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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미사 경본의 간추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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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16 조회수5,929 추천수0

[경향 돋보기 -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미사 경본의 간추린 역사

 

 

전례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기도이다. 그러므로 정해진 내용과 절차를 책에 담아 사도좌의 권위로 반포하는데 이 책을 ‘전례서’라고 한다. 모든 전례와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반포된 ‘미사 전례서’는, 기도문을 담고 있는 「로마 미사 경본」과 선포될 말씀을 담고 있는 「미사 독서」, 그리고 성가를 담고 있는 「미사 성가」이다. 동·서방 교회에는 여러 전례 전통이 존재하는데,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는 로마 예법에 속하며, 이 예법에 따른 미사 경본을 「로마 미사 경본」이라고 한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의 반포를 앞둔 지금, 초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사 전례서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미사 경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유익하다.

 

 

리벨루스

 

처음에는 전례문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정해진 내용과 형식에 따라 즉흥적으로 기도를 바쳤다. 2세기 문헌인 「열두 사도의 가르침」 9장과 10장에는 감사 기도가 나오는데, 고정된 본문을 제시하는 대신에 “이렇게 감사드리시오.”라고 말하면서 하나의 모범적인 보기를 제시한다.

 

3-4세기에 접어들어 미사 전례문을 글로 적어서 낭송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미사 경본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어떤 특정 미사에 사용할 전례문을 낱장의 문서에 적어서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낱장을 ‘리벨루스’(libellus)라고 한다.

 

 

성사집

 

사제가 전례문을 즉흥적으로 낭송하거나 임의로 작성하는 것이 사제의 신학적 소양 부족 또는 이단 사상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되자 교회는 전례문을 고정하였다. 407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모든 전례문은 공적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103항)고 규정하였다. 6세기 이후에 한 권으로 묶은 미사 전례서가 등장하는데, 이를 ‘성사집’(聖事集; sacramentarium)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미사’라는 용어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고 성찬례를 그냥 ‘성사’(sacramentum)라고 불렀다.

 

현존하는 최초의 성사집은 7세기에 편집된 ‘베로나 성사집’(Sacramentarium Veronense=Ve)인데, 6세기에 작성된 리벨루스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 이는 본디 교황청 미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의 성사집들은 리벨루스의 묶음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권의 책(codex)으로 만들어졌다. 작성 연대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추정되는 ‘구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 Vetus=GeV)은 로마의 한 명의 성당(titulus)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舊)라는 별칭을 붙이는 것은 ‘8세기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 VIIIi saeculi=GeVIII)과 구별하려는 것이다.

 

7-8세기에 교황청 미사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작성된 성사집도 있는데, ‘아드리아노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um Gregorianum Hadrianum Authenticum=GrH)이다. 이 GrH를 기본으로 하고 본당 미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부록을 첨부한 것은 ‘파도바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um Gregorianum Paduense=GrP)이다. 위에 언급한 GeVIII은 GeV와 GrP에 갈리아와 수도회의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10세기 이후의 성사집들은 GrP에 GeVIII가 혼합된 것인데, 이러한 성사집들을 ‘혼합 그레고리오 성사집’(Sacramentarii Gregoriani Mixti=GrM)이라고 부른다. 이 성사집들로부터 이어지는 후대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통합 미사 경본

 

‘미사 경본’(Missale)이라는 용어는 중세부터 사용되었는데, 성사집이나 리벨루스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9세기 이후로는 이 용어가 기도문, 독서, 성가 등 미사에 사용되는 모든 전례문을 한 권에 모아 놓은 형태의 전례서를 가리킨다. 이러한 미사 경본을 ‘통합 미사 경본’(총 미사 경본; Missale Plenarium; Missale Completum)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모든 미사 전례문이 한 권으로 통합된 이유는 이러하다. 당시 사제 혼자서 바치는 미사가 흔해짐에 따라 사제 혼자서 미사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낭송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큰 도시나 수도원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본당에서 사용할 미사 경본도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온전하게 미사를 바치려는 경향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통합 미사 경본의 형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그 뒤로는 다시 미사 경본, 미사 독서, 미사 성가가 분리되었다.

 

 

비오 5세 성사집

 

미사 경본의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하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의 대표적인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1570년에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것이다. 이후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인 1962년까지 수차례 개정되었지만 사소하게 수정되었고 그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으므로, 이러한 미사 경본들을 통칭하여 ‘비오 5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으로 1970년에 새 미사 경본이 나오기까지 400년간 사용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10세기 이후 GrM으로부터 비오 5세 성사집으로 이어지는 양상은 매우 복잡하지만, 주된 흐름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러하다. GrP가 GrM의 주된 유형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13세기 로마 교황청 미사 경본」(MCRXIII)이 나오며, 이것을 바탕으로 「1474년 로마 교황청 미사 경본」(MR1474)이 출판되었다. 비오 5세 교황은 큰 수정 없이 「1570년 로마 미사 경본」(MR1570)을 반포하였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미사 전례서의 역사는 복잡하고 다양한 혼합의 흐름을 보였다. 성당과 수도회에서는 교황청의 미사 경본을 사용하면서도, 합당한 원칙과 기준이 없이, 그때까지 존재하던 새 전례서와 옛 전례서를 나름대로 조합해 각각 자신들만의 고유한 미사 경본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MR1570의 역사적 의의는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미사 전례문을 통일했다는 점이다.

