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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2: 성찬례의 기원,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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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20 조회수7,547 추천수0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2) 성찬례의 기원, 최후의 만찬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여라”

 

 

성찬례는 주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과 함께 나눈 ‘최후의 만찬’에서 기원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만찬을 거행하시고자, 자리를 깔아 놓은 큰 이층 방에 상을 차리라고 명령하시고(루카 22,12 참조), 거기에서 당신 몸과 피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항)

 

성찬례의 기원은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친히 이 예식을 제정하셨다. 우리에게 이것을 전해 주는 네 개의 성경 본문은 마르 14,22-24, 마태 26,26-28, 루카 22,14-20, 1코린 11,23-25이다. 우리는 이 본문들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셨던 당신의 제자들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셨는지를 전해 준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루카 22,15-16) 

 

실상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누게 될 파스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것은 세상 끝날까지 당신과 깊은 친교를 이룰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과 행위로 제정될 성찬례 안에서 완성된다. 

 

수난 전날 저녁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쪼개어 그것을 제자들에게 받아먹으라고 주셨다. 그 빵은 당신의 몸이었다. 그리고 만찬을 드신 다음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시고 모두가 잔을 받아 마시도록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 잔은 당신의 피로 맺는 계약의 잔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루카 22,19) 

 

먹고 마시는 이 단순한 행위, 인간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이 일상적 행위에 새로움을 부여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내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현존하게 할 탁월한 길을 열어 주셨다. 사도 바오로는 교회가 이 말씀에 충실하여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사랑의 신비를 만방에 선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2,26)

 

성찬례란 무엇인가? 성찬례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사랑의 선물이다. 왜 성찬례를 거행하는가? 우리 인간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온전히 다 내어 주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분께서 친히 행하신 것을 하도록 우리가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단지 예식만은 아니다. 성찬례 제정의 순간을 전해 주는 공관 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스승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성찬례가 지향하는 본질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여라.”(요한 13,15 참조)

 

이로써 요한은 우리 삶 안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는 성찬례는 불완전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길을 충실히 따를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행했던 첫 미사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보자. 제자들은 빵과 포도주와 결합된 주님 말씀의 뜻을 이해하였을까? 아마도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을 주님과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식사들 가운데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가 이 장면을 묵상하면 할수록 교회가 성목요일 저녁에 성대히 기념하는 성체성사 제정의 순간이 그렇게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간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당신의 제자들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한 채 홀로 신비를 거행하셔야만 했던 고독과 슬픔의 밤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당신을 팔아넘길 한 사람,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묘사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작품은 이 예고로 말미암아 크게 동요하는 제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고독한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마음 안에 휩쓸고 있는 격정의 파도를 초월하여 그들에게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때까지 ‘최후의 만찬’이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려진 적은 없었다. 도미니코수도회의 식당 한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던 이 불편한 장면을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 매 식사 때마다 바라보아야 했던 당시 수사들의 마음 속에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평생을 두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구도의 삶 속에서 간직해야 할 화두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너희는 나의 참된 제자인가?”, “너희도 나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너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성찬례 안에서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앉으셨던 그 식탁에 참여할 때마다 이 물음에 응답하도록 초대받는다.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1월 21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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