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부활] 십자가 부활의 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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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4-23 | 조회수5,279 | 추천수0 | |
[전례 생활] 십자가 부활의 노래
우리는 사순 시기의 영적 여정을 거쳐 파스카 성삼일의 신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삼 일’의 위대한 구원 신비를 거행했다. 이 신비의 거행과 함께 교회는 전례와 성사적 표징들을 통해서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이루었다. 이 표징들 가운데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십자가’이다.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 예식에서 우리는 이미 부활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주님의 십자가 경배하오며, 주님의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오니, 십자 나무 통해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
오십 일 동안 마치 하루의 축일처럼 지내게 될 이 부활 시기에 우리가 다시 ‘십자가’를 떠올리는 것은 십자가 안에 부활의 기쁨이 온전히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몸소 보여 주신 구원의 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서 부활의 기쁨을 힘차게 노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십자가, 치욕스러운 죽음의 표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 뒤에 제시하신 길은 너무나 명확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은 십자가 없이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로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발견된 유적 가운데 3세기 초반에 한 이교인이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가 처형 그림이 있다. 본디 ‘페다고지움’(Pedagogium)이라 불린 황실 노예 학교의 벽에 낙서처럼 거칠게 새겨진 그림은 당나귀의 머리를 한 채 십자가에 매달린 한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그 발치에서 그를 경배하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그리스 말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알렉사메노스가 그의 신을 경배한다.” 여기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을 믿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조롱과 경멸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란 치욕스러운 죽음의 표지였을 뿐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달랐을까? 우리는 십자가 사건 앞에서 제자들이 취했던 비겁한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실상 십자가 사건 앞에서 제자들이 겪었던 충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바오로 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23)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도 기억하고 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바오로 사도의 선언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복음 선포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있었다.
십자가, 새 생명나무
십자가는 역사적으로 죄수와 노예를 처단하는 가장 잔인한 사형 도구였다. 걸림돌이요 어리석음의 표지였던 십자가 사건 안에서 제자들이 하느님의 감추어진 구원 계획의 신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뜨거운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처럼 그 만남은 제자들의 완고한 마음에 불을 질렀고 주님의 현존을 깨닫도록 이끌었다. 이 놀라운 체험이 가져다준 ‘새로운 시선’이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4세기 무렵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말미암아 십자가 형벌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 놓고 형상화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십자가를 상징화함으로써 치욕스러운 죽음의 표지였던 십자가에 대한 역사적 당혹감을 극복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가 십자가를 ‘생명나무’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요한 묵시록에 나타난 ‘생명나무’의 표상은 분명 이러한 생각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 천사는 또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22,1-3).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곧 구원은 죄로 말미암아 낙원에서 쫓겨나 생명나무에서도 멀어지게 된 인간이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다(묵시 2,7 참조). 여기서 생명나무는 사슴이나 온갖 동물이 목을 축이러 모여드는 샘물처럼 성스러운 표지로 충만한 상징적 공간을 열어준다. 그리고 ‘새 생명나무’인 십자가는 온갖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구원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표지 속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찬양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낙원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낙원 한가운데 있었던 생명나무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아담에게 보여 주셨던 나무입니다. … 나무로 말미암아 육신이 그 열매를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는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옛 굶주림이 그치고 생명의 은총이 회복되도록 그리스도 안에 육신과 나무를 결합시키셨습니다. 오, 주님의 복된 나무여! 세상의 모든 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도다. 오, 복된 주님의 육신이여! 모든 이들에게 양식을 주셨도다”( 「시편 해설」, 35,3).
이러한 생각은 교부들의 작품만이 아니라 중세 예술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가운데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전의 제단 천장에 묘사된 모자이크는 이 생명나무 표상과 결합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보여 준다.
십자가, 부활의 노래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 예식 동안에 부르는 찬미가 ‘믿음직한 십자 나무’는 십자가 - 생명나무에 대한 찬가이자 부활의 노래이다. “믿음직한 십자 나무 가장 귀한 나무로다. 어떤 숲도 이런 싹과 입과 꽃을 못 내리라. 귀한 나무 귀한 못에 귀한 짐이 달렸도다. … 원조들이 유혹받아 금한 열매 먹었을 때, 하느님은 동정하여 구원 나무 정하시고, 나무에서 묶인 죄악 나무로써 푸시었네.”
여기서 노래하는 십자가는 에덴동산 한가운데서 죄의 원인이 되었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세 2,9.17; 3,1-13 참조)와 대비를 이룬다. 하느님은 ‘십자가 - 생명나무’를 통해서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완전히 뒤바꾸셨다.
나무 안에 죽음과 생명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죽음이 에덴동산의 나무에서 비롯되었다면 생명의 회복이 골고타의 십자 나무에서 이루어진다.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첫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신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미사의 감사송은 십자 나무를 통하여 역설적인 방식으로 구원을 이룩하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 나무에서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어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절망과 고통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앙의 빛은 그 어둠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바라보게 한다. 이 희망의 시기에 우리 모두가 이 새로운 시선으로 자기 삶의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의 기쁨을 맘껏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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