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부활] 사순 시기, 어떻게 해서 40일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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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6-20 | 조회수8,838 | 추천수0 | |
[전례 생활] 사순 시기, 어떻게 해서 40일인가
교회의 전례력은 크게 대림 · 성탄 · 사순 · 부활 · 연중 시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지난 3-4월에 지낸 사순 시기의 기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순 시기’(四旬時期: quadragesima)라는 말은 자구적으로 ‘40일의 기간’을 뜻한다. 1969년에 반포된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이하 ‘전례주년’) 27-28항은 “사순 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때”이며,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 직전까지 계속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순 시기가 준비하는 파스카 축제란 주님 만찬 미사로부터 시작되는 파스카 성삼일이며,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목요일까지 총 44일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사순 시기가 준비하는 성삼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전례주년」 18-19항은 성삼일이 “주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최고의 축제이며,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 기도로 끝난다.”라고 명시한다.
한편, 3항과 11항은 “대축일의 거행은 이미 그 전날 저녁에 시작”하며 “어떤 대축일에는 전날 저녁에 미사를 드릴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고유 전야 미사도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사순 시기가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은 성금요일, 성토요일, 예수 부활 대축일의 3일이며, 성삼일 전날인 성목요일 저녁의 주님 만찬 미사는 성삼일의 전야미사이다.
앞의 현행 규정들을 종합하면, 사순시기는 성삼일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40일이 아니라 44일로 드러난다. 이 기간이 40일이 아닌데도 사순 시기라고 부르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사실 사순 시기는 본디, 말 그대로 40일이었다. 사순 시기는 왜 40일이었고, 어떤 이유로 현재와 같이 44일이 되었는가?
2-6세기,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고해성사
사순 시기에 대한 논의를 고해성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에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나 이 둘은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깊은 연관이 있다. 초기 교회에는 성경 본문을 엄하게 해석하여 세례받은 뒤 죄를 지을 경우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2세기 무렵의 저작인 「헤르마스의 목자」는 이러한 엄격한 상황을 완화하여 세례를 받은 뒤에 지은 죄를 한 번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2-6세기의 신자들은 고해성사의 은총을 평생에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었다. 먼저 법적이고 공개적인 ‘고백 예식’을 통해 죄를 고백하고 판결에 따라 보속을 받은 뒤, 상당히 오랫동안 가혹한 보속을 모두 이행한 다음에야 ‘화해 예식’을 통해 죄를 용서받았다.
이 시대의 신자들 대부분은 평생 한 번뿐인 고해성사의 기회를 되도록 아껴서 죽기 직전에 사용하려 했으므로, 주로 현행범 으로 적발된 이들이 고해(?)성사를 받았을 것이다. 화해 예식은 해마다 성삼일 직전인 성목요일 오후에 거행되었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 주교는 화해 예식에 참여하는 참회자들이 사순 제1주일에 해당하는 주일부터 성목요일까지 40일간 엄격한 피정에 들어갈 것을 법으로 제정하였다.
성경에서 ‘40’은 구원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을 뜻하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직전에 40일 동안의 피정을 가지셨다. 베드로 주교가 참회자들에게 40일간의 피정을 명한 것은 이러한 성경의 사건을 본받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화해 예식을 준비하며 40일의 피정에 들어가는 참회자들을 바라보는 신자들은, 죄가 있음에도 고백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큰 죄인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같은 40일의 기간에 참회자들보다 더 혹독하게 참회하며 살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사순 제1주일부터 성목요일까지 성삼일 직전의 40일은 온 교회가 참회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었다. 4세기 무렵에 생겨난 이러한 현상이 바로 사순시기의 효시이다.
