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영성체 직접 준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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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8-07 | 조회수5,558 | 추천수0 | |
[전례의 숲] 영성체 직접 준비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가 끝나면 영성체를 하기 전에 마지막 준비를 합니다. “영성체 전 기도”와 “하느님 어린양” 선포, 그리고 “겸손의 기도”입니다. 이 예식은 짧고 또 앞에 중요한 준비 예식들이 있었기 때문에 징검다리 예식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준비 예식들을 보충하고 마감하는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순간들입니다.
“영성체 전 기도”는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가 끝나면 곧바로 바칩니다. 미사경본은 사제가 바치는 기도와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를 구분합니다(총지침 84). 사제는 미사경본에 제시된 두 기도문 가운데 하나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개인기도로서 홀로 손을 모으고 속으로 바칩니다. 이 기도에는 초대도 없고 기도를 맺는 문장도 “아멘”도 없습니다. 두 기도문 모두 중세에 생긴 기도로서 주체가 1인칭 단수이며(“저”) 그리스도께 바칩니다. 첫째 기도는 삼위일치 전망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협력으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신 주님께 성체 성혈의 신비로 죄와 악에서 구하여 주시고, 주님께 충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둘째 기도는 부당한 영성체를 금하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기억하며(1코린 11, 27-29) 영성체를 하기 전에 자신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영성체 효과로 보호와 치유를 간청합니다. 영성체는 회개의 요구와 함께 영적인 힘과 용서를 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성 금요일 수난 예식 이 부분에서 사제는 둘째 기도문을 바칩니다. 다만 성혈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금요일 예식에서 양형 영성체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기도하는 동안 교우들도 침묵 속에 기도합니다. 소홀하기 쉽지만 가치 있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침묵하며 사제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기도하며 영성체를 준비합니다. 곧, 성체라는 위대한 선물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그것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결심합니다. 미사경본은 말하지 않지만, 교우들은 사제가 바치는 기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교우들이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를 하는 동안 영성체 전 기도를 바치고, 노래가 끝나면 서둘러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 초대를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이는 전례 정신과 원칙에 어긋납니다. 무엇보다 교우들이 기도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성혈 안에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을 선언
이어서 사제는 성체께 경배를 드리는 동작으로, 빵과 포도주 축성 뒤에 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 절합니다. 그 다음 성체를 집어 성반이나 성작 위에 받쳐 듭니다. 이때 쪼갠 성체를 과거처럼 반드시 합쳐서 받쳐 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미사경본에서는 그렇게 했던 과거의 규정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제는 교우들에게 선포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성체와 성혈 안에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께서 현존하시고, 영성체로 그분과 하나 되어 우리 죄는 용서받는다는 믿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라틴어 미사경본에서는 옛 대중라틴말 역에 따라 회중에게 “보라”를 두 번 되풀이합니다. 또한 짧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 문장으로 옮긴 우리말과는 달리 더욱 힘이 느껴집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복되다, 어린양의 잔치에…” 전반부인 “보라, 하느님의 …” 구절은 16세기에 도입되었고, 후반부 “이 성찬에 …” 구절은 2차 바티칸 공의회 뒤에 새로 넣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 ” 구절은 바로 앞에 있는 빵 나눔 때 부르는 노래에 나오고 미사를 시작하며 부르는 대영광송에도 나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주님의 수난과 영광을 상징하며, 이 표현에는 구약의 어린양-종의 모습과 신약의 파스카 어린양 모습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L. 데이스).
“하느님의 어린양” 칭호는 제2이사야 “주님의 종” 넷째 노래에서 온 것입니다. 종이 백성을 위해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백성은 의롭게 됩니다. 그 종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 비유됩니다(이사 53). 이 이미지는 초대 교회에서 매우 익숙하였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29)라는 외침은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는 증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1코린 5, 7). 묵시록은 예수님을 파스카 어린양으로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이제 최고의 칭송으로(일곱 낱말) 하느님으로서 영광을 받습니다.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묵시 5, 12).
영성체에서 모실 주님께 겸손과 신뢰 드러내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이 구절은 묵시록에서 따왔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합니다.”(묵시 19, 9). 그러나 미사경본의 번역들은 “어린양의 잔치” 이미지를 선택하는데 주저하며 흔히 “주님의 잔치” 또는 “성찬”이라고 옮깁니다(영어는 원문대로 the supper of the Lamb). 묵시록에 따르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천상의 잔치로서 이때에는 시간이 영원 안에 들어가고, 뽑힌 사람들의 외침(묵시 19, 1. 6)이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그러므로 이 초대는 영성체의 의미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잔치임을 일깨웁니다. 사실 미사는 영원한 천상 잔치입니다. 영성체를 통하여 신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음을 전하면서 믿음과 희망 안에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있을 영원의 식사에 앞당겨 참여합니다.”(성체신비 3).
한편,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표현에서 “없애다”는 그리스어나 라틴말로는 먼저 “지다, 짊어지다”라는 뜻입니다. 남의 죄를 자기가 뒤집어쓰고 가는 “속죄의 어린양”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에게 죄와 그 벌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해방에는 주님의 희생이 들어 있음을 기억시켜 준다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제와 교우들은 겸손의 기도를 함께 바치며 영성체를 준비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기도는 카파르나움에서 백인대장이 한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제 종이”를 “제 영혼이”로 바꾸어). 그는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자기 종을 위하여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면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마태 8, 8). 이 기도는 중세에 도입되어 세 번 바쳤습니다. 15세기에는 가슴을 치는 동작이 첨가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에는 아무런 동작 없이 한 번만 바칩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이 기도를 함께 바치며 구원자인 영성체에서 모실 주님께 겸손과 신뢰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먼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기에 자신의 부당함을 선언합니다. 사실 우리는 성체를 모시는 특전 앞에 자신의 부당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죄에 대한 인정을 넘어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분께 신뢰를 보이면서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회중은 이 기도를 바치며 자신이 영혼의 병자임을 알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참된 의사이신 주님의 말씀에 의존하게 됩니다. 성체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상처와 악에서 우리 영혼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8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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