 

 

바오로 6세 성사집

 

1800년대에 전례학이 태동한 이후 전례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라 당시의 전례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시급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학적인 수준을 넘어서 실천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1900년도 초에 일어난 ‘전례 운동’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이 전례 운동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1947년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를 반포하였다. 다가올 보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이미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요한 23세 교황이 시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바오로 6세 교황이 마무리 지었다. 비오 5세 미사 경본이 반포된 지 400년 만인 1970년에 전례 개혁의 결과가 반영된 로마 미사 경본의 첫째 판이 반포되니 이것을 ‘바오로 6세 로마 미사 경본 표준판’(MR1970)이라고 부른다. 전례 개혁의 결과가 어떻게 여기에 반영되었는지를 좁은 지면에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큰 특징 중 몇 가지만을 언급한다.

 

‘표준판’(Editio typica)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사실에서 이제 이 라틴어 미사 경본을 표준으로 하여 미사 경본을 각 민족의 모국어로 번역할 것이 전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전의 미사는 대부분의 신자가 잘 알지 못하는 라틴어로만 거행되었고, 따라서 신자 대부분은 기도문에 응답할 수 없었으며 성가를 부를 수도 없었다. 모든 전례문은 해당 직무자들이 바쳤고 라틴어로 된 성가는 성가대가 불렀으니, 신자들은 미사가 거행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전례가 거행될 때 신자들은 방관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구원의 은총에 젖어들어야 한다. 전례 중 모국어의 사용은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논제였다. 그 개혁의 결과 모국어의 사용이 허용되었다(전례 헌장, 36항 참조).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현존하시며 또한 성체와 성혈로 현존하신다. 이 두 현존은 성자의 단일한 위격에 결합되어 있는 같은 것으로서 어느 하나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말씀 전례에서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성자께서 선포되시고 그렇게 선포된 말씀을 성찬 전례에서 성체와 성혈의 현존으로 거행하는 것이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10항 참조). 이전의 미사 전례에서 성경 말씀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제한적이었다. 이에 비해서 개혁된 미사 전례에서 성경 말씀은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말씀 전례에서는 맹목적인 연속보다는 주제 연결을 중시하는 ‘준연속적인 독서’(lectio semi-continua) 방식으로, 중요한 성경 말씀이 2년 또는 3년을 주기로 하여 모두 선포되도록 배정되었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64-77항 참조).

 

또한 신자들은 되도록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를 모시도록 권장되고, 신자들이 성체와 성혈을 함께 모시는 것이 허용되었다. 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하는 미사의 형태가 오히려 더욱 장엄하고 그리스도의 단일한 사제직을 더 잘 드러내기에 이전에 금지되었던 공동 집전이 오히려 권장되었다.

 

표준판이 반포된 지 5년 뒤인 1975년에 그동안 발견된 개선해야 할 점들을 적용하여 ‘제2표준판’(Editio typica altera=MR1975)이 반포되었다. 제2표준판이 반포된 지 27년이 지난 2002년에 ‘제3표준판’(Editio typica tertia)이 반포되었다. 이 제3표준판은 거의 3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각 지역 교회에서 모국어로 미사 경본을 번역하면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 수행하였던 수많은 ‘적응’(adaptatio)의 사례를 반영한 것이다. 교회 전통에서 본연의 신앙 고백문으로 바쳤던 사도 신경의 가치를 인정하여 이것을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할 가능성을 확대하였다.

 

이미 일어났거나 예견된 ‘적응’ 외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적응’에 대해 주교회의가 판단하는 데 필요한 기준을 다루었다. 그리고 새로 생겨난 성인 축일들의 기도문들을 마련하였다. 한편, 악보가 있는 본문을 악보가 없는 본문보다 앞에 실어서 미사 경문 중 노래할 수 있는 부분은 노래하는 것이 더 장엄하고 또 장려됨을 부각했다.

 

이 제3표준판 미사 경본의 사소한 오류들을 수정하고 보충해야 할 점들을 적용하여 2008년에 ‘제3표준 수정판’(Editio typica tertia emendata)이 반포되었으니 이것이 현행 「로마 미사 경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반포된 미사 경본들은 모두 같은 기본 구조를 지니므로 ‘바오로 6세 성사집’이라고 통칭한다.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은 표준판을 번역하여 1975년에 출판되었으며, 1996년에 우리말 「미사 통상문」이 나왔다. 곧 새로 출판될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은 2008년의 제3표준 수정판을 번역한 것으로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부터 시행된다. 1975년 이후로 42년 만에 개정되는 것이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말 번역문 자체의 변화를 살피기 전에, 제2표준판과 무려 27년의 터울을 지니는 제3표준판의 변화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신호철 비오 -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부산교구 신부로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신호철 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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