7세기 이후의 변화와 파행
앞서 언급했듯이, 참회자들과 함께 사순시기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마음가짐에서 보이는 특징은 스스로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며 더욱 혹독한 참회를 실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참회자들보다 먼저 사순 시기를 시작하여 더 오랜 기간 참회하려는 실천으로 나타났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였는데, 5세기에는 사순 제1주일 직전의 금요일에 단식과 함께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더 나아가 그 직전 수요일에 단식만이 아니라 머리에 재도 얹으면서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경향도 있었다. 7세기에는 재의 수요일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굳어졌으니, 7세기의 「구 젤라시오 성사집」은 재의 수요일에 “사순 시기의 시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편 6세기에는, ‘세례받을 유아들이 잠들기 전에 세례식을 거행하려는 의도’와 ‘성삼일 단식의 허기에서 더 빨리 벗어나려는 욕구’로 말미암아 부활 성야 미사를 점차 이른 시각에 거행하는 경향이 있었다. 7세기에 이르러서는 부활 성야 미사를 오후 두 시에 거행하였다.
이리하여 부활 성야 미사를 성토요일에 속하는 것으로 오인하였고, 성삼일은 목, 금, 토의 3일, 곧 수난과 죽음의 3일로서 사순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부활 대축일 당일에는 별도로 낮미사를 거행하였으니, 결국 성삼일과 부활 대축일이 서로 분리되고 사순 시기가 성삼일이 아니라 부활 대축일만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는 황당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사순 시기도, 성삼일도 이미 그 본디의 뜻을 상실하였다.
이 시기의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 46일이었으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사순 시기를 40일로 해석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곧, 6개의 주일이 단식일이 아니므로 사순 시기에서 제외된다는 기괴한 해석이다. 주일인 6일을 뺀 40일이 진짜 사순 시기라는, 7세기 이후의 이러한 해석은 여러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첫째, 성삼일은 목, 금, 토의 3일이 아니며 부활 대축일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사순 시기에 속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사순 시기의 주일은 사순 시기 각 주간의 평일을 지탱하는 척추와도 같은 것이며 성삼일 축제를 준비하고 파스카 신비에로 인도하는 근간이므로, 결코 사순 시기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참회자들보다 더 거룩하게 사순 시기를 지내려는 신자들의 열심은 맹목적인 경쟁으로 치달았으니, 6-7세기에는 재의 수요일보다 앞선 주일을 ‘오순 주일’이라 부르면서 그날 사순 시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한 주일 더 앞서서 ‘육순 주일’, 또 한 주일을 더 앞서서 ‘칠순 주일’을 도입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사순 시기의 시작일을 다시 주일로 환원해 경쟁적으로 기간을 늘려 간 것은 맹목적이며 신자들에게 부담만 가중시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이미 1800년대부터 비평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전례학이 태동하였으며, 당시 그 연구에서 제시된 전례에 대한 평가는 충격적이었다. 그 결과는 교황청이 아직 반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1900년도 초반까지 전례 운동으로 번져 갔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7년의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를 발표하면서 전례 운동의 잘못된 점을 단죄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은 수용하였다. 교황청은 1950년대부터 먼저 성주간의 개혁에 돌입하여 전례 개혁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그 온전한 결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이루어졌다.
부활 성야 미사의 집전 시각을 주님께서 부활하신 밤으로 복원하였으며, 이 미사는 설사 자정 전에 거행하더라도 부활 주일에 속하는 미사임을 천명하였다. 성삼일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해당하는 금, 토, 일의 3일이며, 성목요일 저녁에 봉헌하는 주님 만찬 미사는 성삼일의 전야 미사로 제시되었다. 또한 사순 시기는 성삼일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그 본디의 뜻을 회복하였다. 맹목적인 열심에서 비롯된 칠순 주일, 육순 주일, 오순 주일은 폐지하였다.
단식과 재의 예식을 통해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의 정신이 영적으로 유익하고, 이 관습은 교회 전통에서 오랜 기간을 거쳐 이루어진 성령의 이끄심으로 보았다. 또한 사순 시기가 40일이 아니라 44일이 된다 하더라도 재의 수요일을 그 시작일로 지내는 관습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6월호, 신호철 비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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