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두 종류 흰 나리꽃 그리고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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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4-02 | 조회수8,454 | 추천수0 | |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두 종류 흰 나리꽃 그리고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
예수님께서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린다’고 가르치시며 꽃 하나를 예로 드신 적이 있다(루카 12,27 참조). 나리꽃이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가 자생하고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꽃이 아름다운 식물이다. 이 식물은 백합(百合)이라고도 불린다. 나팔 모양으로 생긴 꽃이 흰색이라서 백합인 줄 아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백합의 백은 ‘희다’는 뜻[白]이 아니라 ‘100’이라는 뜻[百]이다. 알뿌리가 여러 개의 비늘로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테면 한 식물의 이름이되, 백합은 한자말이고 나리꽃(이 글에서는 성경에서 표기되는 대로 ‘나리꽃’이라고 쓴다.)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물론 많은 나리꽃들 중에서 교회에서는 색깔이 하얀 나리, 곧 흰 나리가 의미 깊은 꽃이다.
- 부활절 나리꽃.
부활절 나리꽃(Easter Lily; 학명 Lilium longiflorum)
꽃이 우아하고 향기로운 이 식물은 일본 류큐 섬(오키나와)이 자생지로 알려져 있는데, 흔히 부활절 나리꽃이라 불린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 꽃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리꽃은 예수님께서 친히 거론하신 꽃인 터라 교회 안에서 언제나 좋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게다가 이 꽃과 관련해서 신심 깊은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온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뒤에 희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 몇 송이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밤에 기도하기 위해 들르신 동산에서, 그분이 기도하시는 동안에 흘러내린 땀이 떨어진 자리에서 이 식물이 솟아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랬을 테지만, 예전에는 많은 교회들이 부활 시기 내내 부활절 나리꽃으로 제단을 꾸미곤 했다.
성모님의 나리꽃(Madonna Lily; 학명 Lilium candidum)
이 식물은 지중해 동부와 발칸 반도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도 퍼져서 서식한다.
- 성모님의 나리꽃.
이 식물 역시 희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데, 교회에는 성모님을, 특히 성모님의 정결과 동정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Mary’s Lily, Virgin Lily). 주님 탄생 예고(성모 영보) 때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온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인사하면서 이 꽃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Annunciation Lily). 그림이나 성상에서는 성모님이 이 꽃들을 손에 드시거나 꽃들 가까이 계신 모습으로 성모님과 이 꽃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표현했다.
한편, 배필이신 성 요셉도 이 꽃과 관련되는데, 성모님이 탄생하셨을 때 요셉이 장차 성모님의 배우자요 보호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뜻에서 요셉의 지팡이에서 나리꽃이 피었다고 한다.
존자(尊者) 성 베다(A.D. 672-735)는 이 꽃의 흰 꽃잎은 성모님의 순결한 육신을 상징하고 꽃술의 노란 꽃밥은 성모님의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모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토마스를 위해 나중에 성모님의 무덤을 열었을 때 시신 없는 무덤에는 장미와 나리꽃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흔히 ‘나리꽃들 가운데 으뜸’이라 일컬어지는 이 꽃은 정결의 표상으로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 그리고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상징하기도 한다.
구약성경 아가에서 “아가씨들 사이에 있는 나의 애인은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 같구나.”(2,2)라고 소개되는 이 꽃은 또한 열왕기 상권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 기둥들의 머리와 청동 바다를 장식한 꽃으로도 기록되어 있다(7,19; 7,26 참조).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Glastonbury Thorn; 학명 Crataegus Oxyacantha Praecox)
영국 잉글랜드 섬 남서부에 있는 서머셋 주에는 영국에서 매우 오래된 수도원들 중 하나인 글래스턴베리 대수도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7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수도원은 아더 왕과 성 둔스타노의 묘소가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둔스타노는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어 덴마크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수도원을 다시 일으키고 다른 많은 수도원들을 활성화했으며, 나중에는 캔터베리 대교구의 교구장이 되어 교회와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끈 성인이다.
-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위)와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 우표.
그리고 이곳에는 아더 왕과 둔스타노 성인 못지않게 유명한 나무가 있다.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Glastonbury Thorn)다. 산사나무(Hawthorn)의 변이종인 이 나무와 관련해서 아리마태아의 성 요셉의 기구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예수님이 되살아나시어 무덤에서 시신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빼돌린 범인으로 오인되어 40년형을 선고받고 옥에 갇혔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요셉에게 성작을 맡기시면서 이를 보호하는 수호자로 삼으셨다. 요셉은 날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놓고 가는 빵으로 연명했다. 옥에서 나온 요셉은 고령의 몸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는 처남과 아들과 함께 성작을 고이 품고 유랑하던 끝에 마침내 영국까지 흘러들어가 서머셋 주의 글래스턴베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동안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거기에서 싹이 돋아났다. 바로 글래스턴베리 가시나무다.
17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내란(또는 청교도 혁명)이 일어났는데, 혼란을 틈타서 열혈 신교도(청교도) 하나가 이 나무를 향해 ‘미신의 잔재’라며 도끼를 휘둘렀다. 나무는 크게 훼손되었고, 도끼를 휘두른 사람은 잘려서 튕겨 나온 나무 조각에 눈을 찔렸다고 한다. 그리고 잘린 둥치에서는 새 순이 움터 나와서 자랐고, 이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나무는 1년에 두 번, 성탄절과 부활절 무렵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탄 무렵에 꽃이 피는 까닭에 이 나무는 성탄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는 성탄절에 맞춰 꽃이 핀 가지를 잘라서 왕궁에 보내는 관습이 생겼다. 왕궁에서는 이 꽃을 받아서 성탄을 축하하는 식탁을 장식했다. 또한 20세기 초반부터는 영국의 수도원들에도 보내 식탁을 장식하도록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65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써만 본래의 장소와 기원을 말할 수 있는 신성한 옛 자리를 우리 믿음의 상징인 십자가로 표시한다’는 내용을 새긴 나무 십자가를 이곳에 세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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