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그리스도의 향기 - 故 배문한 신부와 사랑의 혁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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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2-28 | 조회수5,879 | 추천수0 | |
[빛과 소금] 그리스도의 향기 - 故 배문한 신부와 사랑의 혁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가고 싶은 길과 가는 길 그리고 가야 할 길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수원신학교 학장이셨던 故 배문한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신학생들에게 즐겨하시던 말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제가 되고 싶었고 지금 사제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사제로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갈 것이기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서도 사제가 되길 잘 했다는 생각에 당신 자신이 신통방통하고 대견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신부님께서는 자주 신학생들에게 ‘십자가의 프로 선수가 되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 ‘사랑의 혁명가가 되라.’는 주옥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사랑의 원자폭탄이 되라.’고 하시면서 신학교를 사랑의 폭탄을 만드는 공장이요, 학장인 당신 자신을 공장장으로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신학생들을 ‘사랑의 혁명가’로 만들기 위해 하신 애정 가득한 좋은 말씀들이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똑같은 말씀을 주야장천 반복하셨던 신부님의 레퍼토리가 솔직히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모토로 삼으셨던 신부님께서는 1994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물에 빠진 교우 세 명을 구하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신부님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깊은 슬픔에 빠졌고 저는 그때서야 비로소 신학생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셨던 신부님의 가르침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사랑은 생명을 구해 주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 주는 것입니다. 고통과 실망으로 자살하는 사람을 구해 주는 것입니다. 한 달밖에 살지 못할 사람을 십 년 혹은 이십 년을 더 살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하물며 칠십 년밖에 살지 못할 사람을 칠백 년 아니 칠천 년, 아니 영원히 살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이는 실로 사랑의 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곤경에 처한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신 신부님은 매일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보여준 살신성인의 사제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성직자란 직책상 운명적으로 언행일치가 어려운 사람임을 느끼고 겸손히 고백할 줄 알았던 신부님께서는 그래서 더 신학생들에게 ‘사랑’에 대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배문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가고 싶은 길, 가는 길, 가야할 길이 일치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 하느님 뜻 안에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삶을 내어 맡기고 그분과 깊은 일치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고 참된 행복의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저도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는 귀중한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때로 말로만 떠들고 있는 부끄러운 저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사제 생활이란 꿈보다 아름다운 현실의 연속이라고 하셨던 그때 그 시절 배문한 신부님의 모습과 잔소리가 더 그리워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2017년 2월 26일 연중 제8주일 인천주보 4면, 김기태 사도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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