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 톡톡: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도 성체를 모실 수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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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1-18 | 조회수11,099 | 추천수0 | |
[전례 톡톡]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도 성체를 모실 수 있는가?
어떤 신부님들은 자꾸 성체를 모시라 하는데, 또 어떤 신부님들은 고해성사를 안 했으면 모시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 텔라로에서 루이지 -
독자께서 해주신 질문에 온전히 들어맞는 확실한 격언이 있지요. “사제도 제대에서 실수한다.” 사제라면 영성체 때 다음과 같이 말했겠지요. “주중에 고해성사를 못보신 분들은 성체를 모시러 나오지 마세요” 하고 말이죠. 반면, 또 어떤 사제들은 특별한 행사를 할 때만 성당에 나오는 습관적인 신성 모독자들에게도 영성체를 하라고 ‘억지로’ 초대할 수도 있겠지요. 모순된 양극단이 존재한다, 이 말입니다.
중대한 죄
진짜 문제는 ‘고해를 했냐’, ‘안 했냐’가 아니라, 성사를 반드시 받아야할 때는 언제고, 또 받으면 유익하고 좋은 때는 언제인가 하는 거에요. 가톨릭이 여기에 답을 처음 내놓은 게 트렌토 공의회의 규정이었는데, 이 규정이 1983년 교회법과 1992년 가톨릭교회교리서에 재인용되면서 명확해졌어요. 교회법 제916항과 교리서 제1457항은 ‘중죄를 자각하는 이는 먼저 고해성사를 받지 아니하고서는 성체를 모셔서는 안 된다’라고 말해요. 이 규정의 성격은 법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이에요. 즉 성 바오로가 ‘주님의 만찬을 먹기 전에’(1코린 27-29) 자신을 돌이켜보라고 하는 권고와, ‘고백한’ 죄인들의 화해가 파스카 밤의 영성체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고대 교회법적 참회 관습을 해석한 것이에요. 함께 성찬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하느님과 친교, 그리고 교회와 친교를 표현하는 가장 큰 표징이지요. 하느님과 계약을 깨뜨린 사람은 반드시 고해 행위를 해야 해요. 간단히 통회하는 걸로 그쳐선 안 된다는 말이에요.
물론 고해를 먼저 하지 않았지만 신자에게 영성체가 허락되는 특별한 경우들이 있어요. 정확히 말해, 중죄를 자각하는 이라 해도 ‘성체를 모셔야 할 중대한 이유가 있고 또 고해사제에게 갈 수 없는 경우’(교리서 제1457항), 양심의 가책 없이 성찬례에 참여하고 영성체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주석가들은 ‘중대한 이유’를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한명이나 그 이상의 고해사제가 있는 상황이어도, 영성체를 허락하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으뜸가고 반드시 가져야할 태도인 통회, 다시 말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회개’는 필수에요. 이것이 있어야 죽을 죄라도 용서가 되는 거죠. 고백은 나중에 알맞은 때 하면 되구요. 그러므로 단지 중죄만을 지은 신자일 경우 -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과 우정을 끊는 죄’(고해성사 예식서 제4항) - 성체성사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지요. 이 경우 또한 예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성체성사에는 어떤 중죄라도 용서하는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성체성사란 십자가 희생의 성사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사를 통해 인류와 화해하셨기 때문이죠. 죄를 씻는 성체성사의 가치는 전례와 교부와 신학의 전통에서, 특히 트렌토 공의회 전까지는 대부분 증언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는 트렌토 공의회에서도 재확인됐어요.
다양한 참회 양식
한편 사소한 죄 또는 일상적인 죄의 용서라면 화해의 성사는 전혀 의무가 아니에요. 비록 받을 수 있고 유익해도, 또 복음적 완덕을 갈망하고 추구하며 헌신하는 사람은 권고까지 받는다해도 필수는 아니에요. 사소한 죄들이라면 성사 거행 말고도 여러 참회 양식들이 존재해요. 그런 것들이 고대 전통에서는 동방 뿐 아니라 서방에서도 많이 전수돼 왔는데, 트렌토 공의회 이후로 오면서 ‘성사적 고백’이 논의의 여지가 없는 대세가 되면서 다 사라져버렸어요.
이 때문에 새 「고해성사 예식서」 뿐만 아니라 1967년 「성체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에서도 다양한 참회 양식과 행위들을 적용해보라고 권장하고 있어요. 방금 인용한 훈령 제35항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어요. ‘성체성사가 “우리를 일상 허물에서 건져주고 중한 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예방제(豫防劑)’와 같은 것으로 신자들에게 소개되고, 미사 중 통회의 부분을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도 제시되어야 한다.” 여러 통회의 부분들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세 가지 있죠. 하느님 말씀의 선포, 주님의 기도, 미사 중 참회 예절, 이 세 가지에요.
회개가 목적
이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참회 예절이겠지요. 왜냐하면 참회 예절은 사제가 온 회중과 함께 거행하고 또 동?서방 전례에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현행 로마 예식에 포함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제의 전체 회중을 향한 초대, 양심 성찰 시간, ‘고백’ 또는 청원기도, 사제의 사죄경 순이지요. 이는 즉흥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사의 형태를 본떠 만든, 회개의 짧고 큰 걸음이에요. 그리고 각자 개인과 공동체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니 따라서 소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죄와 화해의 교회적 차원에 대한 교육도 시켜주는 역할도 하는 거죠. 교회 권위가 규정한 예외적인 상황들에서는 참회 예절이 중죄에 대해서도 성사적 가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학자들과 사목자들 사이에도 실제로 있어요.
전통적으로 늘 하느님 말씀의 선포 또한 죄를 씻는 요소라고, 아니 죄를 없애주는 요소라고 믿어 왔어요. 이를 증언하는 것이 사제가 복음 봉독 후에 바치는 다음의 기도에요.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 주소서”(여기 쓰인 라틴어 용어는 ‘delicta’, 범죄들!).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응답하고, 대화하는 것, 바로 이런 것이 하느님과 화해했다는 확실한 표현인 거죠. 그분의 말씀은 효과를 내거든요.
주님의 기도도 죄사함을 위한 기도라고 항상 여겨져 왔어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청원은 용서를 간청하는 탄원서이자 형제들과 화해하겠다는 각서인 거죠.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고 줄기차게 강조돼야 할 것은 고백성사가 아니라 마음의 회개에요. 이게 안 되면 고백 행위가 공허하고 기계적이며 진부한 예식이요 회개의 대용품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지요.
(R. Falsini,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u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35-38)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겨울호(Vol. 36), 번역 최종근 빠코미오 원장수사(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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