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 톡톡: 평신도도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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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1-30 | 조회수5,137 | 추천수0 | |
[전례 톡톡] 평신도도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가?
미사 때 성체 분배를 수녀님들도 하고, 평신도 자매님들도 하고, 심지어 중학생들까지 했어요. 그리스도의 몸을 분배할 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거죠? - 페라라에서 파브리치오 -
‘평신도 남녀가 사제와 함께 미사 성체 분배를 하는 것은 남용이다.’ 이렇게 형제님께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그런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요사이에 새롭게 생긴 풍조가 아니라 1973년 1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승인해주신 거죠. 하지만 형제님께서 편지에서 언급하신 내용을 요약해볼 때, 자기 직무를 수행한 뒤 친구들과 장난치며 낄낄대며 자리로 돌아가는 일부 젊은이들의 경망스런 태도 때문에 언짢으셨던 것 같은데 이는 성체분배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말씀해주신 일화가 충격적인 까닭은 사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무책임한 젊은이들에게 직무를 맡긴 데 있어요.
개정의 이유들
거듭된 요청 끝에 분명하고 구체적인 조건들 및 규정들이 덧붙여져 마련된 어떤 결정이 그런 남용 때문에 의혹이나 악평의 대상이 돼선 안 되지요. 성찬례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대한 신비가 현실화되는 민감한 영역에서는 어떠한 것도 임의대로 하거나 각자 마음대로 하라고 돼있지 않아요.
10세기부터 평신도가 성체를 손으로 잡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지금은 손으로 받을 뿐아니라 분배까지 할 수 있도록 전례 규정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이 때문에 빵과 포도주의 성사적 표징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실재적 현존에 대한 신앙과 존경심이 약해진 건 아니지요. 오히려 사목적, 신학적으로 정당한 근거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있죠. 성직자 중심주의가 최고조에 이른 10세기경 이래 신자들을 성체성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던 그 옛 관습을 폐기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이것이죠. 즉 사제가 없는 경우라도 최대한 모두가 영성체를 할 수 있고 또 좀더 쉽게 영성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신자들을 분발시키려는 것이었어요.
대개 선교지역에서 그러하지만, 소위 가톨릭 국가라 알려진 나라들, 특히 산악 지방이 많은 나라들에서도 사제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사제가 없어서 평신도가 정규적으로 주재하며 성체 분배도 하는 주일 공동체의 숫자가 이천 개가 넘지요. 그러나 사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큰 병원이나 성지에서 거행되는 미사나 대축일 미사 같이 신자들이 미어터지는 경우, 혹은 거동이 불편해서 자택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나 임종자들에게 성체를 모시게 하려면 평신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사제가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을 나누어줄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누가 대신해주는 것뿐이죠. 콕 집어서 말해, 먼저 부제로부터, 그 다음으로 복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거죠. 그런데 이들이 흔하지 않아요. 이런 까닭에 예외적 비정규 직무에 도움을 청하자는 결정이 내려졌어요. 예외적 비정규라고 하는 이유는 직무가 영구적이지 않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러 가지 상황에 달려 있기 때문이에요.
예외적 비정규 직무들의 선택
예외적 비정규 직무를 담당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일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본당신부가 지정하고 주교의 정식 인준이 따라야 해요. 그러한 직무을 맡은 사람들은 빈틈없이 준비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건 신앙생활에서건 흠잡힐 데가 없어야 한답니다. 직무 수여도 사적으로가 아닌 공적으로 이루어져요.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거죠(미사 밖에서 수여식을 할 경우도 있음). 그래야 누가 직무를 받는지 모두 알게 되고, 또 직무를 남녀 차별 없는, 공동체 봉사를 위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사제는 혼잔데 신자들이 엄청나게 참석한다든지 하는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제는 평신도가 자신을 도와 성체분배를 할 수 있도록 미사 중에 짧은 고유 예식을 통해 그에게 직무를 수여할 수 있어요.
보시다시피, 모든 게 다 규정돼 있고 체계적이지요.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한다거나 호의를 베푼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봉사’(이 말이 바로 라틴말로 미니스테리움 ministerium, 곧 직무란 뜻)일 뿐이지요. 어느 누구도 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위로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직무자가 비정규직이긴 하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큰 봉사를 하는 거죠.
그렇지만 수여받은 직무를 단순 조치 또는 임시 해결책 정도로 여긴다면 그건 너무 좁은 생각이라 하겠어요. 이 직무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근거를 두고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완성된 새로운 교회론, 즉 교회에 관한 가르침과도 일치한답니다. 봉성체 관습이 생겨난 건 2세기부터예요. 미사 끝 무렵, 부제들이 병자들에게 성체를 전해줬어요. 이는 성 유스티노가 전하는 기록에서 알 수 있지요. 봉성체를 해주거나 병자들과 임종자들에게 노자성체를 전달해줄 직무를 청소년들에게도 수여했던 적이 자주 있었어요. 박해 시대 또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축성된 빵을 자기 집에 가져가서 혼자서 영할 수도 있었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봉사
교회의 삶에 전통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경우, 더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이유랍니다. 정규 ? 비정규 직무들을 제정하는 것은 교회 전체 직무의 표현이요 ‘친교’(comunione)로서의 교회 개념이 표현된 것이죠. 즉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 안에서 정신으로 하나이고, 마음으로 하나이며, 삶으로 하나인 친교가 교회란 뜻이에요. 교회는 봉사, 협력 및 연대책임이 여러 직무자들, 곧 서품을 받았거나(주교, 사제 및 부제), 허가를 받았거나(독서자 및 복사), 예외적 비정규적으로 직무를 받거나 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에게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필요성이 제기된 곳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고, 이것이 교회의 양심 안에서 무르익었지요. 공동체의 모든 직무 또는 봉사직을 한 사람에게만 집중시키는, 그런 만능 사제상은 더 이상 시대엔 맞지 않아요.
교회는 장상과 수하, 주인과 종처럼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물론, 책임과 기능 면에서는 교계제도가 있긴 해요. 하지만 본질은 디아코니아(diaconia), 즉 봉사랍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거죠. 그러므로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존재는 교회의 새로운 민감성을 드러내고,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형제적 협력과 봉사를 호소하는 표징이 되지요. 그와 동시에 영성체를 통한 성체성사 참여의 중요성을 힘주어 외치고 있는 거랍니다.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u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28-31)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여름호(Vol. 34), 번역 최종근 빠코미오 원장수사(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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