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평화의 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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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9-17 | 조회수7,539 | 추천수0 | |
[전례 생활] 평화의 인사
평화의 인사는 일상적인 인사와 다르다
오늘날 성찬례를 거행하는 중에 주님의 현존을 확인하는 ‘전례 대화’는 모두 다섯 곳으로, 그 부분이 중요한 순간임을 드러낸다. 그중 마지막 다섯 번째가 바로 영성체 직전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하는 전례 대화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분이신 주님의 몸을 모시고 함께 일치한다.’는 성찬례의 핵심 신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충분한 교리 교육이 없다면, 평화의 인사가 지니는 성찬례 신학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평화의 인사가, 서로 연대감이 강한 이른바 ‘친한 사이’에서 하는 일상적인 인사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초세기 교회 전통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이어지는 로마 전례의 역사 안에서 평화의 인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변천해 왔는지를, 전례 원전에 나타나는 증언들을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평화의 인사에 담긴 신학을 더욱 근원적인 방식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4세기의 증언 : 그리스도인의 인사
1-4세기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평화의 인사는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공유하는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평화의 인사는 성찬례에 함께 참여하여 기도하고 성체를 통해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의 인사이다. 입교 성사(세례, 성체, 견진 성사)를 모두 받고 난 이후라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예비 신자들은 평화의 인사를 할 수 없었으며, 성찬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말씀 전례가 끝나면 예비 신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그들에게 안수한 다음에 돌려보냈다. 이러한 모습은 현행 「어른 입교 예식」(19항의 3)에 이르기까지 보존되어 왔다.
평화의 인사는 입맞춤으로 행했는데, 이 때문에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인사를 나누었으며, 성당 안에서 남녀는 서로 구별된 자리에 앉았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던 시점은 보편 지향 기도(신자들의 기도)를 바친 다음으로, 봉헌 예식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서로 화해하라.’는 주님의 권고(마태 5,23-24 참조)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주요한 가르침이었다.
5세기 뒤 : 평화의 인사가 영성체 전으로
4세기를 거쳐 5세기 이후로는 로마 전례의 고유한 역사가 진행되는데, 평화의 인사가 주님의 기도 이후 영성체 직전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변화의 정확한 시점과 이유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는 증언이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봉헌 예식이 이전보다 복잡해지고, 주님의 기도가 감사 기도 직후로 옮겨졌으며, ‘주교가 신부에게 주일 미사를 위탁한 성당’(titulus)에 ‘페르멘툼’(fermentum : 누룩)이라고 부르는 성체 조각을 가져다주는 관습이 생겨난 것이 여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4세기 말부터 페르멘툼을 받지 않고서는 신부가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는 규정이 나타났다. 8세기의 원전들은 페르멘툼이 도착한 이후라야 비로소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성체를 영했다고 한다. 만일 페르멘툼이 도착하지 않았으면 평화의 인사를 하지 않은 채 기다려야 했다고 증언한다.
로마 전례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페르멘툼의 관습’과 ‘평화의 인사의 시점 변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그 자체로 전례 사목적 차원에서 페르멘툼과 평화의 인사를 내적으로 강하게 연결한다.
5세기의 인노첸시오 1세 교황(401-417년 재위)의 증언에 따르면, 페르멘툼은 같은 성체를 통해 주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회 공동체들 사이의 일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페르멘툼을 신부가 축성한 성혈에 넣은 직후에 하는 평화의 인사는 단지 그리스도인이 성체를 통해 일치한다는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들 간의 일치까지 내포한다.
전례를 통한 천상 · 지상 공동체의 일치
평화의 인사가 성체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드러내고 확인하는 인사인 한, 이 인사의 의미는 지상 전례 공동체와 천상 전례 공동체의 일치까지 확장된다. 지상 전례 공동체에 머물면서 성체 안에서 일치하던 그리스도인은 지상의 삶을 마칠 때 천상 전례 공동체로 건너가며, 천상 전례 공동체 또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의 어린양’을 중심으로 일치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천상 전례를 거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전례 헌장 8항이 제시하는 ‘지상 전례와 천상 전례의 합일’이다. 지상 전례의 중심과 천상 전례의 중심이 한 분이신 주님의 몸을 통해 하나로 꿰이는 것이다. 지금 지상에서 성찬례에 참여하여 성체를 바라보고 모시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천상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천상 공동체로 건너가는 사건을 기념하는 장례 미사야말로 평화의 인사가 지니는 이러한 성찬례 신학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장례 미사와 평화의 인사
장례 미사의 경우에는 고대의 관습을 함부로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고대의 전통에서는 평화의 인사를 영성체 직전이 아니라 봉헌 예식 전에 나누었는데, 5세기 이후에도 위령 미사에서만큼은 이 관습이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5세기에 로마의 성찬례에서 평화의 인사가 영성체 직전으로 옮겨질 때에, 위령 미사 예식에서는 그러한 시점의 이동이 없이 그대로 고수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봉헌 예식 전에 더 이상 평화의 인사를 하지 않는 로마의 관습에 보조를 맞추어 위령 미사의 봉헌 예식 직전의 평화의 인사마저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11세기의 문헌에서 위령 미사에서의 평화의 인사를 생략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이후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 이러한 관습은 유지되었는데, 1970년에 새로운 「로마 미사 경본」이 출판되면서 폐지되었다.
“적절하다면”의 의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된 「로마 미사 경본」에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적절하다면”(pro opportunitate)이라는 단서를 붙여 놓았다. 이는 어떤 상황이 정서상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에 알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평화의 인사가 성찬례 신학에서 지니는 의미와 가치가 깊고도 크며, 이 인사를 잘못 이해하고 행할 경우 오히려 성찬례에 대한 합당한 참여에 해를 끼치기에 그러한 위험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조치를 계속 반복하기만 할 게 아니라 합당한 교리 교육을 실시하고, 필요하다면 혼란과 혼동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인사 방식을 개선하기까지 하는 긍정적인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1996년에 발행된 우리말 「미사 통상문」 129항의 예규에는 “적절하다면”이라는 표현이 빠진 대신에 평화의 인사를 장례 미사에서 생략할 수 있다는 문장이 추가되었다. “이어서 부제나 사제는 교우들에게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하도록 권한다. 장례 미사에서는 생략할 수 있다.”
그 어떤 미사도 미사인 이상 그 자체로 평화의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신자들이 평화의 인사를 오해하여 장례 미사에서 서로 애도를 표하는 인사로 알고 행한다면, 바로 이 경우가 평화의 인사를 생략해야 할 상황이며 이유이다. 또한 장례 미사에 비신자들이 많이 참석했을 경우에도 평화의 인사를 생략해야 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활 성야 미사, 성탄 밤 미사, 혼인 미사 등에서 평화의 인사를 하는 순간에 서로 축하의 인사를 나눈다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것이라 차라리 생략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교리 교육을 통해 신자들이 평화의 인사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행하게 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의 인사를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것은 단지 장례 미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 출판되어 곧 사용할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에는 라틴어 원문에 충실하게, “장례 미사에서는 생략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적절하다면”이라는 표현을 다시 살려 놓았다.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신호철 비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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