 기억합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회상하고, 그 사건들이 현실이 되며, 앞으로도 내 삶에서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굳게 합니다.
“기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입맞춤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입맞춤을 통하여 그들 사이에 있는 현재의 사랑과 함께 지난 시간과 이어지는 미래도 표현합니다. 입맞춤 동작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사랑하겠습니다. 그래서 입맞춤을 합니다.” 이렇게 입맞춤은 현재의 순간에 일어나고 있지만 과거와 미래도 들어 있습니다. 그 입맞춤은 시간을 넘어 충만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말씀 안에는 입맞춤에 들어 있는 똑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곧 미사 때마다 사랑의 역사를 다시 현실로 드러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깊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내 사랑을 기억하여라.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한다. 항상 너와 함께 있다. 이제 나는 이 사랑의 역사를 되풀이하려 한다. 이 사랑을 계속하여 너에게 보증한다. 이 순간 나는 말한다. 너를 사랑한다!” 이 사랑에 대한 응답은 그분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증언하고 기억하는 “기념 기도”로 표현합니다. “저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나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0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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